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문학, 종교, 철학, 심리학

아직도 가야 할 길

나무^^ 2024. 8. 18. 14:12

 

지은이  M. Scott Peck

옮긴이  최미향 

펴낸곳  유리시즈

 

* 한 지인이 감명깊게 읽았다고 해서 사보게 된 책이다. 

초판이 2011년, 38쇄 출판이 2023년인 책으로 지은이가 환자들 심리 치료하면서 관찰한 일들을 쓴 내용이 대부분이다. 심리학 공부를 한 적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4부 '은총' 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생각을 피력하여 내 생각과 차이가 있었으나 영적 성장에 관한 주장은 일맥상통하였다.

 

1부 훈육에서 저자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는 훈육이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삶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 이 문제들이다.'라고 말한다. 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경 병리학적 문제를 일으키고 고통스러워하며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심리학자 칼 융은 신경증(노이로제)이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라고 정의한다. 결국은 피하고 미루던 마음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만성적 정신병 상태에 놓이면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영혼이 시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나 자녀들에게 정신적·영적으로 건강해지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는 괴로움을 감당하게 하며 문제로 인한 고통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균형잡기의 4가지 훈육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먼저 인내하는 고통을 겪고 극복함으로서 즐거움은 배가 되고 품위있게 살아가는 법을 어린 나이부터 훈련해야 한다. 가정에서 그 교육을 하지 않음으로 비롯되는 수많은 청소년 비행과 함께 뒤늦은 상담 치료의 무력함을 겪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말은 모든 부모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니고 이는 자기 절제의 초석이 된다... 자기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은 기억은 안정감을 이루며 성장하고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즉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하는데 이는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인 사랑이다. 내 경우 아들을 사랑했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불찰로 그 대가를 고통스럽게 치루면서 깨달아야 했다. 

우리는 모두 감기나 기타 질환에 걸릴 수 있듯이 신경증이나 성격 장애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경미한 경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나을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할 때는 주저하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책임 회피의 정도가 심한 사람을 성격장애라고 진단한다. 책임에 따르는 결과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것에 떠넘기는 어리석음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한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책임질 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리에 헌신하는 삶이란 지속적으로 철저히 자신을 성찰하는 삶이다. 그리하여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말한다. 성찰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인간답게 사는 능력 또한 향상한다.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나아가 도전하며 본능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고통이 수반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이 학습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거짓말에 대한 성찰에서 '정직하려는 자기훈육에 필요한 에너지가 비밀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신 적게 든다.' 이는 거짓말은 계속되는 거짓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진실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개방성 덕에 개방된 삶을 살고, 개방적으로 사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다.' 개방적인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매력적인 이유이다.

균형잡기란 융통성을 주는 훈육으로서 모든 활동분야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노 표출의 적정성을 위한 여러 가지 이성적 능력, 욕망의 포기 및 조절 능력 등을 치료의 예로 보여준다. 이에 따른 우울한 감정은 정상이며 치료되는 과정에서 영적 성장을 겪게 된다. 나 역시 실패나 포기를 해야했을 때 큰 슬픔과 우울을 경험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치유하는 과정속에서 성숙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2부 사랑에서 저자는 신비로운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나가려는 의지' 라고 정의한다. 그 말의 목적론적 의미와 순환적 진화 과정, 인류애의 헌신, 의지적 노력에 대해서 설명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자아경계에 부딪혀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과 자신을 확대하는 경험의 참사랑이 다름을 또한 신화와 정신치료의 예로써 보여준다. 사랑을 통해 한계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돕기를 소망하므로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자아 경게를 넘어서서 우리 밖에 있는 대상에 끌려야 하고 자신을 투자하며 완전히 헌신해야만 가능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참사랑을 위한 동기가 될 수는 있으나 애착이나 성적 오르가슴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의존성에 의한 사랑 역시 상대를 성장시키기보다는 파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사랑은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자기 희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이다. 순수한 사랑은 자신을 채워나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서도 저자의 설명이 설득력 있다. 

의존적 사랑을 했던 남편이 아니라 자식을 통해서 참사랑의 의미와 나 자신의 정신적 성숙과 확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존중이 존중을 창조하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하강하는 악순환 대신 발달과 성장의 창조적 상승 순환을 위해서는 사랑하는 노력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것을 치료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고통을 감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많은 것을 부족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 결혼, 섹스의 황홀경, 출산, 야망, 우정 등등 충만한 삶은 고통으로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삶을 충만하게 살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인생의 본질은 변화, 즉 성장과 쇠퇴의 모음이다. 삶과 성장을 선택하라. 그것은 변화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을 함께 선택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 변화와 성장을 포기하는 손쉬운 삶을 선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삶을 사랑할수록 모험은 더 많아지고 이는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청년시절 안전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며 고통스럽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심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경험을 들려준다.  또한 사랑에의 헌신, 충고, 자기 훈육의 방식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일려준다.

