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주 박물관 전경
발트3 국의 수도를 휘 둘러보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넘어오는데, 국경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과거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에어컨을 끈 버스에서 갑갑함을 참으며 기다리는 동안 몸에 밴 습관은 너나할 것없이 하루 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여행경험이 많은 승객들의 여권을 일일이 조사하는 과정이라나?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과연 이런 조사과정이 그들에게 득보다는 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구태의연했지만 그래도 '철의 장막'이라고 배웠던 무시무시한 나라를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지루함을 참았다. 그리고 내가 이 나라를 와보고 싶었던 이유는 예술 문화적 관심이었다. 좋아하는 음악가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나 작가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긴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생각나는 일은, 어린시절 오빠의 책꽂이에는 시인 '푸쉬긴'의 시집이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는 시집을 뜻도 모른 채 펴서 읽으며 멋지다고 생각했다.ㅎ
가이드가 '대국굴기(大國崛起) 비디오( EBS 2007.1.29 ~2.10. 재방송 6.25 ~7.10 ) 를 틀어주어 러시아 역사를 알고 관광하는 즐거움을 더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기계작동의 문제가 있어 조금밖에 보지 못했다. (책 : 강대국의 조건)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의 전성기와 그 발전과정을 12부로 다룬 것이다. 우선 '뼈의 도시'라고도 불리울 만큼 엄청난 희생을 치룬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 어린 황태자 시절과 표트르 대제때의 초상화 ('위키 백과' 에서 담아온 사진)
* '상트 페테르부르크' 라는 도시 이름은 '성스러운 베드로'라는 뜻이며 '표트르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란다. 이 도시는 표트르 1세가 늪지인 황무지를 돌로 메워 이룩한 도시라고 한다. 타지에서 들어오는 모든 선박과 사람들에게 배삯으로 돈 아닌 돌을 받았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로 불리는 표트르 1세(1672~1725년)는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였다. 어린 시절을 궁밖에서 외인들과 함께 보낸 그는 서양문물을 기반으로 한 서구화정책과 영토확장으로 거대한 '러시아제국'을 만들기에 이른다.
세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 또한 일찍 죽었다. 둘째형은 정신지체장애자여서 그가 차르에 올랐으나 이복누이 '소피아'의 쿠데타로 인하여 청소년기를 크렘린 궁밖 외인촌에서 지내야 했다. 그는 서유럽 선진국가에서 온 기술자 등을 접하며 여러 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서양문물을 익혔다. 키가 2m에 이르며 준수한 외모의 그는 모스크바 대귀족의 딸과 결혼했지만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스만 제국, 즉 터키와의 전쟁인 아조프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의 전제군주가 된다. (1696년). 그러자 그는 오스만 제국에 맞설 만한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외국과의 동맹을 계획하며 손수사절단으로 위장해 프로이센에서는 대포조작 기술을 익히고, 네델란드에서는 선박건조 기술, 영국에서는 수학과 기하학을 배우는 등 전문가 수준에 오르며 리더로서의 능력을 함양시켰다. 그의 이러한 모든 노력은 러시아를 근대화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비효율적인 나라정책, 몽골의 잔재가 남아있는 국민들의 용모와 의상의 개혁, 키릴 문자의 간소화, 유럽의 문화와 기술의 도입 등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어느 누구의 뜻에만 부합되어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바다로의 교역로를 열기위해 스웨덴과 대북방전쟁에 돌입했지만 스웨덴 칼 2세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주변국의 지원을 받지 못한 그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 아조프와 흑해 함대를 넘겨주어야 했다. 본국으로 돌아온 그는 새로이 구축한 막강한 해군으로 핀란드와 스웨덴을 정복하고 이때를 발판으로 유럽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며 '임페라토르(황제)'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러시아제국'을 만방에 선포할 수 있었다.
1703년 만년에 그는 발트해 바닷가, 러시아의 북서쪽 네바강 하구에 있는 불모지에 서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에 몰두한다. 이 지역은 델타지역의 자연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 위에 세워졌다. 그 당시 노동으로 죽은 노예들의 수많은 시체가 묻혔다 하여 '뼈의 도시'라는 오명까지 붙으며 희생을 치룬 도시였다. 토목공사에 지친 민중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자신의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를 비롯하여 반대세력들을 척결한다. 그리고 알렉세이의 아들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독일계 평민인 두번째 왕후 '에카테리나'를 계승자로 책봉했다. 그는 배를 타고 건설현장을 순시 중 한 병사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그를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폐렴에 걸려 그 다음해 사망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을 반대한 아들까지 척결한 그였지만 이러한 자비스러운 인간미도 있었다.
