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와 함께 큰오빠가 살고 있는 캐나다 여행을 한달간 하였다.
큰오빠가 우리집에 오래 머물다 가셔서 작은 오빠는 가지 않겠다고 하여 나도 그만 둘까 하다가 토론토 사는 동생이 있는 친구를 함께 가자 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그동안 다닌 여행 중 가장 맘 편히 즐겁게 한 여행이었다.
네 달전에 에어캐나다 항공권을 구입해서 저렴한 가격에 다녀올 수 있었다. 코로나가 풀리자 여행객이 몰려들어 예상보다 훨씬 붐빈 여행이었다. 기온 역시 여느 때와 달리 높아져 겨울옷을 여러 벌 챙겨간 게 무색할 정도로 더웠다. 알래스카까지 기온이 높아 낮에는 반팔티를 입고 다녔다. 크루즈 선실 밖 베란다에서, 알래스카 빙하체험에서만 따스한 점퍼가 필요했다.
아들이 큰 여행가방을 들어다 주고 마중도 나와 주어서 지하철 엘레베이터를 이용하여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친구 아들 내외는 예쁜 장미꽃다발까지 가지고 나와 우리를 웃게 하였다. 몸이 편찮으신 가운데 길 떠난 어머니가 무사 귀환함을 축하하는 마음이었다. 어여쁜 자녀들이다.(나중에 들으니 큰 딸의 배려가 함께 했다고... 에구, 부러운 따님!)
대한 항공과 에어캐나다 항공이 30여만원 이상 차이가 나서 에어캐나다편으로 갔는데, 음식도 괜찮았고 비행기 소음도 대한항공보다 더하지 않았다. 간식까지 식사를 세번이나 하고 재미있는 영화 두 편을 보고 조금 자고 나니 (11시간) 벤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큰오빠께서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코퀵크람에 사는 집으로 가기 전 스탠리 공원과 엘리자벳 공원 두 군데를 잠간 들렸다. 피곤한 우리는 차속에서 끄덕끄덕 졸다 일어나 나가곤 했는데 시원하게 펼쳐진 드넓은 공원의 경치가 아주 좋았다.
인디언 원주민들의 흔적이 그들 문화인 화려한 장승으로 남아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하였다. 사진은 같이 간 친구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이곳이 항구도시인 것을 실감하게 했다. 가는 곳마다 울창한 거목들이 정말 보기 좋았다.
아! 심호흡 하자.
양이 많은 아이스크림이 우리 돈으로 만 원이나 했다. 조금 먹던 친구는 금방 기침을 했다. 감기가 다 낫지 않은 채로 떠나와 걱정이 좀 되었다. 평소 나보다 훨 건강한 친구인데, 친정 어머니와 삼남매 아이들 돌아가며 돌보아 주는 일이 좀 힘에 부쳤나보다.
큰오빠는 이층 단독주택을 아들에게 주고 작은 평수의 새로 지은 사층 아파트에 사셨다. 동네가 조용하고 길 건너에는 긴 숲과 넓은 개울이 있는 주택가였다. 늘 자신이 사용하는 것은 고급이어야 하는 올케 성격대로 신혼집처럼 깨끗하고 아담한 공간이었다. 얼갈이와 열무로 만든 맑은 물김치 국물로 냉면을 해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친구는 원래 냉면을 좋아했다.
조카 내외와 초등교 다니는 두 아이들이 와서 대화를 나누다 갔다. 아픈 친구는 잠이 들어 나와보지도 못했다. 서울 우리 집에 한달 간 있을 때 내가 안방을 내드렸더니, 이제 우리에게도 안방 침대를 내주셔서 고마웠다.
바로 다음날로 토론토 여행 스케쥴을 잡아 놓으셔서 새벽 5시에 조카까지 나와 벤쿠버 공항에서 짐을 부쳐주었다.
