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2. 13 (월) 영남일보
夂 (뒤져갈 치 : 止 가다를 뒤집어 놓은 모양)
본디 '止'는 종아리, 뒷꿈치,발바닥, 발가락을 그대로 본뜬 글자이다.
그래서 발이기 때문에 '가다'는 뜻으로 썼고, 발 하나이기 때문에 '그치다'는 뜻으로도 썼다.
이 같은 예는 마치 亂(어지러울 란)을 '어지럽다'는 듯으로 썼고, 어지럽기 때문에 '다스리다'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夊(천천히 걸을 쇠)'는 발딛음을 자주 하지 않고 더디게
걸어가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로 '頁(머리 혈)에 夊을 붙이면 '夏(여름 하)'가 되어 머리를 세우고 천천히
걷는 '여름'을 뜻하는 글자가 된다.
그러나 '夂'는 뒤를 쫒아 따라간다거나 가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뜻을 나타낸 글자로 '夊'에 '冰(얼음 빙)'을
붙여 '冬(겨울 동)'이라 하였다. 즉 겨울이란 얼음이 얼고 다시 봄으로 돌아가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되는 때가 곧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낙엽이 되며
벌레들은 땅속으로 숨어든다. 사람들은 되도록 활동을 멈추고 몸을 움추리며 쉰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에는고개를 들고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으며, 이처럼 느릿느릿 걸어더니는 모습을 양반으로 여겼다.
한 해의 중심이 바로 여름이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夏(여름 하)'를
그들의 국호로 삼았던 것이다.
한참 더울때는 바람을 내는 부채가 필요하나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난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꾸어 여름에는 난로가 겨울에는 부채가 필요없는 일이다. 그래서 본디 쓸모는 많으나 때에 따라
쓸모가 없는 것을 '동선하로(冬扇夏爐: 겨울부채와 여름난로)'라 했다. 또 여름에는 풀처럼 맘껏 자라다가
겨울에는 벌레처럼 움추려드는 '동충하초(冬蟲夏草)' 는 때맞춰 변신하며 제나름대로 생명력을 연장해나가기
때문에 양생에 좋은 약재로 사용한다.
'夂'나 '夊'와 비슷한 글자로 '久(오랠 구)'가 있다. 이 글자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무는 모양을 그대로 본뜬 글자이다. 즉 종아리를 더 이상 떼지 않고 땅에 그대로 머문 모양을 그려 놓은 것이다.
삶을 좀 더 연장하려면 여름에는 천천히 걷고 겨울에는 되도록 활동을 제약하며 움추리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여겨온 삶에의 철학이 이세 글자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와 장소에 따라 머뭄과 나아감을 잘 가늠하여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