18세기 초부터 러시아 최대무역항으로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러시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면서 인구가 증가했다.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각종 러시아 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2차세계대전시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40만명이 아사되면서까지 지켜낸 그야말로 '영웅 도시'였다. 소련이 해체될때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리었다가 다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아무튼 내가 본 이 도시의 위용은 대단했다. 그리고 표트르 대제의 뛰어난 대범함과 통솔력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었다.
* 물의 도시라고 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74km에 이르는 네바강을 어느 곳에서나 자주 볼 수 있었다.
* ↑ 손쉬운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언제나 깨끗하고 편안한 잠자리,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점이다.
영어가 서툰 사람이 배냥여행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안락한 잠자리를 구하는 일이다. 여비가 넉넉하다면야 뭐 상관없지만...
* ↑ 테카브리스트 광장에 있는 '성 이삭'성당은 1818~1858년 50 만 노동자를 동원하여 40년간 만든 세계 최대의 성당이다.
성당 밑에는 24,000개의 말뚝을 박아 기초를 다졌으며 황금빛 돔을 장식하는데는 금이 100kg 이상 들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22명의 화가들이 참여한 103점의 벽화와 52 점의 모자이크화, 300 개 이상의 부조가 성당을 장식하고 있으며,
14,000여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단다. 전망대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볼 수있다고 한다.
이 고풍스러운 건물의 아름다움은 종교가 이룩한 업적이다. 역사상 종교의 수많은 문제점과 회의에도 불구하고...
* ↑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에카테리나 2세가 1782년 프랑스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든 표토르 대제의 청동기마상.
* ↑ '피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건축물의 그리스도 부활 성당이다. 알렉산드로 2 세가 피를 흘리며 죽은 자리에 지었다고...
모스크바 '상트바실리' 대성당을 모델로 했단다. 내부에는 유명한 화가들의 모자이크화가 많다고 한다. 들어가보지 못하니 원...
* 1714~1725 년에 건축된 이 여름궁전이 현재의 바로크풍으로 장식된 것은 1745 년에서 10 년간이었다고 한다.
'삼손'이라고 불리는 대분수에서 시작되는 운하는 핀란드만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장관을 이룬다. 삼손은 러시아를
상징하고 입이 찢기우는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 지금은 분수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 규모와 화려함이 대단하였다.
* ↓ 인터넷에서 분수가 작동되는 때 사진을 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브니엘' 님 블러그에서 담아온 사진)
* 다시 계절 좋은 때에 러시아 한 나라만 천천히 둘러보는 배냥여행을 하고 싶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러시아식 레스토랑인데 교포분인지 한국인이 차가버섯과 유명한 도자기 찻잔 등을 팔았다.
너무 많은 물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짐이 무거워서도 살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일행은 모두 아름다운
도자기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한쪽에 앉아서 성량이 썩 좋은, 러시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좀 뚱뚱한 가수였는데, 얼마나 잘 부르는지 유명 성악가 빰치는 아름다운 노래솜씨였다. 즐거움을 누린 나는 주저없이
그의 사업성 모자에 적은 돈이지만 놓고 나왔다.
식사량이 적어 늘 음식을 덜어놓는데 이 레스토랑에서는 맛있어서 다 먹었던 것 같다. 디저트 아이스크림까지ㅎ..
* 넵스키 대로 (구해군성부터 알렉산드 넵스케성당까지 4km)는 '네바강의 거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엡프스키'의 '좌와 벌' 소설에 나오는 장소이다. 나는 젊은 시절 그의 소설들을 심취해 읽으며
탄복했었다. 존경심과 함께 어릴적 품었던 작가의 꿈이 좌절을 느껴야 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르지 못할 문장력이었다.
150여년전 작가는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되어 그 거리를 오가며 소설을 썼을 것이다. (1866년 잡지 '러시아 통보'연재)
나는 그의 소설을 읽고 그가 살았던 나라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거리를 와보는 것만도 즐거움을 느낀다.
*
↓ 넵스키 대로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카잔 대성당'의 모습이다. 로마의 산피에뜨로(성베드로) 성당을 본뜬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이다. 스트로하노프 백작의 농노 출신 건축가 '바로니킨'에 의해 1801년부터 10년간 지어졌다.
94 개의 코린트식 기둥의 고풍스러움은 압도적이었다. 이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내부에는 19세기 초 거장들의 이콘화가 있고 프랑스군에게서 빼앗은 107개의 군기와 승리의 트로피가 걸려있단다.