에어캐나다 항공은 23kg 이하 트렁크 하나는 무조건 무료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나 그런 모양이다. 영어 잘하는 조카가 한참을 이야기 하고 통과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말해도 소용없이 운임료를 30$씩 내야 했다. 헐! 들고 들어가도 되는 크기인데... 조카에게 전화하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커피와 케잌까지 사주고 돌아가는 사랑스런 조카, 트렁크에 넣지 않고 들고가는 백에 넣은, 뿌리는 세럼 화장품 선물을 큰오빠가 발견하여 택배로 부쳐주는 수고를 또 하였다. 아이구, 내 정신하고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올케가 샌드위치와 과일을 준비해주어 기다리는 동안 아침 식사를 하고 비행기를 탔다. 옆좌석에는 푸들강아지를 가방에 넣은 할머니와 나를 사이에 둔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자리를 바꾸어 드리고 싶었지만 가운데 자리가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오고 갈 때 모두 친구와 조금 떨어져 앉아야 했다. 지퍼 닫은 가방이 갑갑한 강아지는 좀 깨갱거리고 젊은 할머니는 연신 강아지를 달랬다. 작은 강아지는 데리고 타도 되는 나라인가 보다. 처음 본 광경이었다.
친구의 남동생은 20여년 동안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모님 일하신다고 근처에 사는 딸이 우리를 넓은 집에서 사흘간 머물게 하며 식사를 대접했다. 고학력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손님들을 아주 편안하게 정성껏 대접해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모와 조카사이가 허물없이 친해보였다. 하루는 동생 내외가 갈비를 재어와서 대접해주었다. 학창시절 보았던 친구의 핸섬한 막내동생은 건장한 장년의 모습이었다. 그의 아내는 단발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멋을 내어 젊고 활기차 보였다. 그들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감사하고 기뻤다.
다음 날 조카에게 온타리오 미술관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구경을 잘하고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타고 왔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영어를 제법 했다. 나는 신경 안쓰고 다닐 수 있어 편했다. 조카가 집근처 거리에 나와 기다렸다. 할머니들이 잘 오시나 걱정이 되었나보다.ㅎ
취향이 같은 친구와 많은 회화, 조각 작품들을 보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이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했지만 언제 또 보아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미술품들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연인 까미유를 조각한 듯 한 작품, 손 조각도 있았다.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올가닉 제품들을 파는 친절한 한인가게에서 지인들 줄 선물들을 사며 즐거웠다.
다음 날은 친구 조카와 아이 둘, 함께 바다처럼 넒은 온타리온 호수로 소풍 갔다. 토요일 휴일이라 사람들이 엄청 많이 나왔다. 드넓은 초원에 모여든 가족들, 온갖 수많은 인종을 구경하면서 새벽잠을 설친 피곤함이 몰려왔다. 날도 몹시 더웠다. 배를 타고 공원에 들어갔다 나왔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도 꾸벅꾸벅 졸았다.
세끼 식사가 제공되는 파란 여행사로 토론토 여행 3박4일 하였다. 만나는 장소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 친구 조카가 운전하고 여행사로 갔다가 사람들이 없어서 다시 토론토 구시청 앞으로 가야했다. 가이드가 사과하지 않아 조카가 불쾌해 하였다. 진작 확실하게 장소를 챙기지 못해 미안했다. 정성껏 사흘을 대접해준 고마운 조카였는데...
인원이 다 모이자 구시청과 신시청을 구경하였다. 원래는 벤쿠버보다 기온이 낮다더니 벌써 한낮이 무덥다.
캐나다 최대의 도시 토론토는 인디언 말로 '만남의 장소'를 뜻한다고. 1615년 유럽탐험가 에티엔 브레일이 최초로 발견한 대륙이다. 영국, 프랑스 등 서구인들이 인디언들과 모피, 생활용품을 교환하며 거래했던 장소이다. 결국은 그들의 영토를 모두 빼앗기고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터전에서 밀려났다. 오래전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쓴 책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를 읽고 서양인들의 잔인한 침략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인류의 약육강식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거대한 구시청의 원형 건물은 바람을 막고 보온효과를 내기 위한 건축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밤풍경 사진이 화려하다. 신시청 모습도 견고하고 멋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1973~1976년에 지어진 토론토 CN 타워는 국영철도인 CN이 자신들의 기술력과 혁신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34년간 세계 최고의 고층건물(533.33m)로 기록된 건축물이다. 꼭대기에는 전파송수신 장치가 있어 높은 건물 등에 전파를 방해받지 않고 원활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장치 덕분에 TV,라디오 방송이 세게에서 가장 명료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중간부분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룩아웃 레벌에는 유리바닥이 있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고 스카이포드는 100km 이상을 조망할 수 있다. 아래부분에는 레스토랑이 회전하며 캐나다 전통요리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밖에서 사진만 찍고 다시 버스 속에서 시내 구경을 하면서 다음 일정으로 떠났다.
