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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Oliver Sacks)

나무^^ 2010. 3. 15. 14:36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마고 출판  

 

이 책은 영국의 신경학 전문의인 저자가 환자들을 치료하며 겪은 임상사례들을 인간적인 따스함을 지니고 자세히 서술한 내용들이다. 따라서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읽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경학적 신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며 미처 생각할 수 없었을 기묘한 현상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제목부터 특이하여 의아한 생각이 들게하는 것처럼 이 책에는 수많은 신경계통의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실려있다. 의학의 발달로 이제는 웬만한 육체적 병상들은 진단이 가능하고 치료 또한 가능해진 오늘날이지만 아직도 제대로 원인을 알 수없는, 또 의학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신경 이상의 장애들이 수많이 많음을 알 수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둘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한다. 이 서로 다른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다루고 결합시켜 실행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그래서 이러한 임상사례들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였다.        

 

제 1부 '상실'에서 저자는 말한다.

'그 누구의 동정도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것 또한 가혹한 시련이다. 그녀는 장애자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신체가 마비되지도 않았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 즉 생명체가 생존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능력을 담당하는 '우반구'에 어떤 원인을 가진 증후군이 나타나면 그 이상증세에 대해 환자 자체는 물론 관찰자 또한 그 상태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에 걸린 생명체는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따라서 치료자는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게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시각적 기억능력에 손상을 입은 P선생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여 끌여당겨 머리에 쓰려고 하는 이상한 행동이나, 교통사고후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젊은이, 이들은 그들의 장애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절대로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 그것이 얼마나 고립된 심연에 이르는 일인지 환자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고통스런 일을 겪었을 때 모든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모든 기억들이 결국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일이며 삶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환자 '지미'의 존재이유를 갈망하는 모습에서는 영혼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제육감' 즉 고유감각을 잃어버린 크리스티너의 사례를 읽으면서는 삶의 오묘한 양면성에 대해서 깨닫게 한다.

 

제 2부 '과잉'에서는 환자들이 겪는 과한 에너지로 인한 여러가지 특이한 사례들이 흥미로운 현상들을 보여준다.

톰슨씨의 경우는 그의 잃어버린 영혼이 자연 속에서 안정을 찾으며 자신의 존재성을 회복하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제 3부 '이행'은 회상 즉 과거로의 이행에 관한 것이다.

관자엽 발작으로 인한 회상과 경험적 환각을 겪는 사람들에게 들리는 음악소리의 신비함, 인도 소녀 바가완디의 지독한 향수는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까지도 한다. 도널드의 되살아난 살인기억은 우리 의식세계의 무한함이 빙산의 떠오른 부분에 불과함을 느끼게 한다. 

 

제 4부 '단순함의 세계'에서는 저능아와 자폐증 환자들의 관한 사례들을 기술하였다.

시인 리베커의 알 수 없는 시적 능력은 그녀가 연극이라는 작업에 임하면서 저능아가 아닌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그리고 즐거히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이나 미술 등의 힘으로 저능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마틴, 쌍둥이 형제, 호세의 이야기 역시 그들만의 독특함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지,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그들 자신에게 포인트를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만이 지닌 창조적 지성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함으로 의미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일이다.  

 

내가 아는 것이, 또 내가 믿고 있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아집이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오류와 어리석음을 버려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시 느낀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 내가 믿을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나와 다른 생명과 신비한 현상들에 대해서 탐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