성당 앞면의 '카잔의 마리아상'이 유명하다. 돈독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거대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을 볼 때마다
종교를 명분으로 했던 인간들의 막강한 권력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멋있는 카잔성당의 야경을 정말 잘 찍으셨다. ('자연과 더불어 자유인이고 싶은 사람' 블러그에서 담아온 사진)
* ↓ 무슨 행사인지 알 수 없으나 수많은 여인네들이 줄지어 간단한 춤을 추고는 행진을 하며 지나갔다. 시위를 하는건지?
* ↑ 이 날은 종일 약간의 비가 흩뿌리다 말다 했다. 시민들은 거의 우산을 쓰지 않는 듯 햇다. 아가가 흙장난을 하고 엄마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앉았다. 미술을 전공한다는 현지가이드와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우리 가이드는 우비를 입었다.
* ↑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바로크식 건물의 '예르미타시'국립박물관(러시아 황제의 겨울궁전)이 보인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 르브르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미술관인 소예르미타시, 구예르미타시,
신예르미타시, 예르미타시극장, 동궁의 5개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건물로 120개의 계단이 있다.
현재 본관인 동궁은 로마노프 왕조시대의 황궁으로 독일 출신이었던 예카테리나 2세가 1764년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빚에 대한 상환금으로 225점의 그림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후 예술적 관심이 높았던 그녀는 4,000점 이상의
작품을 사모으면서 궁전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미게 되었다.
그녀는 밖으로 실내정원이 나있는 '시계의 방'에서 손님접대하기를 즐겼으며 그녀의 전용 미술관인 이 겨울궁전을
'예르미타시'라고 즐겨 부른데서 그 이름이 연유되었다. 예르미타시는 프랑스어로 '은둔자'를 뜻한다.
초기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수집품들을 모아 시작했으며, 1922년 국립박물관으로 명명되었다. 현재 1,020 여개의 방에
세계적 유명화가들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으며, 300만점의 고고학적 유물등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지붕위에는 176개의
조각상이 있다. 가장 큰 볼거리로는 서구미술의 전시품 등이다. (위키백과)
* ↑ 궁전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장에 높게 솟은 알렉산더 기둥이다.
* ↑ 어마어마한 크기의 수반 ! 여기에 사다리 놓고 올라가 꽃을 꽂아 장식했을까?
↓ 화려한 금박의 벽장식으로 가득한 방들이 사치스럽기 그지없지만 아름답다.
*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공작이 날개를 펴고 움직인다는 화려한 '공작시계'
* ↑ 렘브란트 作 '돌아온 탕자'
* ↑박물관 관람료가 여행사비에 포함되어 있어서 맘에 들었다.(400루불) 학생은 무료라고...사진 촬영비는 200루불을 내야했다.
그러나 얼마나 방대한지 휙휙지나치며 몇 가지 설명을 듣고 나니 어느새 한 두시간이 지난 듯 나가잔다. 이 아쉬움을 뭐라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비수기인 지금도 사람이 많은데 성수기에는 오죽할까! 그래서 모두 이어폰을 끼고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이 박물관을 보기위해서라도 이 도시는 다시 올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어찌나 빨리 서두르는지 정신없이 지나쳐야 했다.
* ↓ 비가 오는 관계로 이 멋진 장소를 그냥 지나갈까 묻는다. 몇 사람이 내려서 사진을 찍었는데 설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 비가 오는 관계로 이 도시에서 유람선 타기도 취소되었다. 희망자가 적어서... 야경이 아주 멋지다고 했는데...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많이 피곤하여 그때그때 기록조차 하지 못하였다. 한 나라만 보아도
부족할 만한 시간에 러시아, 북유럽, 발트 3국까지 돌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쉽게 여행길에 오르기에는 경비가
만만치 않음으로 가는 길에 좀 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했던 관광이었다. 한 나라씩 배냥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 정도의 맛만 보고 왔어도 오랫동안 즐거웠고 행복했다.
많은 나라들을 돌아보면서 학창시절 외우기 어려웠던 세계사가 흥미롭게 다가와 영화, 다큐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아울러 동서 강대국들의 냉전과 지나친 전쟁준비 상황들이 위험스럽게 느껴진다. 왜 인간들은 역사를 통해서 좀 더
배우지 못하는걸까? 아니 어쩌면 전쟁의 참혹함을 너무 잘 알기에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그리 과도한 준비를 하는걸까?
역사의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인간이란 비상한 존재들은 영원히,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모양이다.
우리 나라만 해도 권력 다툼이 남북한을 말할 것 없이 치열하며 어리석기 그지없다. 언제나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평화통일을 이루고 북유럽 선진국들처럼 복지정책이 잘 발달한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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