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 성벽에서 바라본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서명이 없는 사진은 인터넷 이미지에서 담아온 사진들이다.
* '아드리아해의 진주' 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로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후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하여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에서 모인 학자들이 인간방패가 되어 이 도시를 지켰다. 전쟁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숱한 고난의 역사를 치룬 지역들이라 애틋한 느낌이었다.
* 성벽으로 가는 필레문 입구에 나오는 조각상 분수이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볼 새 없이 지나갔다.
*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1234년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들이 정착한 후 1317년 성벽 안에 수도원을 세웠지만 대지진으로 파괴 되었다. 유일히게 입구만 파괴되지 않아 1498년 제작된 피에타상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과 정원, 성인들의 뼈조각이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성 프란체스코(1182~1226)는 흔히 성 프란시스라고 부른다.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 27세 때 기독교에 헌신해 가난한 약자를 위해 살며 여러 나라에 해외 전도활동을 하였다. 수많은 신자들이 숭상하는 성인이다. 일행들이 '행운을 얻는다'는 영화 장면을 흉내내며 즐거워 했다. 가이드, 중년 부부 중 남편, 8 인의 여인 중 한 분이다.
* 유럽에서 3 번째로 오래된 약국이라는 곳을 지나갔다. 수도원에서 팔기 시작했다던 장미크림이 유명하다고.
* 플라차 대로와 스폰자 궁이다. 스폰자궁은 16 C 초반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과 후기 고딕 양식이 합해진 3 층건물로 17 C 중반 대지진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경제 중심지였던 곳인 만큼 건축했을 당시는 물건을 거래하던 장소로 사용되었고, 그 후 조폐국, 은행, 세관 등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1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고문서와 역사를 기록한 문서들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 기록 보관소로 운영되고 있다. 크로아티아 내전 당시의 참상을 보여 주는 영사실과 내전 당시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전시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은 '성모 승천 대성당'이라고 불린다. 12 C 두브로브니크 인근 로크롬섬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을 때 구조된 영국의 리처드 1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한 헌금으로 원래 있던 교회에 증축해 지었다. 하지만 17 C 대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어 재건하면서 바로크 양식이 더해졌다. 성당 안 보물실에는 성 블라이세의 유물과 두브로브니크의 금 세공사가 만든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고,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성모승천', 라파엘로의 '마돈나' 작품을 볼 수 있다.
* 1444 년에 건축된 높이 35 m 의 아름다운 종탑과 성 블라이세 성당이다.
* 렉터 궁전(Rector’s Palace)은 1272 년 처음 건축되었지만 1435년 화재로 인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1667 년에는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재건을 통해 지금의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었다. 다양한 건축 양식이 인상적이다. '크네베브 궁전(Knežev dvor)'이라 불리기도 한다. ‘렉터’는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궁전은 두브로브니크 시의 행정을 맡았던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이었고, 두브로브니크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궁전 정면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6 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 안뜰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선장이자 자선 사업가로 알려진 ‘미호 프라차트’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은퇴후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산을 국가에 기증하였다.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38년 동상을 세웠다. 통치기간 중에는 궁전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여름 축제 때 안뜰에서는 클래식 공연이 열린다니 멋지겠다.
* 광장에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는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가 1448 년 건축하였다. 대형 돔과 16 면에 조각된 상에서 물이 나오는 이 건축물은 20 km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공급받았다고 하니 그 당시로는 대단한 건축물이었다. 그는 1520년 루자광장에도 또 다른 작은 분수를 만들었는데 폭격에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시간이 바빠 가보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윗부분 돌고래 조각 등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었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식수를 공급한다고 한다.
*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13 C부터 16 C까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이중으로 된 성벽이다. 총 길이가 약 2km이다. 내륙 쪽의 성벽은 최대 6m, 해안 쪽 성벽은 1.5~3 m 정도의 두께로 둘러싸여 있으며, 4개의 요새가 있다. 성벽 밖에는 1개의 요새가 있다. 전쟁과 지진을 겪으면서 여러 번 증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벽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시가지의 풍경과 아드리아 해의 풍경이 퍽 아름답다.
성벽에 오를 수 있는 출입구는 3곳이 있으며, 필레 문 옆에 있는 출입구가 메인 출입구이다. 2개의 출입구는 플로체 문과 성이반 요새 쪽에 있다. 출입구를 지날 때 티켓 확인을 다시 하니 티켓은 투어가 끝날 때까지 꼭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성벽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2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그늘이 없기 때문에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는 챙 넓은 모자가 꼭 필요한데 안 들고 나와서 아쉬웠다. 휴~그리고 반드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 자유시간에 한 젤리 상점에 들어갔는데 천연과일로 만든 형형색색의 젤리들이 엄청났다. 관광객이라면 남여노소 할거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일행 중 부부가 사서 몇 개 주어 먹어보았는데 맛있었다. 그 중 혓바닥 모양의 커다란 젤리를 입에 물어 깜짝 놀랄 만큼 웃겼다. 서슴없이 그 얼굴을 사진 찍으라는 남편을 아내가 질색하며 눈 흘겼다. ㅎ 그래서 나도 민망하여 안 찍었다. 단아하지만 유모어 감각이 없는 깐깐한 아내와 선선한 성격의 그릇이 큰 남편이었다.
*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지 않고 다니니까 자진해서 사진을 찍어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모델이 별로여서 사진도 별로였다. 남의 사진을 잘 찍어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인물을 크게 찍느라 자를 때는 허리 정도가 적당하고, 아니면 발끝까지 나오게 찍는 것이 보기 좋다. 부부로 온 이 중 한 분이 사진을 배웠다고 하더니 역시 잘 찍었다. 그 분이 찍어준 사진 외에는 올릴 만한 게 없다.ㅎ
* 자유시간을 주어서 혼자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모이는 시간에 서둘러 와보니 일행이 하나도 없었다. 왜지? 10 분쯤 기다렸는데도 붐비는 많은 사람들 중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로밍을 안 한 게 막 후회가 되었다. 에구 모르겠다! 설마 날 두고 떠나지는 않겠지... 하도 서둘러 돌아다녀서 기운이 다 빠져 털썩 주저앉아 있는데... 저만큼 노부부 내외가 보였다. 늘 시간보다 일찍 오시는 분들이다. 이리 반가울 수가! 내가 시간을 잘못 안거다. 일이 생기려면 꼭 실수를 한다. 늘 모이는 시간을 메모했었는데, 오늘은 머리 속에 입력을 하고 만거다. 며칠동안 여러번 '헤쳐 모여'를 하다보니 착각을 한 것 같았다. 돌아서면 까먹기 일쑤면서 적지를 않다니... 휴!
* 성벽에서 내려다 본 로쿠룸 섬과 마을 전체가 붉은 지붕으로 모여있는 해안가 마을이 봐도 봐도 참 아름답다.
* 여러 가지 허브꽃이 많이 핀 언덕 높은 곳에서 바다와 마을을 내려다보고 사진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나팔꽃도 았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많이 행복했다. carpe diem!
* 이제는 '풀리트비체'를 가기위해 '보디체'에 있는 호텔로 이동한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약 3시간 30분쯤 버스를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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