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5)
2009. 6. 8 (월) 영남일보
입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口'(입 구)는 입을 나타낸 글자일 수도 있고, 한편 어떤 물건을 뜻하는 글자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言'(말씀 언)에서의 '口'는 입을 뜻하는 글자지만 '中'(가운데 중)에서의 '口'는 물건을 뜻하는 글자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물건이 굽어져 있는 상태를 두고 '句'(굽을 구)라 하였으며, 굽었다는 뜻 속에는
한편 아직 덜 자란 상태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狗'는 아직 자라지 않은 개, 즉 강아지를 말하고,
'駒'는 망아지를 말한다. 또 아직 덜 자란 양 새끼는 '羊'(양 양)에 '句'를 맞붙이지 않고 '句' 위에 양 뿔의 모양을
위로 붙여 '苟'(양 새끼 구)라 하였다.
그러나 '羊'에 '夭'(굽을 요)를 붙인 ' '(양 새끼 달)이 널리 쓰이게 되자 '苟'는 양 새끼를 뜻하기보다는
'참하다'는 뜻에서 '진실로 구'라 뜻하기도 하고, 또는 '어려울 구'라 뜻하기도 하였다.
같은 글자인 '苟'를 두고 진실을 뜻하기도 하고 어렵다는 상태를 뜻하기도 하는 까닭은 나름대로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참된 것'이 쌓이다 보면 일단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겠기로 '苟且'(구차. 어렵고도 어렵다)한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애당초 좌우를 살피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는 말이 틀림없이 지켜질 진실인 듯한 착각을 지녔든지,
애당초 좌우를 살피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는 말이 틀림없이 지켜질 진실인 듯한 착각을 지녔든지,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마냥 정직한 마음을 지닌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이라는 습성에서 연유된 것이었든지 간에
아무튼 누가 들어도 거침없는 말은 우선 당장에는 시원스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실은 아직 성숙되지 아니한 말,
서툰 말이라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그러나 아직 성숙되지 아니한 채 서툰 말이 있었을지라도, 그 바탕이 양순한 양 새끼의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라
그러나 아직 성숙되지 아니한 채 서툰 말이 있었을지라도, 그 바탕이 양순한 양 새끼의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라
이해하고 오히려 힘은 모자랐지만 본질에 대한 진실성만은 높이 받들고 기억해 가야 할 일이다.
흔히 진실 자체가 힘이라 하지만 한갓 진실이 실현될 만한 힘이 붙어지지 않는 한 그 진실만의 축적은 '苟且'스럽기만
흔히 진실 자체가 힘이라 하지만 한갓 진실이 실현될 만한 힘이 붙어지지 않는 한 그 진실만의 축적은 '苟且'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돈 떨어지면 신발도 떨어지고 신발 떨어지면 양말도 떨어지는 법"이라 하였다.
돈은 많은데 신발만 떨어졌다든지 신발은 멀쩡한데 유독 양말만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굽어진 것은 어떤 경로를 거쳤던 간에 일단 엉켜진 것이며, 엉켜진 것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풀어 거두지 않으면
굽어진 것은 어떤 경로를 거쳤던 간에 일단 엉켜진 것이며, 엉켜진 것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풀어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엉킨 것을 쳐서 거두어들인다는 뜻을 곧 '收'(거둘 수)와 '拾'(주울 습)이라 한다.
그런데 엉킨 것을 함부로 마구 친다면 더욱 엉킬 따름이라, 손쓸 수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남의 살도 내 살처럼
그런데 엉킨 것을 함부로 마구 친다면 더욱 엉킬 따름이라, 손쓸 수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남의 살도 내 살처럼
서로의 동질성을 십분 자각하여 '살살∼' 풀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주워 담아 가야 되리라 믿는다.
본디 힘없는 어린 양이 제 나름대로 현실 밖의 진실만을 지키려 들다가 '苟且'하게 내몰린 그 가엾은 상태를
본디 힘없는 어린 양이 제 나름대로 현실 밖의 진실만을 지키려 들다가 '苟且'하게 내몰린 그 가엾은 상태를
제대로 '收拾'하자면 꼭 기억해 둘 말이 있다. 그것은 곧 "깨끗하다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더럽다'는 말은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덜 없다'는 말이다.
어디 전체 먼지가 꽉 차야만 더럽다고 하는가? 그래도 저것보다는 이것이 '덜 없다'는 것이 곧 '더럽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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