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위대한 힘에 관한 여덟편의 감동 드라마 >
지은이 사이먼 샤마
옮긴이 김진실 출판사 아트북스
책의 크기가 크고 꽤 두툼한 책이라 다른 책과 더불어 읽으며, 또 책 속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읽었다. 영국의 BBS 방송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지은이 '사이먼 샤마'의 이해하기 쉬운 문장전달력이 돋보인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사와 역사를 가르치는 그는 다양한 분야의 글을 '가디언'에 기고하는 작가이다.
교황이 사랑한 타락천사 '카라바조', 기적을 만드는 남자 '베르니니', 화려한 저택에 걸린그림들 '램브란트' 혁명보다 잔인한 아름다움 '다비드', 폭풍을 일으키는 그림 '터너', 뜨끈하고 땀에 젖은, 화가의 다정한 악수 '반 고흐', 예술보다 큰, 정치보다 힘이 센 '피카소', 말없이 그저 절절한, 색채와 감정의 드라마 '로스코' 이렇게 부제를 단 8명의 예술가의 그림과 생을 조명하여 흥미진진함과 함께 그림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힘이란 결국 경탄의 힘이다. 작품이 마치 세상을 베껴낸 듯해도 예술은 결코 익숙한 세상을 복제하여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의 구현을 넘어 예술은 익숙함을 파괴하려 한다. 물론 예술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망막의 원리가 동원될 수 밖에 없지만, 예술은 망막의 사실적인 이미지를 넘어선 극화된 이미지, 즉 제 2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예술가들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투쟁이 만들어내는 드마틱한 삶의 순간들을 작가는 마음을 다하여 그 감동의 세세함까지 우리에게 전달함으로 그림을 폭넓게 이해하게 하고 그 그림을 그린 예술가의 삶까지 애정을 지니고 보게한다.
'카라바조'는 방탕한 바쿠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살해된 골리앗의 모습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동안의 그림은 재현된 죄인으로서의 카라바조의 모습들이었다. 천재이자 건달이었던 자기 자신을 그림을 통해 투영시킨 그의 묘사력은 단숨에 관람자의 시선을 낚아채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기독교 회화를 창조했던 그의 파격성에도 불구하고 추기경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그림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결국 결투로 인한 살인죄로 추방당한 그는 사면을 위해 그린 그림이 전달되기 전에 죽음을 맞았고, 뒤늦게 전해진 그림으로 자신의 삶을 속죄했다.
'베르니니'는 훌륭한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차가운 대리석에 인간의 드라마를 연출해 낸 그의 작품들은 경이로울 만큼 아름답고 에로틱하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팔을 불로 지져 불행한 영혼의 고통과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얻어내 사실적이기 그지없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아폴로와 다프네' 작품에서 보여주는 감동, '그 대상을 가질 수 없을 때 애욕은 가장 충만하게 차오른다' 는 샤이먼의 말은 추기경이 새겨넣었다는 '무상한 아름다움만을 탐닉하는 사랑은 쓰디쓴 열매를 맛보고 결국에는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하리라' 는 우려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자신의 정부와 관계를 맺은 아우로 인해 불미스러운 사건을 벌이고, 그 일을 무마하기 위해 결혼한 그는 열한 명의 자식을 두고 경건한 삶 속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이십대 초반부터 극적인 드라마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램브란트', 그는 소박함과 근검정신을 존중하는 암스텔담의 부유한 후원자들에게 부와 겸양의 상충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했다. 따라서 그는 부르주아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어 살아 움직이는 생생함을 표현해내었다. 또한 역동적인 힘으로 가득한 단체화를 그려 기존의 역사화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였다. 그의 흥망을 파노라마처럼 느낄 수 있게하는 그림과 글들이었다.
'다비드'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바람직한 예술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영웅, 희생자, 순교자들을 줄지어 그렸다. 또한 정치적 성향이 강한 '구걸하는 벨리사리우스'에 표현된 감동은 그에게 작업실을 갖는 기회를 부여했다. 프랑스 혁명과 연관된 그의 그림들은 관람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내적 갈등의 드라마를 연출해내었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마라의 죽음'과 같이 치밀한 스토리를 담고있는 그의 그림들이 그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지만 그의 그림들은 여전히 흥미롭고 아름답다.
