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가을로 가는 산책로)
* 어떤 때는 사는 일이 참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끊임없이 사는 일에 흔적을 치워야 할 때 문득 회의가 들기도 한다.
허나 내가 사는 이 하루는 죽어가는 어떤 이의 간절한 하루일 수 있고,
내가 보는 이 세상은 앞 못 보는 이의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간절히 보고 싶은 세상이며,
내가 듣는 광고로 가득한 이 세상은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지저귀는 새소리를,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이가 있는 간절한 세상이다.
베란다 창 밖으로 가득 들어오는 녹음을 보면서
나는 때론 진부한 일상에 싱그러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산에 가자. 풀벌레 가득한 그곳에 내 발로 걸어가서
새소리 함께 산소를 마시며 나무들과 대화하자.
다행히 나는 부자가 아니라 집값 싼 동네로 온 덕에 바로 앞에 산이 있고
언제든지 누구에게도 허락 받지 않고 숲 속 둘레길을 거닐 수 있다.
그 산은 숨통을 열어주는 내 마음의 정원이다.
꼭 서류에 내 이름 석자 남겨야만 내 것인가?
이렇게 매일 갈 수 있으면 내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부자도 이렇게 큰 정원을 지니고 살지는 못하리라.
철철이 꽃피고 곳곳에 샘물이 흘러 목을 축일 수 있는
그 산에 함께 가자며 어린 친구가 전화를 해오면
나는 언제든지 만사를 제치고 달려나간다.
때론 우린 산 정상에 올라 일몰을 보기 위해 기다린다.
형형색색의 구름이 만드는 찬란한 노을에 취해
우리는 세상만사 모두 잊고 행복감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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