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외국 영화/문학

빠비용 (앙리 살리에르 作)

나무^^ 2018. 2. 20. 20:21

빠삐용

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        

제작   미국, 프랑스 (1973년. 150분)

출연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외 다수

  

1974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던 영화를 EBS 명화극장에서 다시 보았다.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며 보았다. 

거친듯 담백한 남성적 매력이 강한 배우 '스티브 맥퀸', 독특한 개성의 '더스틴 호프만' 그들의 연기를 다시 보는 즐거움이 컸다. 인간생존의 가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참혹함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예술영화이다.

원작자 '앙리 살리에르'는 20세 때 파리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기소되었는데,

당시 사건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실적에 급급했던 검사가 무리하게 기소하여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10년 동안 탈옥을 시도했고 마침내 1941년 탈옥에 성공해서 베네수엘라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1년간 옥살이를 한 후 이듬해 석방되어 시민권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빠비용'으로 써서 고국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영화 <빠삐용> 제작 당시 여러 조언을 하였다고 한다. 즉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것이다.

 

줄거리는다음과 같다.

가슴에 나비 문신(빠삐용)이 있는 주인공이 종신형을 선고받고  죄수 수송선을 타고 프랑스령 적도 부근 기아나로 향하던 중 위조 지폐범 '드가'와 만난다. 빠삐용은 돈을 노리고 달려드는 죄수들로부터 드가를 지켜주는 대가로 탈출자금을 받기로 하고 기아나에 도착해 편한 보직을 배정받기 위해 간수를 매수하려다 실패하고 둘은 노역장으로 끌려간다.

억울하게 살인범이 된 빠삐용은 어떻게든 탈출을 해야한다는 생각뿐이지만  그와 달리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한 드가는 아내와 변호사가 탄원해서 감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빠삐용은 간수에게 구타당하는 드가를 구하려다가 얼결에 혼자서 탈출을 하게 되지만 실패하여 공포의 조셉 섬 형무소 독방에 2년간 갇힌다. 일단 들어가면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한다는 지옥의 독방이다.  

드가는 그에게 코코넛을 지급하지만 곧 들통이 나고, 그는 누구인지 실토하라는 소장의 명을 끝끝내 듣지 않고 인간적 신뢰를 지킨다. 그 결과 음식과 빛조차 공급받지 못한다. 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네나 바퀴벌레를 잡아먹으며 겨우 겨우 연명한다.

소장이라는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과 그에 대항해 버티는 한 인간의 생존이 극치를 보여준다.

 

온갖 고초 끝에 독방형을 마치고 다시 상 로랑 형무소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드가 등 몇명의 죄수와 다시 탈주를 시도한다. 그동안 드가의 아내는 그의 변호사와 정분이 나서 연락을 끊었다. 드가가 비싼 값을 치룬 보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살해되거나 잡히고, 고초 끝에 빠삐용은 독화살을 맞아 바다에 빠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콜롬비아의 어느 해안이었다. 명줄이 기적같이 길기도 하다.

잠시 낙원에서의 삶을 즐기는가 했는데, 수도원 원장의 밀고로 다시 끌려가 이번에는 5년의 독방형을 받는다.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수녀는 그가 건네준 진주만 가로채고 만다.

 

꿈에 그는 '인생을 낭비한 자, 사형에 처한다.'는 말에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나? ㅎ 인생이란 그냥 사는 것이다. 낭비고 뭐고 할 게 없다. 제가 살아낸 만큼 얻는 것이 있으면 다헹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때문이다. 노·장자의 사상은 '무위의 삶'에 유유자적하는 것을 권한다.  부처님은 쓸데없는 업을 짓지 말고 깨달음에 이르기를 권한다. 

인생은 언제나 끊임없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늘 스스로의 욕망에 좌우될 뿐이다. 작든 크든...

낭비와 낭비하지 않음의 척도는 무의미하다. 빠삐용은 억울함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을 선택한다.   

 

지옥 같은 형벌까지 견뎌낸 후 이번에는 상어와 험한  파도로 둘러싸여 탈출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악마도(惡魔島)로 이송되어 비교적 편안한 형기(刑期)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드가를 만난다. 마치 계속해서 그곳에서 살아온 것처럼 태연히 가축을 돌보며 전원생활을 하는 드가. 마치 어디서든 만족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허나 빠삐용은 안주하지 않고 매일 절벽에서 야자 열매를 던져 해류의 흐름을 연구한다. 백발에 이도 몽땅 빠지고 고문으로 뼈를 다쳐 절룩거리는 빠삐용은 드디어 수십미터의 절벽에서 야자 열매를 담은 푸대와 함께 바다로 뛰어내린다. 빠삐용은 멀리 수평선으로 차차 멀어져 가고, 동료였던 드가는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자유는 투쟁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귀한 가치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에 한해서...

그 댓가는 책임으로 치루어야 하는 것이다. 삶은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한 행동의 흔적을 치우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자유나, 행복 이 모두는 한낮 사라지는 환영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은... 

내 목숨을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육체적 양식처럼 내 영혼을 지탱하기 위한 정신적 양식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