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98) 聿 (붓 률)

나무^^ 2010. 4. 14. 23:03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98)                                                     

                                                                                            2009. 9. 7 (월) 영남일보

                          聿 (붓 률 : 손으로 붓을 잡은 모양)

 

 

                마치 빗자루와 같은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글자로 '붓'이라 하였다.

                    이 붓은 손으로 잡고 기록해 나가는 인류 문명의 필수도구로, 소리나 말이 뛰어 넘지 못하는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애당초의 글씨는 짐승의 뼈나 대나무 조각 또는 나무 조각 위에 쓰여졌고, 붓 역시 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각칼로 된 것이었기로 이를 '도필'(刀筆)이라 불렀다. 오늘날과 같은 붓이 이루어지게 된 계기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를 무찌르며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데 많은 공을 세운 진나라의 장수 몽염이라는 자가 토끼털을 써서

                    만든 것이 처음의 붓으로 '토모필'(兎毛筆)이었다.

                    이후로 한나라 때에 이르러 환관으로 왕에게 문서 출납의 업무를 담당하던 채륜이라는 자가 무거운 죽간이나

                    목간을 들고 출입하는 불편을 없애려는 방안으로 발명해 낸 것이 주로 헌 그물에서 나온 실을 압축해 만든 종이이다. 
                    그래서 '실'(絲)을 씨(氏)삼아 만든 것이 종이라는 뜻에서 '紙'(종이 지)라 하였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참으로 정확한 것이다. 붓과 종이가 등장함과 동시에 거의 같은 시기에

                    벼루와 먹이 나와 이른바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이뤄지게 되었다.

                    글방에 두고 쓰는 네 가지 벗 중에서 종이를 제외한 붓과 벼루와 먹은 같은 기(氣)를 타고난 가까운 벗들이다.

                    나오고 드는 것이 서로 비슷하고, 쓰임에 사랑을 받거나 덜 받는 것이 거의 같다.

                    그렇지만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그 수명은 서로 다르다.
                    이런 뜻에서 일찍이 중국의 당자서(唐子西)는 옛 벼루에 새김을 두어 말하기를,

                   "붓의 수명은 날로써 헤아리고, 먹의 수명은 달로써 헤아리지만, 벼루의 수명은 한 세대 즉 30년을 두고 헤아린다"

                   (筆之壽以日計, 墨之壽以月計, 硯之壽以世計)고 하였다.

                    붓은 그 생김이 날카롭기 때문에 쉽게 닳을 수밖에 없는 것이나, 먹이나 벼루는 붓보다는 둔하다.

                    그 중 먹보다는 벼루가 더욱 둔하기 때문에 둔한 자는 더욱 오래 살아갈 수 있고, 날카로운 자는 쉽사리 명을

                    마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먹을 찍어 종이 위에 움직이는 붓은 피곤을 거듭하여 쉽사리 닳아 빠지게 마련이지만

                    그림을 그리든지 글씨를 쓰든지 맘대로 하라는 듯 드러누운 채 조용히 있는 종이는 글방의 벗 중에서 가장 그 수명을

                    오래도록 누릴 뿐이다. 자연스럽게 태어났다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소 둔한 듯 태도를 취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을 일상으로 삼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흔히 알량한 붓 자랑으로 평생 동안 쌓아온 자신의 명성이나 인격을 하루 아침의 티끌로 바꿔 버리는 일이

                    종종 있음을 볼 때마다 붓은 역시 칼과도 같은 것이라는 점을 재삼 느낄 수밖에 없다.

                    칼도 분명 인간에게 있어서 유용한 도구요, 붓 또한 칼 못지않게 유용한 도구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둘 다 잘 쓰면 유용하나 잘못 쓰면 아주 위험천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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