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82) 龠 (피리 약)

나무^^ 2009. 9. 14. 13:14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2)                                                     

                                                                                            2009. 5. 18 (월) 영남일보

                   (피리 약 :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피리)  

 

                      원시로부터 인류가 처음 만든 악기를 꼽자면 타악기인 '북'과 관악기인 '피리'다.
                      피리는 대나무에 구멍을 뚫고 얇은 갈대 속청을 붙여 불어대면서 구멍을 조절하여 12가락을 읊어내는 가장 간단한
                      식물성 소재의 악기이다. 대통 하나로만 연주하는 피리가 있는가 하면, 여러 개의 피리를 합쳐 하모니 효과를
                      내도록 만든 피리도 있다. 피리가 연주하는 가락은 봉황새가 12 달을 두고 우는 울음소리를 그대로 본뜬 것이라
                      하는데, 사계절을 두고 태평을 염원하는 인간의 바램을 반영한 것이 곧 음악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모니 효과를 내는 큰 피리를 두고 그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곧 ''(큰 피리 약)이니 .
                    '冊'(엮을 책)은 곧 여러 개의 피리를 묶어 놓은 모양을 나타낸 것이요, 그 위에 여러 개의 구멍(口)을 붙이고,
                     또 그 위에 '合'(모일 합)에서 이를 생략한 ' '을 덧붙인 것이다.

                     많은 이를 부추기는 효과로서는 '북'이 가장 으뜸일 수밖에 없다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가락을 연주하여
                     마음 속에 든 가락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는 악기로서는 '피리'를 빼놓을 수 없다.

                     힘센 항우 장사의 많은 군사도 끝내 마지막에 흩어 놓을 수 있었던 묘한 수법이 무엇이었던가.
                     패전의 슬픔에 싸여 고향 생각을 아니할 수 없는 그 비참한 상황에서 휘영청 밝은 달밤, 어디선가 가냘프게 들려오는
                   '사모곡(思母曲)' 한 곡조가 서로 눈치만 살피며 도망칠 기회만을 엿보던 패잔병들에게는 앞 다투어 도망치는
                    기폭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아비가 이치를 들어 무섭게 설득하는 말은 옳은 줄 알면서도 잘 듣지 않지만,
                    어미가 눈물로 호소하는 말은 설사 그 말이 온전히 마땅치 않을지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니
                    곧 북 치고 장구 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잔잔하면서도 호소력있는 한 곡조 피리 소리가 더욱 필요할 때가 많다.

                   호언장담은 일시적으로 기대감을 부풀릴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내실을 거두지 못할 때에는 절망감만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진실을 잃은 나머지 다시는 믿지 않는다는 형벌을 받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비록 눈앞에 성취가 보일지언정 겸양으로 한 발 물러서서 진실을 잔잔하게 말할 때에
                   이를 듣는 이들은 오히려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도 있으니 우리는 우리를 잘 보존하기 위해 이를 슬기롭게 참아내자"고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만 참으면 곧 되니 그대로 참자"라고 외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처방일 수 있다. 

                  '참는다'는 말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참'이냐 하고 끊임없이 '찾는다'는 말이다.
                   즉 '참을 찾는다'가 곧 '참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참을만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참'을 이미 잃었다고 여겼을 때에는 참지 못하지만 그래도 참을 가치가 있다면 참는다.
                   그래서 참에서 나오는 참다운 곡조만이 마음속에 든 가락, 즉 심금(心琴)을 울릴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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