젊은 시절 나도 좋아해서  적어보았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바람이 춤출 수 있는 사랑의 거리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정신 치료면에서의 사랑의 '전이'와 '역전', 이것이 지니는 효용성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사랑하기 위해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영혼을 지닌 사람에 국한하여 신의 은총으로서 신비함을 피력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상대를 통해서도 사랑의 감정은 일어날 수 있으며 적어도 자기 자신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부 성장과 종교

대부분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서 종교관이나 세계관이 결정되는데 더 넓은 세계관을 발전시키려면 새로운 지식의 이해와 범위를 확장시켜가야 한다. 따라서 종교관이나 세계관은 변할 수 있고 확장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넓은 시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오래 전에 형성된 좁은 시야를 버리고 과학의 범주를 받아들여 회의해야만 한다. 정신 건강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의 종교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종교적 가정에서의 양육이 정신병리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그 치료 사례들을 소개한다. 나역시 신앙심이 돈독한 어머니에 의해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했지만 절대선을 행하지 못하는 죄책감과 부자유스러움으로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지금은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종교의 본질과 필요성에 대해서 깨달음으로 자유로워졌다.

 

저자는 종교와 과학의 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주의깊게 보는 것', '기적'으로서 대하는 것, '자아실현의 정수' 등은 인간의 한계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신앙은 개인적인 믿음의 영역으로서 보편화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방범에 있어 선택할 수 있는 한 영역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를 지니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양날의 칼을 품고 살아간다고 생각된다. 삶의 모든 면이 그렇듯이...

인간이 연약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며 신이라는 전지 전능한 존재에 의존하는 겸손함으로 삶을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4부 은총에서는 여러 가지 질환과 사고에 대해서 말하면서 무의식의 기적을 열거한다. 또한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 이론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지혜가 유전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된 심령 현상에 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우연한 깨달음' 현상이라고 말하며, 이 은총을 활용하는 사람들과 은총에 저항하는 사람들로 나누어 설명한다. 

'정신적 성장은 곧 개인의 진화다... 영적인 능력은 (비록 대부분 그렇지 못하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라도 성장할 수 있다.' 는 말에 공감한다. 육체는 노쇠해 갈지라도 노력만 하면 정신적으로는 더욱 발전해갈 수 있다. 또한 성숙한 사람들은 그 성숙의 열매를 나눔으로 인류는 진화해 간다. 저자는  '자아의 확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랑은 바로 진화의 행위다. 그것도 진행중인 진화다.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진화의 힘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인류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애 중에서 사랑은 엔트로피의 자연법칙을 무산시키는 기적적인 힘이다' 라고 말한다.

 

인간이 신처럼 되기를 바라는 의식적 노력, 삶에서 직면하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게으름, 이를 성찰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설명하면서 악의 존재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열거한다. 악에 대한 자각이 자신을 정화시키고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의식(conscious)이라는 말은 '함께' 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접두사 con과 '안다'라는 뜻을 지닌 scire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의식한다는 것은 '함께 안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무의식 속에 줄곧 알아온 것을 다시 아는 것이다. 저자는 은총을 우리의 내부에서 찾아야 하며 바로 이 무의식이 하느님이므로 우리 안에 내재한 성령 또는 성신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영적 성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이 신과 같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으나 종교적인 편파성의 한계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적의 힘을 경험하는 기쁨을 하느님과 교감하는 즐거움이며 성숙한 자아는 하느님의 정신과 결합하는데 성공하여 하느님처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단계의 영적 성장과 위대한 인식 상태에 도달한 사람들은 언제나 즐겁고 겸손하다... 하느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교감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전지전능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분의 고뇌를 함께 나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무한한 사랑은 순전히 혼자 앞서 걸으며 그들을 인도해야하는 책임감을 덜어주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고독은 영적 성장을 향한 여정에서 가장 앞서간 자라면 모두가 겪는 것이다. 이웃에서 점점 멀어짐에 따라 하느님과의 관계는 점점 밀접해진다는 즐거움이 없다면 감당해내기 힘든 짐이다.'  이는 종교인의 본질과 무한한 책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대개의 종교인들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집단 이기주의로 뭉쳐 타종교인들을 배척하는 나머지 전쟁을 치루는 일도 허다하다.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물론 종교를 이용한 소수의 권력자들과 그에 호응하는 어리석은 무리들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의 증상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무의식이 전하는 메세지로 원하기만 하면 자신을 점검하고 재정비할 수 있다고 정신과 의사다운 설명을 한다. 그리하여 오레스테스 신화와 심리치료 사례 속에서 치유의 은총을 열거한다. 또한 은총을 선택하는 자와 저항하는 자에 관해서도 설명하며 하느님의 의지가 개개인의 영혼이 성장하는 데 있음을 피력한다. 즉 그의 범신앙적 의지로서의 은총을 전파하며 글을 맺는다.

후기에서 저자는 심리 치료사를 신중히 선택하기 위해서는 자기와 맞는 의사를 고를 필요가 있으며 이는 자신의 직관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나역시 삶에 있어 좌절하고 힘들었을 때 3년간 심리학 공부를 하며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겪었다. 직업상 필요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이 한 단계 성숙한 경우이다. 또한 마음 공부를 위한 경전들을 접하며 다시 한 번 내 의식의 성장을 경험하였다. 정신적 성장을 위한 배움에는 끝이 없고 삶의 지향점은 바로 자신의 의식을 향상시켜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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