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1. 22 (월) 영남일보
만물은 하늘과 땅 사이를 벗어나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은 덮고, 땅은 싣고 있다(天覆地載)"라 했고,
나아가 동식물을 망라한 모든 생명체 중에서도 "오직 사람만이 가장 신령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일 귀한 존재(惟人最貴)"
라고 했다. 모든 생명체, 특히 그 중에서도 동물은 한결같이 코와 입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코로는 하늘의 기와 통하고, 입은 땅에서 나오는 먹이를 섭취한다.
그래서 코에 뚫린 숨구멍과 입에 뚫린 목구멍을 합쳐 '목숨'이라 했다.
동물과 사람은 하늘의 기운을 호흡하는 일을 똑같이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땅에서 나오는 먹이는 서로 다르다.
같은 동물이라도 식물을 뜯어 먹고 살아가는 초식류가 있는가 하면, 같은 짐승만 잡아먹고 살아가는 맹수류가 있다.
게다가 풀이나 고기는 물론 벌레까지도 가리지 않고 먹고 살아가는 잡식류가 있다.
같은 잡식류라 할지라도 돼지는 쌀겨를 먹고, 사람은 쌀을 먹으며 살아가니 먹는 것으로만 볼지라도
단연 사람이 가장 고급스러운 것을 골라 먹는 셈이다.
다른 일은 제쳐 두고라도 우선 먹는 재료로만 보아도 사람은 '가장 귀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작용에서만 보더라도 다른 동물은 부끄러움을 모르지만 오직 사람만이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장 신령한 존재'라 한다. 이처럼 신령하고도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천지간에 살면서 천지의 고마움을 알고,
천지는 곧 만물의 부모라, 천지처럼 높고도 두터운 은혜를 잊지 않고 '섬길 줄 아는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천지와 같이 부모의 뜻을 이어나갈 도리를 갖추려는 '도덕적 존재'도 바로 사람뿐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삶의 과정을 조상의 뜻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적 자각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야 하며, 그런 조상의 뜻과 하늘의 뜻을 잊지 말고 고스란히 받들며 살아가자는 의미로 행하는 일이
곧 '제사'인 것이다.
흔히 "물을 마심에는 반드시 근원을 생각할 것(飮水思源)"이라는 말처럼 "먼 조상의 뜻을 좇아 그 두터운 은혜 갚을 길을
찾는다(追遠報本)"는 것이 바로 두터운 제물을 아낌없이 바치는 삶의 한 행사, 곧 제사이다.
술도 잘 익은 술을 바쳐야 하므로 잘된 술을 뜻하는 '酋(잘된 술 추)'를 두 손 모아 올린다는 뜻에서 '奠(드릴 전)'이라 하여
제사에는 반드시 술을 올리고, 고기(肉)를 올리도록 되었기 때문에 '祭(제사 제)'라 하였다.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간편하고도 실질적인 실용성이 강조되기도 하나 제사 지내는 일만은
실용을 강조하기 보다는 아낌없는 정성이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큰 술독을 사용하고, 그대로 바치면
복이 온다는 뜻에서 '福(복 복)'은 조상을 말하는 '示(신의 본디 글자)'에 '큰 술독'의 모양을 붙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제물도 한결같이 되도록 두터이 올려야 한다는 뜻에서 '厚(두터울 후)'도 조상께 올리는
제물의 두터운 모양을 그대로 그려낸 글자다.
밥보다는 떡이 훨씬 두터운 것이다. 그래서 조상 덕에 먹는 것이 바로 떡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