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사랑, 그리움의 여백

나무^^ 2021. 6. 10. 00:51

어제 김현옥 작곡가 40주년 기념음악회를 강원대학 백령아트홀에서 관람하였다.

선생님께서 초대해주셔서 먼곳이었지만, 은퇴기념 음악회인 만큼 참석하여 축하해 드리고 싶었다.

몇년 전 강원 KBS 홀에서 열린 음악회에 고속열차를 타고 갔다 오는데, 시간이 잘 맞지 않아 너무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많이 피곤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운전을 해서 가보려고 했더니, 아들이 '밤운전 힘드실텐데 제가 운전해 함께 갈까요?' 한다. 가끔씩 발에 쥐가 나서 이제는 장거리 운전을 하기 싫다고 했던 말을 들었던지라 염려가 되었나보다. 

좀 일찍 퇴근해 온 아들과 서둘러 차에 올라 춘천을 향해 갔다. 아들 낳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ㅎ

 

음악회 시작하기 전 좀 떨어진 곳에 앉아계신 선생님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가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좀 더 여윈 느낌이 확 들었다. 처음 보았을 때도, 왠지 아가씨 같은 느낌이었다.

늘씬한 용모에 차분하시고 맑은 느낌의 인상이 안내책자에 나온 중년부인의 이미지와는 무척 달랐다.

그러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서로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가곡을 계기로 맺은 인연이라 다른 관심은 없었다.

   

넓은 강원대 안에 있는 백령 아트홀은 음향시설도 좋고 쾌적했다.

선생님의 러시아 공연 작품인 '메밀꽃 필 무렵'의 몇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좀 아쉬웠다.

이 작품은 2005년, 러시아의 시베리아쪽에 위치한 면적이 가장 넓은 사하공화국에서 공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KBS2 TV에서 '동토의 땅에 메밀꽃 피우다' 다큐 방송하여 다큐부문 상을 받았다고 한다. 방송에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성악가 김세일 교수님의 청아하고 힘있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대는 누구', '눈아 내려라', 프로그램 마지막에 '나는 누구인가'를 불렸다. (피아노 강우성) 정말 감동적이었다.

성악가 민은홍님의 화려한 목소리는 '회상', '그대를 사랑하리' 를 부르셨다. (피아노 박선희)

테너 왕지웨님은 '겨울 바다로', '도송리 연가'를 부르셨다. (피아노 이맹) '겨울바다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고, 이 노래로 우연히 김현옥 교수님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성악가 이소라님은 저음의 짙은 음색으로 '기차는 네시에 떠나고', '허물지 않는 자리'를 부르셨다.

배우처럼 인물 좋은 유명 성악가 송기창님은 '그리움의 향기',  '눈길'을 부르셨다.

 

2부에서는 김영주 무용가의 '달하' 작품을 감상하였다. 심금을 울리는 유려한 대금연주에 맞춰 세 마리 학이 우아하게 춤추는 무대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나는 학춤을 실제로는 처음 보았는데 그 섬세한 움직임이 퍽 맘에 들었다.

살풀이 춤과 함께 조슬아님의 소리 '남도 시나위'는 시원하게 가슴을 치는 음률이 아름다웠다.

크로스오버 싱어 김정님은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는', '봄밤'을 부르셨다. 특히 봄밤은 너무 좋아서 유튜브에 들어가 찾아보았지만 없어서 서운했다. 녹음이라도 할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녹화를 하는 것을 보면 좀 나중에 올라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정말 노래를 잘 부르는, 음색이 고운 분이다. 

 

선생님의 제자이자 중국 쓰촨 문리대 교수인 하봉선 테너가 또박또박 공들여 발음하는 한국말로 보낸 '중국에서 온 편지' 영상은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흐믓하실까...

여리여리한 모습의 피아니스트 이맹님의 '호수의 달' 연주도 아름다웠다.

멀리서 간 보람이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선생님과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선생님 주위에 축하하는 사람들이 많고, 빨리 돌아가야 해서 서둘러 나왔다. 아들이 낼 새벽에 출근해야하기 때문에 지체하기가 미안했다.

가곡에는 별 관심이 없는 아들이지만 좋은 시간이였다고 만족해하였다.

 

한 직장에 40여년을 근무한다는 건 대단한 인내심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바쁜 시간 틈틈히 창작을 하고 음악회를 주관하시는 열정과 성실함은 그 자체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몸이 많이 여윈 것 같아 마음이 짠하였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로 작곡을 택하였다는 선생님은 철학박사이다. 모든 노래들이 내면적 성찰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밥벌이로 한 직업은 막을 내리고 많은 제자들도 키워냈으니 이제는 삶을 즐기시며 천천히 숨을 고르시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로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은 세대였지만 선생님의 부지런하고 창의적인 삶은 성공의 빛난 자취를 남기셨다. 우리 가곡반에서도 선생님의 노래들이 종종 불린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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