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4)
2009. 6. 1 (월) 영남일보
말은 소리에서 더욱 발전되어 나온 공통된 약속이며 소리는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렇기로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는 이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소리이며 또한 말인데,
말이란 소리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의 소리에 한정을 두거나 또는 소리와 소리를 합성시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주 쓰는 말은 소리 하나로 한정시켰고, 덜 자주 쓰는 말은 소리에 소리를 맞붙여 썼다.
예를 들면 '물'이니 '불'이니 '밥'이니 하는 말들은 생명을 지닌 동식물에게는 한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소리 하나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매끼니마다 먹어야 하는 음식도 단순히 말하면 밥이지만
밥을 중심으로 먹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통틀어 말하자면 '먹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때에 '먹이'란 '밥'과는 달리 밥을 중심으로 한 이것 저것을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소리요 둘째는 약속이다.
말의 소리 속에 이미 뜻으로서의 약속이 들어 있기도 하고, 약속에 이미 소리의 요소가 집약되어 있기도 하다.
만물에 무리지어 있는 것이 물이기 때문에 그 물건이 살아있는 것이냐 아니면 죽어진 것이냐 하는
판단의 기준은 촉촉한 상태냐 아니면 깡말라 버린 상태냐 하는 데 있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살아 있으면 혀가 촉촉한 상태라는 뜻에서 '水'(물)에 '舌'(혀 설)을 붙여 '活'(살 활)이라 하였고,
같은 나무라 할지라도 수명이 오래된 나무는 물이 바짝 말라 있어'木'(나무)에 '古'(마를 고)를 붙여 '枯'(마를 고)라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른바 동물이니 식물이니 또는 광물이니 할 때에 이르는 '물'은 바로 일상 마시는 물과
다를 바 없는 물이다. 즉 물을 속에 담고 움직이는 물건은 '동물'(動物)이요, 밑에서 물을 끌어 올려 반듯하게 서 있는
나무는 '식물'(植物)이다. 그리고 각종 쇠붙이와 많은 물을 담고 있는 가장 넓은 만물의 바닥은 '광물'(鑛物)이다.
그래서 만물의 물도 또한 '물'이며 물은 한편 곧 '생명'이다.
그렇지만 깊은 생명의 샘(마음) 속에서 일단 타오른 인간의 감정은 물이 아닌 '불'이다.
때문에 감정은 솟구치게 마련이며, 감정이 솟구치다 보면 가장 가리기 쉬운 '물'과 '불'도 가릴 수 없다고 하였다.
일단 말이란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에 말이 감정에 사로 잡혀 함부로 뱉어지면 '망언'(妄言)에 이르기 쉽다.
그러나 격한 감정을 참고 냉철한 생각을 거쳐 차분히 뱉어내는 말은 적어도 망언에까지 이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노자도 "믿음직한 말은 번지르르 하지 않고 더듬는 말이 참다운 말이다."(信言不美 訥言眞言)라 하였다.
입을 통해 마음속에서 궁굴려 더디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口'에 '內'(안 내)를 붙여 ' '(말더듬을 눌)이라고도 하고,
마음속에 든 것이 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곧 말이기 때문에 '訥'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 '과 '訥'은 똑같은 글자다.
더듬어 나오는 진실이 심히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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