디스틸러리 (히스토릭) 디스트릭트는 토론트가 지정한 역사적 거리이다. 영국 이민자들이 위스키 및 증류수를 생산, 유통시켰던 양조장 거리로 지금은 건물들을 개조하여 부티크 상점들과 갤러리들이 있어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보고 버스에 올랐다. 지나오면서 명사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토론토 대학도 보았다. 패키지 여행의 편안함 만큼 제한된 아쉬움이 크다.
패키지로 외국 여행 다니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먹게 되는, 한식집인데 가장 맛있는 집들 중 하나로 꼽을만 한 식당이다. 뼈감자탕과 밑반찬들이 정말 맛있었다. 쉐프의 정성이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벽에 걸린 쉐프의 사진과 우리가 타고 다니던 앞코가 뭉특한 버스이다.
오늘은 비가 내려 더위를 식혀주고 공기를 더 맑게 해주며 운치있었다. 킹스턴으로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바뀌었는데, 일명 제롬! 쉬지 않고 쏟아지는 입담이 장난 아니다. 사이사이 웃기는 솜씨는 코메디언 빰친다. 그는 천섬 구경 유람선을 타는 우리 일행을 아주 오래오래 배웅했다.ㅎ (일인당 40$인데 모두 합쳐 팁까지 두 가이드에게 일괄 지불하여 편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30에 출발했다. 성벽 도시 퀘백으로 달려가는 대형 버스(10억 정도)는 새로 뽑은, 우리가 첫 손님이란다. 운전기사는 또 어찌 공손하신지 황공할 정도이다. 휴계실에 들려 갈 때마다 매번 출입구에 서서 인사를 하시다니, 이런 분은 처음 보았다!
온타리오 호수에서 출발하는 세인트 로렌스 강에 있는 천섬으로 갔다. 1,865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캐나다 것이 900여개로 20개는 정부 소유이고 나머지는 개인소유라고 한다. 폭풍우 치는 날 곤란에 처한 노부부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준 인연으로 호텔업을 하게 된 조지 볼트는 큰 부자가 되었다. 병든 아내 루이스를 위해 천섬 중 한 섬에 성을 짓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죽자 공사를 중단시켰다. 그러자 뉴욕시에서 인수하여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또 조지 볼트의 아내 루이스를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우전드 드레싱이 유래된 곳이다. 볼트가 지은 볼트성이 특히 아름답다.
캐나다 연방 수도인 오타와는 원주민 여성이 총독이라고 한다. 540개의 창문이 있다는 구연방 의사당, 넓은 잔디밭 울창한 나무숲으로 들어가는 총독관저 '리도홀'을 구경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식수한 나무도 보았다. 그곳 땅에 맞는 나무만 잘 자랐다. 퀘벡주 문화와 역사의 도시 몬트리올로 이동하였다.
또 유명호텔 '사또 로리에'를 들어가 보고 202km에 달한다는 '리도' 운하도 구경했다. 강을 경계선으로 퀘백주로 나뉜단다. 가이드는 유창하게 1867년에 독립한 캐나다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미국을 막기위해 4개주가 병합하였단다. 아쉽게도 중간 중간 '컨티뉴'를 외치며 웃기던 가이드의 몸짓만 생각난다. ㅎ
캐나다 13개주 중 하나인 퀘벡주는 분리독립을 원했으나 투표결과 1%의 미달로 안 되었단다. 이해관계가 얽혀서...
영국령 시초의 주로 올드 퀘벡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가이드는 프랑스어를 많이 쓴다고 간단한 인사말 몇 마디를 학습시켰다. 아침에 '봉주르~', 저녁에는 '봉수와~', 감사해요 '메르씨' 등... 햇빛이 쏟아져 하얗게 찍힌 주의회 의사당, 유명 호텔 '사토 프롱트낙' 등을 구경했다.
다음 날은 비가 왔다. '몽레알'(몬트리오)은 '위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성요셉 성당을 방문했다. 성요셉은 치유의 기적을 보여준 수사였다. 성당에 들어가 초를 켜고 기도했다. 장식장에 있는 성물들과 그의 모형 등을 사진찍으며 넓고 큰 성당을 둘러보았다. 빗방울이 렌즈에...
퀘벡시티 어퍼 타운의 중심지 다름광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빛 장식으로 유명한 북미 최초의 성당인 노틀담 성당과 무명화가의 벽화 등에서 사진 찍었다. 도시는 프랑스 어느 지역처럼 아름답고 구경거리도 많았다.
