말과 글

(19) 尸 (주검 시)

나무^^ 2008. 3. 26. 14:15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19)                                                      

                                                                                   2008. 3. 10 (월) 영남일보      

             (주검 시 ; 머리를 떨치고 몸이 빳빳한 모양)
        

       멀쩡하던 사람이 고개를 아래로 떨치고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 상 위에 모셔져 있는 모양을 본 떠 ‘尸’(주검 시)라 하였다.

       여기에 ‘死’(죽을 사)를 덧 붙여 오늘날에는 ‘屍’(주검 시)라 하게 되었다.

       제사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예기 효특생>(禮記 效特牲)에서는

      “尸는 陳也”(‘시’는 죽은 이를 모신 것이다.)라 하여 ‘尸’와 ‘陳’을 서로 통하는 글자로 풀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서로 통하는 글자인가?

       청대(淸代)의 설문학자 단옥재(段玉裁)는 “상사(喪事)나 제사에 임하여 제물을 법도대로 진설(陳設)하는 일을

      ‘陳’(베풀 진)이라 하고, 제상을 받는 고인이나 제사를 지낼 때 엄숙한 분위기를 갖추기 위해

       고인과 닮은 모습을 지은 동자(尸童)를 세우는 것 같은 신상(神象)을 일러 ‘尸’라 한다.”고 풀었다.

 

       이처럼 물건을 진열하는 일과 죽은 이를 눕혀 놓는 일은 일정한 장소에 베풀어 놓는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그러나 글자의 운용은 마치 물의 흐름과 같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그 쓰임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크게 본디의 흐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아무리 맑은 물이나 맛좋고 깨끗한 식사를 하였을지라도 일단 몸을 거쳐 소화된 뒤 배설되는 것은

       죽은 물이요, 썩은 곡식의 찌꺼기이므로 각각 ‘尿’(오줌 뇨), ‘屎’(똥 시)라 하였다.

       그리고 한 군데 오래도록 몸을 붙이고 사는 것을 ‘居’(살 거)라 하고,

       이것저것 거침없이 죽이는 일을 ‘屠’(죽일 도)라 하였다.

       또 감각이 죽은 듯 둔한 터럭을 일러 ‘尾’(꼬리 미)라 하였다.

 

       본디 삶과 죽음은 한 호흡 사이에 오고가는 일이기는 하나 아무래도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꺼리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가 죽은 이를 맞아 예를 올릴 때에는 그 때마다 좋은 글귀(또는 그림)가 적혀져 있는

       여러 폭의 병풍을 연결해 경계를 두었다.

       즉 ‘병풍’이란 여러 폭을 아울렀다는 뜻으로 ‘幷’(아우를 병)에 ‘尸’(주검 시)를 붙인 글자이다.

'말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 交 (사귈 교)  (0) 2008.03.30
(20) 尺 (자 척)  (0) 2008.03.29
(18) 夭 (흔들 요)  (0) 2008.03.21
(17) 亦 (또 역)  (0) 2008.03.21
(16) 寸 (마디 촌)  (0) 2008.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