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앞 산에서 그린 진달래 (2005년 연필)
연필로 명상하기
프레드릭 프랑크 作
'여섯 살 때부터 나는 연필을 쥐고 사물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려보려는 열의가 대단했었다. 그리하여 내가 쉰 살이 되었을 때는 세상 만물의 다양한 생김새에 대하여 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일흔살이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 그려놓은 모든 것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흔 세 살에 비로소 나는 자연과, 동물, 식물, 새, 물고기, 벌레의 참된 본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여든살이 될 때에는 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고, 아흔 살이 될 때는 아마도 사물의 신비를 꿰뚫어보게 될 것이며, 또 백 살이 된다면 나는 아마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백 열 살이 될 때는 내가 무엇을 그리든지(그것이 하나의 점이든 선이든) 그 모든 것 자체가 온전한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백 스무 살이 될 때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아도 사물이 내 눈을 통해 저절로 표현될 것이다.'
위 글은 미술의 대가라 불리우는 작가가 일흔 다섯 살에 쓴 머릿글로써 책을 펴면 처음 대하게 되는 글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치과의사이면서 화가, 문필가로 널리 알려진 '프레데릭 프랑크'이다.
그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하다가 동양의 선(禪) 등 여러 명상 세계를 접하고는 직업적인 활동을 버리고 뉴욕 근처에 자신이 손수 지은 집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 책을 번역한 류시화씨는 소개한다.
몇 년전 나는 내가 쓰는 글에 그림을 그려넣고 싶어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이 책을 빌려보고 사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구할 수 없었다.(1988. 정신세계사) 그래서 이 책을 복사하여 책장을 씌워 소중히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쪽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설득력 있게 말한다. 이 책은 결국 그의 워크숍 과정이라 할 수있다.
그 내용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살아있는 것들을 신뢰하며 마음으로 보라'는 것이다. 그는 고대인들의 연필로 명상하기와 여러 성인들의 명상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망설이지 말고 눈 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그릴 것을 이야기한다. 즉 그리는 일은 단순한 취미나 오락을 넘어서 하나의 알아가는 길(道)이고, 무지(無知)에서 깨어나는 수련(修鍊)이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무엇이든지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생물과 비생물, 평범한 사람들과, 늙은 사람들의 누드도 그리면서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연필로 명상하기의 십계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하루도 쉬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그려라.
둘,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영감이란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라 일을 해 나가는 가운데서 찾아오는 것이니까.
셋,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지금껏 배워온 것에 대해서는 모조리 잊어라.
넷, 좋은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거나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말며, 형편없는 그림이 되었다고 해도 그 자리서 잊어라.
다섯, 남에게 보여줄 욕심으로 그리지 마라. 자기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자기 그림에 대해 비평가가 될 수 없으니.
여섯, 오로지 자기 자신의 눈만을 신뢰하라. 그리고 손으로 하여금 눈이 보는대로 따르도록 하라.
일곱, 세상 천지 그 어떤 박물관에 있는 금은보화보다 자신이 지금 그리고 있는 이 생쥐 한 마리를 더 소중하게 여겨라.
여덟, 세상 만 가지 사물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그리고 풀대궁 하나라도 자기의 몸만큼 아껴라.
아홉,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그려라. 그리는 그림마다가 깨어있는 눈에 대한 찬송이 되게 하라.
열, 시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며, 시대에 맞는 작품을 만들려고 애쓰지도 마라.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시대이다.
이 책은 내게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살아가면서 내가 놓치고 소홀했던 점들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생각하게 했다. 이 책이 다시 출판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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