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100)
2009. 9. 21 (월) 영남일보
물은 하늘과 땅을 두루 돌아 긴 여행을 한다. 하늘로 올랐던 구름이 비가 되어 땅위에 내리면 어김없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한편, 되도록 스며들 수 있는 한 땅 속 깊숙이 스며들어 지하수로 저장된다.
물은 흐르는 물이건 스며든 물이건 만물을 적셔 준다.
특히 스며든 물은 어떤 바위 구멍을 통해 샘솟아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니 이런 샘의 모양을 '泉'(샘 천)이라 하였다.
즉 위의 한 점은 물이 새어 나오는 '구멍'을 뜻하고, 그 밑은 새어나온 물이 일단 고이게 된 '웅덩이'가 있고,
아래는 '흐른다'(水; 물이 흐르는 모양)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또 일단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이 다시 구멍을 통해 새어 나온다는 뜻에서 '샘'이라 하였다.
옹달샘만이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옹달샘이 새어 나오는 곳은 언덕 밑이다.
그래서 샘이 솟는 제법 쓸만한 언덕을 '厂'(언덕 한)에 '泉'을 붙여 '原'(언덕 원)이라 하였다.
아무리 평평한 언덕일지라도 샘이 솟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언덕일 뿐이며,
이 언덕에서 솟아난 물은 물길 중에 가장 꼭대기에 있는 첫 구멍이기 때문에 언덕에서 샘솟는 물은
곧 '源'(근원 원)이라 하여 나무로 치면 뿌리와도 같다는 점에서 '根'(뿌리 근)과 짝지어 '根源'이라 말한 것이다.
자세히 알고 보면 모든 나무의 시작은 '根'(뿌리)이요, 넓은 바다의 시작은 '源'(근원 원)이다.
그러므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짝지어 일의 시작, 또는 바탕이라는 뜻으로 쓰기에 이른 것이다.
물은 그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도 스며드니 높고 낮음을 가늠해 주는 것이 물이며,
생명을 촉촉이 적셔 부드럽게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물이며, 또한 무겁고 가벼운 것을 가늠해 주는 것도
물이다. 그래서 물을 담고 그 덕분에 곧게 자라는 것을 두고 '식물'(植物)이라 하였고,
물을 먹고 전후 좌우 상하로 움직이는 것을 두고 '동물'(動物)이라 하였으며,
몸속에 물을 지니고 어찌 되었던 만물의 영장 노릇이라 자부하는 사람을 두고 '인물'(人物)이라 하였다.
한편 제 몸속에 '물'을 지니고 있으면 살아있는 물건이라 이르지만 막상 제 몸속에 '물'이 쪽 빠지고 보면
이런 물건은 죽은 물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물은 곧 생명의 실체, 바로 그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뜻에서 "가장 큰 선은 물과도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덕을 베풀지만 다투지 아니한다.
모든 이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만 머무르기 때문에 거의 도에 가깝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노자 도덕경 8장)는 말씀을 제대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남에게 이로움을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생각까지 잊어버려야 옳은 착함이며,
남들이 꺼려하는 낮은 곳을 끊임없이 찾아 밤낮없이 흐르는 물이야말로 '겸손'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되도록 낮은 곳을 찾아 만물을 적셔주는 물이 지닌 그 깊은 덕성도 높지만, 나아가 바람과도 같이 걸림 없이
천지를 운행하는 그 폭 넓은 활동이야말로 자리와 이익만 챙기려드는 소인배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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