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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

나무^^ 2024. 9. 12. 13:48

 

지은이  김기현

출판사  21세기 북스

 

유명인이 추천한 책이라 사서 읽어보았다.

우리는 흔히 '인간다움'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에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틀은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 타산 관계에 놓였을 때 인간답게 사는 일이 그리 쉽지 않으므로 많은 비리와 위선이 세계 곳곳에서, 또 우리 주위에서, 심지어 나 개인에게서도 일어나곤 한다.

이 책에서는 6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인간다움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첫째 장, 들어가는 글에서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조건에 대해서 살펴본다.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물으며 삶의 질은 고통과 쾌락의 덧뺄셈만으로 평가할 수 없고,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다움, 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재능이나 지식이 아니며 최소한의 도덕성과 타인에 대한 존중임을 설명한다.

인간다운 삶의 문을 여는 첫번째는 '공감'이다.

타인의 마음 상태를 나의 마음 상태로 느끼게 하는 뇌세포에 대한 연구는 역지사지의 능력을 말해주며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이입, 연민, 공감의 차이점도 설명한다. '공감 능력은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 사이의 거리를 좁혀 상호 존중과 공존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데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공감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구원투수로서의 '이성'은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하여 합리성을 유도하는 능력이다. 또한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할 때 경고음을 울린다. 예를 들어 가깝지 않은 이가 한 무례한 행동이 가까운 이에게는 허용되는 경우에 이성은 비합리적이라고 알려준다.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또 하나는 '자유'이다. 통제와 억압에 길들여질 때 소실되는 인간다움, 예를 들어 조지 오웰이 묘사한 <1984년>에 나오는 사회, 북한의 폐쇄되고 세뇌당하는 사회 등이다. 인간다움은 적극적 의미의 자유, 즉 자율을 포함한다. 타인을 내 이익의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둘째 장, 고대 · 이끌리는 삶이냐, 개척하는 삶이냐에서는, 인간을 만물의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게 한 협동 능력은 군집을 이루며 정착하게 함으로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신화의 세계관에 완전한 개인은 있을 수 없었다. 고대 도시 국가란 확대된 가족으로 애국심이 우선되었다. 7~8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이성적 판단에 의한 합리성 추구는 운명론적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지휘 아래 욕망과 기개를 절제하는 삶을 탁월한 이성의 소유자인 지도자를 통해 이끌어갔다. 공동체 내에서의 신분이 개인의 삶과 도리를 결정한다는 유기체론적인 세계관이다. 즉 도시국가를 구성하는 애국심, 정직, 용맹, 우정, 공감 등의 덕목이 인간다움이었다.

 

세째 장, 중세 · 내면세계라는 집을 짓는 긴 여정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의 문명이 만나는 그리스 반도에서 다양한 사상과 철학을 중심으로 정신적 풍요를 누렸지만 그 댓가로 온 유럽에 전쟁이 일어나고 알렉산더 대왕의 글로벌 문명이 도래하게 된다. 즉 헬레니즘 문명이다. 이후 유럽대륙을 장기간 지배했던 로마의 그레코-로만 문명은 그 영향하에 있었다.

빈번하게 계속되는 전쟁으로 피페해지는 정신에 초월을 향한 동경을 바라게 하고 이성의 역할을 위축시켰다. 헬레니즘 시대를 이끈 철학적 조류인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 시대적 상황에 스며든 유대교가 기독교로 발전하였고 민족종교에서 보편종교화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가 제시한 존엄과 평등의 씨앗이 싹을 튀웠다.

중세를 거치며 평등의 정신은 확장되고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혼란을 잠재운 교회법으로 교황권이 강화되어 통일된 규범을 제공하고 기독교적 평등사상이 자리를 잡는다. 프랑스에서는 기사도에 의해 문학의 조류가 바뀌며 서사에서 로망스로 변화하고 수도원 정화운동도 진행된다. 그 예로 왕관을 쓴 투사적 예수상이 십자가에 매달린 고행의 예수상으로 바뀌며 성찰의 과정을 대중화시킨다.

 

네째 장, 근대 · 개인의 탄생, 온전하고 자유로운 삶의 발견에서는, 자기다운 삶을 향한 르네상스인의 도전으로 변화된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다룬다. 이는 물질적 풍요가 가져온 분방함으로 '문예부흥' 시대를 맞게 된다. 예를 들면 성화에서 보여주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에 눈을 돌리며 내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원하는 삶을 스스로 이끌어갈 때 느끼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에 대한 생각을 확산시켰다.  개인에 대한 깨달음이 내면 세계에 대한 성찰과 평등의식을 꽃피우며 마침내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제도권의 약화는 성직자와 종교적 계급주의 전통을 무너뜨리며 신앙의 개인주의를 도래시킨다. 헤겔의 상징적인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석양에 날기 시작한다.'는 말로 함축된다.