당시 정신나간, 미친 화가로 불리기도 한 '터너'의 그림들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기존 회화의 평범함을 뛰어넘어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적 화법을 과감하게 구사한 그에게 당연하게 돌아가는 평가였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비극적 장면의 연출을 꾸준히 시도하였다.
그의 불분명한 그림들은 어떤 사실적인 그림보다 더 많은 내면적 드라마를 이야기하며 시적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작가는, 그가 연출한 빛과 색채의 연극은 양극단의 감정과 고조된 분위기의 효과를 더 이상 낼 수 없는 영국 최고의 화가라고 말한다.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 속에 떠오르는 풍광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라는 해설처럼 나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본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의 그림이 생각나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많은 일화와 함께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해진 화가이다. 살아 생전 그리도 열망했던 인간애를 이루지 못하고 떠난 그가 죽음 이후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라도 하는 듯(그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늘 '악수와 함께 너의 형이'라고 썼단다.) 그의 작품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인상주의 화가인 그는 순수하고 밝은 원색의 강렬함으로 관람자가 화가의 생각에 바로 공감하기를 바랬다. 완전한 희열의 상태에서는 여러 감각이 서로 하나가 되어 정신을 마비시키며 동시에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상태를 그의 그림은 표출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 같은 ,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전에 반짝이는 빛과 화려한 색으로 표현되었던 후광이 상징하는 그 신성의 손길로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을 쓰다듬고 싶은 것이다' 라는 그의 고백은 그가 그림에서 보여주는 감각의 흥분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죽기 전 그렸던 그림들은 그가 건네는 절절한 이별의 노래이며 평생 두려워 했던 외로움의 호소였다고...
피카소의 그림은 전쟁에서의 어떤 학살도 막지 못했지만 적어도 학살과 만행을 고발하는 기록은 될 수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1909년에 그는 전통회화의 마지막 공격으로 창조성을 보여주는 작품 '아비뇽의 여인들'을 발표하며 큐비즘의 시작을 알린다. 그는 '진정한 형태란 사실 망막의 상에 맺힌 상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다. 예술가의 눈은 최고의 진실을 향해 열려있고 그의 작품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게로니카'는 파괴적인 악마들의 짓거리를 당연시하는 안일함과 나태함을 고발하는 일종의 그 나름의 칼이었다.
'로스코'에게 예술은 자기만족이나 미적 나르시시즘에 불과한 형태들의 배열 그 이상의 자기만의 주제가 중요했다. 그의 중심주제는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비극이었다. 또한 추상표현주의 화가 모두가 직면했던 구도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의 단순한 그림들이 의미하는 침묵 속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적 의미를 탐구해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일관했던 그의 관객을 끌어들이는 절절함은 인간적인 포용과 수용의 몸짓이었음을 작가는 설명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화가들의 많은 작품을 탐색하는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며 치열하게 삶에 임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설하며 도와준 지은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화가들의 작품 중 한 작품씩 사진으로 올렸다. 고흐 작 '석양에 씨뿌리는 사람'은 색상이 너무 밝은 사진이다. 책 속의 그림은 석양의 느낌이 드는데, 이 사진은 마치 이른 아침 같은 인상이다. 실제의 그림을 보는 것과는 많이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 카라바조 作. 예수의 부름을 받는 성 마태오. 캠버스 유채.1508~1601년경. 코타첼리 교회당.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 로마
▲ 베르니니 作. 축복받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 대리석. 1674년. 알티메리 교회당. 산 프란체스코 아 리파. 로마
▲ 램브란트 作 '탕자의 귀환'. 1606~1609년. 메르미타즈 궁전 미술관. 러
▲ 다비드 作. 마라의 죽음 캔버스에 유채. 1793년. 벨기에 왕립 미술관.
▲ 터너 作. 노예선. 캔버스에 유채. 1840년. 보스턴 미술관.
▲ 빈센트 반 고흐 作, 석양에 씨뿌리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1888년. 크륄러 뮐러 박물관.오테를로
▲ 피카소 作. 아비뇽의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 1907년. 뉴욕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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