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다른나라)

발칸반도 여행 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메주고리예)

나무^^ 2019. 6. 19. 20:19

 

 * 이제 가는 곳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마을 '메주고레'이다. '산과 산 사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2,300 여명이 살고 있다. 마침 도착했을 때는 대대적인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조용히, 그러나 간절함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녹음이 푸르른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도,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도 없는 경건함이 가득했다. 심신의 건강을 되찾고 싶은 많은 이들이 앙상한 예수의 청동상을 어루만지며 기도를 한다. 나는 이 행위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심신의 상처로 고통받는 자신을 겸손하게 참회하며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하게 비는 것이다. 또 성찬식에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았다. 다가오는 신부에게 무릎 꿇고 한 조각 성찬을 받아 먹는, 한 남루해보이는 중년 사내의 얼굴이, 순간 감동적이었다. 그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짓다니!  그 천진한 미소가 어여쁜 어린아이를 방불케하였다.

가까이서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란 이렇게 충만한 것이리라...

성모발현으로 유명한 성 야곱 성당, 평화의 성모상 등을 보았다. 몸이 성치 않은 많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시금 몸이 아프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해주는 자리였다.

 

 

Bosnia and Herzegovina  and South Korea flags. Vector illustration.

  

 

    

 

 

 

  

 

  

 

 

 

   

 

    

   

 

 

 

 

   

 

* 보스니아는 내전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나라라고 한다, 보스니아 전쟁(1992~1995)을 이해하려면 옛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끝나고 체코스로바키아, 풀란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이 생겼다. 이 신생국들은 권력 분쟁에 휩싸여, 세르비아의 알렉산드르 1세가 의회를 파기하고 독재를 시작하며 나라 이름을 유고슬라비아로 바꾸고 통치하기 시작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그런 와중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까지 총 6 개의 연방 지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 연방국들은 공산주의자 '티토'의 통치 아래 결속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이들도 분열의 길을 걷게 된다.

 1992 년 3 월, 연방 가운데 4 개 지역이 독립을 선포하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새로운 국가로 출범했다. 그러나 경제, 종교, 사상 등 많은 문제점들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둘러싸고 폭동이 일어난다. 세르비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심한 유혈사태를 초래하고, 수천명의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했다. 1995 년 5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철수하라는 유엔의 권고를 무시하자, NATO는 세르비아의 공습을 시작했다. 그 결과 평화협정이 열려 공정한 권력배분을 약속했지만 다민족의 공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998 년 새로운 분쟁이 불씨가 되어 코소보 사태를 빚었다. 2003 년, 유고슬라비아는 마침내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독립으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EU의 주관 아래 개최된 새로운 협정에서는 각 독립국에 보다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백과사전 참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네레트바 강과 스타리 모스트 다리

    

모스타르 투어(스타리 모스트)

  

* 같은 장소인데, 날씨가 흐린 날과 쾌청한 날의 사진 색이 많이 차이난다. 실제는 흐린 날이 다니기도 좋고 분위기도 촣은데, 사진은 맑은 날 찍은 게 더 예쁘다. 내가 다닌 날은 날씨가 좀 흐렸었다.

 

헬로!발칸 II 스타리모스트

   

보스니아 모스타르 여행 : 스타리 모스트 등

    

여행 5일차 오전...보스니아..모스타르 가는 길...


* 새벽 4시경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깼다. 무심결에 다시 누르고 잠을 자다 6 시경 일어나 다시 보았더니 친구의 전화, 카톡들이 와 있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헝가리 다뉴브 강에서 참좋은 여행사 관광객이 탄 유람선이 대형 크루즈에 받혀 침몰되었다고 한다. 마침 가곡반 수업 있는 날이라 내가 보이지 않자 지인들이 친구에게 묻고, 여행을 간 것이 알려지고 말았다. 장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염려들을 하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안전이란 없다' (쇼펜하우어 '의지의 표상' 중에서)는 말처럼 우리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언젠가는 결국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쉽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던 '모스타르'로 이동하여 터키식 다리 '스타리 모스트'를 구경하였다.
스타리 모스트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모스타르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다. 오스만 투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네레트바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로 1557 년 건설을 시작하여 9 년간 건축하여 1566 년 완공되었다. 당시에는 아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구간의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였으며, 석재만 이용한 거대한 아치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건축 기술을 그대로 보여 준다. 다리의 폭은 4m, 길이는 30 m 이며, 네레트바 강에서 터의 높이는 약 24 m이다. 헝가리 잠수부들이 강물에 매몰된 파편들을 건져올려 터키의 건축가들이 재배치하여 재건했다고 한다. 2005 년 이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의미 깊은 유명한 다리였다. 곁에 나처럼 혼자 온 룸메이트가 있길래 함께, 또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스타르

