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來 (올 래)

나무^^ 2011. 5. 9. 19:20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1. 29 (월) 영남일보

                    來 (올 래 : 보리 모양) 

 

 

           인류가 살아온 터전은 먼 옛날에는 숲 속의 천연동굴이었다. 그리고 사냥을 해 먹고 살았다.

           그러다 농경시대로 들어서 가장 먼저 경작한 곡식은 '피(기장)' 농사였다. 찰기장인 '黍(찰기장 서)'로는

           술을 담가 마셨고, 메기장인 '稷(메기장 직)'은 밥을 지어 먹었다. 

           기장을 땅에 심어 백성들이 삶을 이어왔기 때문에 흔히 '社稷'이란 말은 땅에 터전을 잡고 백성이 살아온 

           역사의 시작을 가늠하는 말이 되었다. 즉 음식의 기원이 목숨을 연명해온 기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쌀이라는 좋은 음식
재료가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봄에 심었다가 가을이 되어야 걷어들이는

           일년 농사가 이뤄졌다. 이로써 본격적인 농업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쌀농사는 일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얻어지는 곡식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농사하면 쌀을 일컫게 되었다.

           그래서 농사라 함은 '봄에 밭 갈아 가을에 거두는 일(春耕秋收)'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춘궁기라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가을에 거두어 겨우내 먹다 보면 웬만한 농가에서는 봄에 식량이 떨어지는 어려움을 해마다

           반복하는 애로가 곧 농가의 큰 슬픔이었다. 그 후 보리를 얻게 된 일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보리는 가을에 심어 늦봄에 거둬들이는 곡식이기 때문에 춘궁기를 지나 여름을 거뜬히 넘길 수 있는 대체작물이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온갖 슬픔 중 그 어떤 슬픔보다도 배고픈 슬픔을 견디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보리농사를 시작하게된 일은 참으로 다행하고도 기특한 인간의 큰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뜻에서 보리를 찬양한 이른바 '麥穗歌(서수가)'는 삶에 있어서 참으로 감동적인 큰 기쁨을 노래한 것이었다.

           멀리 떠난 님을 한사코 기다리는 일도 어려운 일이요, 늙어가는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노력도 끈질긴 일이다.

           그러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대체식량을 얻을 수 있는 일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뜻에서 '왔다'는 뜻을 나타낸 글자인 '來(올 래)'는 본디 보리의 모양을 본 뜬 글자였다.

           대부분 가을에 얻는 곡식은 '禾(곡식 화)'로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식물
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지만,

           보리는 차가운 겨울을 밭에서 자라다가 늦봄이 되어서는 익을수록 고개를 반듯하게 쳐드는 식물이라는 뜻에서

           가을 곡식과는 그 모양이 다르다. 보리의 모양에서 다른 곡식들과는 다른 모양을 지니는 것 중 더러 어떤 것은

           낱알 대신에 '깜부기'가 끼어 있다. 그래서 깜부기가 낀 보리의 낱알을 그대로 본 든 글자가 곧 '來'이다.

           그렇기는 하나 보리는 봄에서 가을걷이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식량을 대체해주는 고마운 곡물이라는 뜻에서

           본디 명사로 쓰였던 '來'가 '살판 날 일이 다가왔다'는 뜻에서 '왔다'는 말로 바뀌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보리 자체는 겨우내 눈 속에서 자라다가 봄이 되면 얼었던 뿌리가 부풀어 뜨기 때문에 반드시 밟아 주어야 하는

           과정이 뒤따라 '來'에 발자국을 본 뜬 '夕(저녁이라는 뜻이 아니라 발자국을 뜻함)'을 붙여 '麥(보리 맥)'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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