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6)
2009. 6. 15 (월) 영남일보
모든 생명체들은 끊임없이 그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생식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종류에 따라
번식되어 가는 기간은 각각 다르다. 똑같은 동물류라 할지라도 하등과 상등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먹이사슬 체계에 따라 번식되는 개체의 수도 천차만별이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뱀보다는 개구리 수가 많게 마련이고, 개구리는 또 벌레를 잡아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개구리보다는 벌레 수가
훨씬 많아야 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순서도 마찬가지다. 새싹이 돋아나야 거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벌레들이 나오고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순서도 마찬가지다. 새싹이 돋아나야 거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벌레들이 나오고
벌레가 나온 뒤에야 개구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개구리가 수많은 올챙이를 낳고 그 올챙이가 다시 개구리로 된 뒤에야
뱀이 그것들을 잡아먹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법이다.
하나의 개체가 성숙을 거쳐 또 다른 개체를 번식해 내놓는 성숙의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하나의 개체가 성숙을 거쳐 또 다른 개체를 번식해 내놓는 성숙의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성숙의 기간이 긴 것들은 동식물을 막론하고 야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짧은 것들은 그 만큼 물러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뉴월 하루 볕에 부쩍부쩍 자란 호박이 가장 무른 법이다.
사람은 하루 이틀 볕 사이에 성숙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스무 해는 넘어야 다음 자녀를 낳을 수 있으며,
사람은 하루 이틀 볕 사이에 성숙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스무 해는 넘어야 다음 자녀를 낳을 수 있으며,
'예기(禮記)'에서는 "남자 삼십이 되면 장가를 간다(三十有室)'하여 남자 나이 서른이 되어야 장가를 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스무살도 되지 않아 장가드는조혼의 풍습은 왜 있었을까.
그렇다면 스무살도 되지 않아 장가드는조혼의 풍습은 왜 있었을까.
전쟁이라는 인류 사회의 생존경쟁 때문에 종족보존의 본능이 발동되어 일어난,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열네살 꼬마 신랑에 스무살 새신부는 그래서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덟살에 소학의 기초교육을 받고,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어 대학에 들어 지도자 교육을 받고,
그러나 여덟살에 소학의 기초교육을 받고,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어 대학에 들어 지도자 교육을 받고,
서른살에 뜻을 세운다는 예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보면, 사회의 떳떳한 일원이 되는 결혼은 서른살쯤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바로 '나'라는 1세에서 '자녀'라는 2세로 세대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라,
곧 서른을 '世'(대 세)라 이르게 된 것이다.
즉 '世'란 한 사람이 성숙하여 그 자녀를 낳는 나이 서른을 뜻하는 '세대의 세'를 이르는 말이니,
즉 '世'란 한 사람이 성숙하여 그 자녀를 낳는 나이 서른을 뜻하는 '세대의 세'를 이르는 말이니,
어디 사람만이 끊임없이 세대가 불어난다는 말인가?
뿌리 박혀진 채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초목까지로 해마다 낙엽이 지고 새 잎이 돋아나게 마련이니
초목(木)에 있어서의 세대갈이는 곧 '葉'(잎 엽)이다.
참으로 자연의 이치는 묘한 것이다. "큰 그릇은 시간을 두고 늦게 이뤄진다(大器晩成)"고 하였다.
참으로 자연의 이치는 묘한 것이다. "큰 그릇은 시간을 두고 늦게 이뤄진다(大器晩成)"고 하였다.
성숙도 더디고 번식 역시 더딘 사람이야말로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우수한 큰 그릇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흔히 '세계'(世界)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때에 '世'란 시간을 두고 인간이 불어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고,
'界'(경계 계)란 주로 인간들이 나름대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 공간적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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