   

 

모스타르-시내, 이슬람사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여행] 기념품점 미녀 아가씨

 

  

모스타르 올드타운의 돌길을 걷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올드타운의 돌길을 걷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올드타운의 돌길을 걷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17세기 터키인의 집으로 놀러가다, 모스타르

 

* 나는 이곳 상점에서 바람에 길게 휘날리는 색고운 실크 스카프(100%) 네 개를 샀다. 가격이 저렴하고, 얇아서 한줌 밖에 되지 않았다. 짐이 되지 않아 친구들 선물로 맘에 들었다.  상점의 많은 물담배 등이 터어키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게 하었다.

  

 

 

  * 여러 번의 전쟁 속에서도 건재했던 스타리 모스트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스타리 모스트의 명물 중 하나는 매년 7 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벌어지는 다이빙 대회란다. 네레트바 강은 유속이 빠르고 수온이 상당히 차서 숙련된 다이버가 아니면 쉽게 다이빙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무슬림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터키인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옛날 우리네 시골처럼 커다란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거나 누워서 아침잠을 잤는데,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세계여행211.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사라예보]라틴브릿지, 바슈카르지아 광장 등(feat.Apetit레스토랑,월드컵결승시청)

    

 

  

       

     

2017.5.21 7편 보스니아 모스타르

    

17세기 터키인의 집으로 놀러가다, 모스타르

 

             * 버스로 약 30 분쯤 간 '치트룩'이라는 곳에서 하룻밤 짐을 풀었다. 내일은 옛수도였다는 '모스타르'로 이동한다.

               예전에 동유럽 여행에서 저녁에 호텔을 나가 혼자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어 난감했었는데,

               마침 호텔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나온 터라 지나가는 마을 청년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고 안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여행에서 저녁에 호텔을 나설 때는 잊지않고 사진을 찍곤 한다. 길눈이 어두운 만약을 위해서...ㅎ

               시장에서 사온 잘 익어 검붉은 체리와 처음 본 납작 복숭아를 사서 일행과 나누어 먹었는데 맛있었다.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길(2)

 

 

 

 

   

 

   

 

 

 

        

 

    

 

  

        

 

    

 

 

   

 

   

 

   

 

 

  * 초기 거주자들은 발칸 반도 북서부를 침략한 인도유럽어족의 일리리아인들이었다. 로마에 정복당한 후 제국의 달마치야 속주에

   포함되었고 6 C 후반에는 슬라브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0 C 에 보스니아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크로아티아 왕국

   으로 넘어갔고, 1018 년 이후 비잔틴의 지배하에 놓였다. 1463 년 보스니아는 투르크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훔 속주는 세인트 사바의 

   '헤르체그'(공작)라고 스스로 명명한 지배자들하에서 속주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는데, 헤르체고비나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1908 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 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부로서 세르비아에 합병되었다.

 

 

    

 

    

 

 

 

    

 

    

 

 

     1946 년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던 두 지역은 1991 년 크로아티아가 연방을 탈퇴한 후 1992 년부터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 되었다. 세르비아계는 북쪽과 동쪽의 대부분을, 크로아티아계는 서부를, 이슬람계는 중부 및 북서부의 도시를 차지했다.

     1995 년 12 월 평화협정 조인으로 내전이 끝나고 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세르비아계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백과사전)

     오랜 권력투쟁으로 인한 전쟁은 참혹한 파괴를 초래하며 가족을 잃은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 민족의 분쟁으로 인한 이웃간의 어색함, 가족을 잃은 슬픔을 버스에서 다큐로 보면서, 남북이 분단된 우리의 비극이

     떠올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싸움을 일삼는 우리네 한심한 정치인들이 생각났다.

    

 

   

 

 

 

   

 

   

 

 

             * 멋진 산악지대를 구경하며 가다 멈추어 선 곳에 한 고양이가 꿈틀거리는 뱀을 주시하고 있었다. 놀란 뱀은 섣불리

               도망도 치지 못하고 숨을 숙인 채 죽은 듯 멈추어 있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는 인간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휴게실에서 1유로 하는 에스프레소 커피가 맛있었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한 모금 먹어보라는 권유에

               맛보았다가 그 깊은 맛과 향에 반해 한 잔 사 먹었다. ㅎ

 

 

   

 

 

 

    

 

      

           * 이제 공기좋은 산악지대의 한적함과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보존된 고풍스러움을 지닌, 몬테네그로의 중세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며 동유럽 최고의 피요르드가 펼쳐지는 장관을 보러 '코토르'로 이동한다. 유럽 부자들의

             값비싼 별장들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