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을 뿐
오쇼 라즈니쉬 조주어록 강의
옮긴이 손민규 태일 출판사
선문답은 누가 해석을 할 수 없는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모두 다른 것이라고 한다.
나같이 우둔한 이는 누군가의 해설이라도 읽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선사 조주의 선문답을 강의한 이 책은 내면을 일깨우는 의식과 함께 퍽 재미있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라는 현자들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면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을 것이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잊은 채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내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어쩌면 현대사회란 점점 그러한 사실을 가속화시키는 용광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라. 그 지점이 곧 그대가 온 곳이며, 그대가 돌아갈 지점이다.
그대 본래의 근원은 또한 궁극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그 시계바늘을 딱 멈추거나, 혹은 아주 천천히 돌리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 시계바늘은 바로 자신이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조주는 남전 선원에 처음 들어간 후, 승당에서 노두(爐頭)를 맡았다.
어느 날 그는 승당 문을 잠구고 불을 피워 연기가 가득차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불이야, 불이야! 살려 줘!' 하고 소리쳤다. 대중이 문 앞으로 달려가자 조주가 말했다. '옳은 말을 내놓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겠다.' 대중에게서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런데 남전이 창문으로 열쇠를 던져 넣으니 조주는 즉시 문을 열고 나왔다.>
무엇이 옳은 말일까? 스승들이 요구하는 것은 즉흥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직접 경험한 것만이 유일한 실체라고 할 때 선은 경험이며 아주 간단하고 분명한 현상이라고 라즈니쉬는 말한다. 선이란 안(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삶과 의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존재계는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선물을 준다. 그대는 최소한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한다. 이 감사하는 마음이 진정한 기도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함보다는 더 많은 불만족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운 삶을 욕심에 가려서 살지 못하는 꼴이다.
그는 종교인들에게도 말한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더 각성하면 그뿐이다. 그 각성 안에서 인간은 의식의 최고 경지를 접하게 된다. 그 밖의 모든 이론은 유치할 뿐만 아니라 터무니 없는 가설이다>
참으로 위협적이고 어려운 말이지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든 칡덩쿨처럼 휘감고 늘어지길 좋아한다. 자식은 부모를, 연인은 상대방을, 종교인들은 신을, 상인은 소비자를 등등.
그리고 위안하길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므로 서로 서로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 배려하며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의식에까지 기생하여 편안히 안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칫 함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선의 제일 가는 본질은 자유다.... 내가 아는 유일한 자유는 깨어나는 자유뿐이다.
그대 자신과 그대의 뿌리를 아는 것이 유일한 자유이다.....
무엇인가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순간 , 그대는 쓸데없이 화를 자초하는 격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자연은 유동적인 흐름이다. 끊임없는 움직임이 자연의 본성이다.
단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대의 중심이다.
그러니 먼저 그대의 중심에 깊이 뿌리를 내려라.
그러면 그대의 삶에 수천 송이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
자연에 어긋나는 요구만 하지 않는다면 삶은 엄청난 기쁨이 될 수 있다.
방임(let-go)의 상태에 존재하라. 모든 것이 변한다.그들이 변하게 놔두라.
다만 한 가지, 그대의 근원적인 실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어리석은 내가 미약하게나마 지금도 이것저것 공부를 하는 이유이다.
갈등하는 한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책을 한 권 더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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