옛 인디언들의 물물 교역 장소이며 퀘벡의 발상지인 로얄광장에서 석조교회인 승리의 교회를 보았다. 또한 예쁜 상가 거리 쁘띠 상플랑 거리를 구경했다. 눈에 이어 마음이 호강한다.ㅎ
저녁식사때까지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거리를 구경하다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피자와 와인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이 동물을 사랑하는 지 전부 동물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보기좋았다. 몇십년 만난 친구이지만 늘 적당한 거리가 있어 갈등이라고는 없었던 친구였다. 이번 여행으로 더 많이 친밀해졌다.
옛날 부두 노동자들이 술을 먹고 잘못하다가는 목이 부러진다는 경사진 계단, 지금도 교통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오래된 케이불 카도 보았다.
유명인사들이 묵었던 최고급 호텔 '샤토 프롱드 나크'도 들어가 보았다. 거리에서 멋진 청년이 첼로를 연주하여 잠시 발을 멈추고 아름다운 선률을 감상했다. 거리마다 멋진 장면들을 사진 찍으며 꿈 같은 시간들을 보내었다.
정말 조그만,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 앞에서 친구를 찰칵!
외곽으로 나가 몽모랑시 폭포를 구경했다. 철광석 자원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유명하다는 에플 와인 공장에 가서 내 오빠와 조카, 친구 동생 줄 아이스와인도 샀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들은 모두 넓고 쾌적하여 최고였다. 땅덩이 큰 나라에서 맛보는 쾌적함이었다. 퀸 사이즈 침대 두 개와 안락의자, 커피머신 등 두 사람이 묵기엔 과분할 만큼 큰 방이었다.
어린시절, 카츄샤 군복무하던 오빠가 가져온 미국 잡지에서 본 나이아가라 폭포는 굉장했다. 이런 데를 구경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미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 중남미의 이과수 폭포를 보아 이 곳 폭포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멋지고 좋았다. 가이드에게 팁까지 주며 단체 유람선 대신 집 라인을 타겠다고 우리 둘만 일행과 떨어졌다. 친구와 줄을 서서 표를 사는 과정에서부터 버버거리며 컴퓨터에다 번잡한 개인 기록(자기 집 우편번호까지) 기재를 다 마치고 집 라인 밴드를 묶기까지 30분 이상이 걸렸다. 여행사에서 단체옵션에서 빼는 이유를 알겠다. 아무튼 맘 먹었던 집라인을 탔다. 준비과정에 비해 그 짜릿한 상쾌함이 넘 짧아 아쉽기만 했다. 친구는 무섭다고 마다했지만 나의 설득으로 용기를 냈는데, 기다리는 데서 보니 7살 꼬마부터 노인들도 많았다. 친구는 타고 나서 소감 왈, '넘 재미있어!' ㅎㅎ
우리나라에도 훨씬 더 긴 집 라인이 있다던데 가을에는 그 곳에 가보자 생각하며 시간이 좀 늦어 헐레벌떡 전망대로 달려갔다. 비싼 100불짜리 스테이크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도 못 먹고 생각하길 '괜히 했다.' 였다. 맛도 없고 성의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레스토랑이 천천히 돌아가며 밖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케나다에서 본 폭포와 미국쪽에서 본 폭포의 경치를 한 곳에 앉아서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맛없을 줄 알았으면 차라리 폭포 주위를 산책하는 편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곳에서 더 머물지 못하고 바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토론토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은 친구의 동생집에서 묵었다. 아들은 출장 가고 며느리만 있었는데 심성 고운 그녀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뒤 베란다에 예쁜 텃밭을 만들어 가꾸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녀가 얼마나 순수하고 바지런한지 알 수 있었다. 텃밭처럼 사랑스러운 그녀를 보면서 좋은 며느리를 얻었구나 생각했다. 친구 동생이 일하는 세탁소는 공장처럼 넓어 자동화 기계로 많은 세탁물을 처리하는 전문 기술이 필요한 작업장이었다. 20여년 성실하게 일한 가장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는 집은 복층 구조로 연결되어 있어 계단을 수시로 오르내려야해서 주부에게는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잖아도 가을에는 아들 내외가 제 집으로 나가면 이사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강아지 두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낯 가리지 않고 반가워해서 귀여웠다. 캐나다는 캉아지 키우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까다롭다고 하던데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대접을 잘 받고 다시 벤쿠버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친구의 착한 동생이 여러 가지 신경을 쓴 것이 느껴졌다. 감사했다. 그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본 하늘의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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