경험을 강조한 베이컨, 합리적 이성을 중시한 데카르트 등의 철학자들이 개인을 지식과 진리에 중심에 놓고, 홉스, 로크 등은 개인을 권력의 중심에 놓고 사상을 펼친다. 로크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 사상에 초석이 되고 혁명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즉 자유로운 개인의 보편적 권리를 존중하고 정부는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잡는다. 저자는 <모나리자>를 통해 그 사상을 검증한다. 또한 과학의 발전은 공리주의와 함께 욕망과 쾌락이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이성과 신앙으로 조율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쾌락이 해방되는 근대에 이르러 계몽을 주도한 것은 이성이었다.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야기하고, 성행하던 이기주의적 쾌락은 지탄받았다.

 

다섯째 장, 현대 · 포화 속에 흔들리는 위기의 인간에서는 진화론의 출현과 함께 인간다움의 상징이었던 이성이 비판받는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공감, 연민, 이타심마저 평가절하되기에 이른다. 철학자 니체는 기존의 도덕을 부정하며 고통을 수용하고 초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엥겔스는 개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소극적 자유를 강조한 결과 형성된 자본주의의 폐단을 말하고,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생산자들에 의해 노예화된 사회현상을 지적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통제권, 즉 적극적 자유가 보장되는 환경을 주장하며 사회주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진화론은 인간다움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서 진화론의 영역을 확대한 윌슨이 말한 인간은 다른 동물과 진화의 정도만 다를 뿐이며, 죄와 덕목은 집단의 생존에서 비롯된 개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도킨스는 '유전자는 자신을 복제하기 위한 최선을 택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생존 기계, 즉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장치이다. 이 진리가 항상 나를 경외감으로 감싼다.' 이 말은 인간종 중심의 편협한 사고에 경종을 울린다. 그러나 인간다움은 생물학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는 그 사상적 흐름을 철학자와 독재적 지배자들을 통해 보여준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자유주의적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시민들은 저항하며 개혁을 꿈꾸게 된다.

 

여섯째 장, 미래 ·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격변기마다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산업은 최첨단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인간다움에의 도전도 계속된다. 컴퓨터과학이 발달하면서 각종 로보트와 AI, 인공지능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며 엄청난 노동력을 대신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의 마음이 프로그램의 복합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확산되며 대부분의 인간은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또한 컴퓨터가 인간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모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생명과학의 발달로 완성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건강과 수명, 식량과 환경문제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는 도구로서의 이성은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해갈 것이며 질병과 노화를 마침내 극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론적 이성과 도구적 이성의 비약적 발전은 인류의 삶의 질을 증진시켜주었다. 그러나 풍요 속에 고독처럼 다 해결된 것이 아니다. 또한 노화와 죽음이 운명이 아닌 넘어설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 앞에서 공평했던 한계가 무너지며 재산에의 집착과 경쟁은 더욱 첨예해 질 것이다. 과연 그런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 구성원들이 가치 이성의 기본 체력을 지녀야만 긍정적 연대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공감에서 출발해 자율을 통해 타인도 나와 같은 희노애락의 정서를 갖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공존의 사회를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인간다움이 갖춰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노력할 때 가능한,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참여, 대면 소통의 부족 등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감정이입의 능력을 저하시키고 공감의 능력 또한 저하시킨다. 이는 사이버불링 현상을 증가시키고 폭력성을 확산시킨다. 외부 시스템에 의존하는 추론과 외주화는 인간의 인지적 판단을 약화시키고 기계에 의존하게 만들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인류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의 선택들이 모여 내가 누구인지 결정되고, 인간다움의 핵심 가치인 자율성이 인공지능에 의존함으로 조작될 수 있는 점을 우려했다. 예를 들어 '하이퍼-넛지'에 의한 영향이다. 쉽게 말하면 수없이 쏟아지는 광고와 안내 메세지 등에 의해 합리적 이성이 흐려져 자율성을 잃고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는 경험 따위이다.

저자는 인간다움에 대한 개념과 행복한 삶으로 가기 위한 관문으로서의 인간다움, 인간의 행동 양식의 변화에 따른 미래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어렵지 않게 쓴 글이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은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으로서만이 얻을 수 있는 가치의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