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종교, 철학, 심리학

월든 (데이빗 소로우)

나무^^ 2005. 8. 12. 21:12

        

( 2005. 강원도 인제 곰배령)

 

WALODEN                                                                              

Henry  David  Tboreau 지음  장승영 옮김  

 

이 책은 '93년 EBS방송에 소개되어 사서 읽었다.           

지은이 소루우는 1817-1862년 (45세)까지 살았으며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출생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1년 했으며, 형과 진보적인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했으나  형의 건강악화로 4년 후에 그만두고 저택관리인으로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1845년 그가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짓고 살면서 쓴 자전적 이야기이다. 나는 소로우라는 한 인간에게 깊은 존경심과 함께 애정을 지니면서 이 책을 읽었다.

 

 제1 장 숲생활의 경제학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指標)가 되는 것이다. 월버포스는 서인도제도의 노예들을 해방시켰지만 정신의 세계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해방시킨 그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대부분 평범하고 고지식하게 단순노동으로 일생을 보내는 이들을 체념이 확인된 절망적 인생이라 평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으로 인해 거듭되는 윤회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나이 들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삶을 돌아보며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한다.

 

나의 이웃들이 선(善)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실은 악(惡)이라고 믿는 그의 생각에 상당히 동감한다. 진정한 선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의 대부분이 신체적 냉기 이상으로 사회적 냉기에 기인한다는 것,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농(農),상(商),문학, 예술을 막론하고 호화로운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자발적인 빈곤'은 정신없이 치닫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병폐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또한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나마 이론적으로만이 아니고 실제적으로도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후,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느니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먹고 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라고 말했듯이 그는 숲 속 월든 호숫가로 모험을 떠났다. 제손으로 통나무 집을 짓고 극히 소량의 식사를 자급자족하며 과연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의 양이 얼만큼인지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육체노동을 평생 계획적으로 기피해가며 여가를 얻고 말년에 은퇴생활로 접어든다면, 그가 얻은 여가는 불명예스럽고 가치없는 것이며 이 여가를 유익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을  스스로로부터 박탈한 것이 될 것이다....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시절을 돈 버는 일로만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인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으로 올라가 시작(詩作)을 시작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사리분별과 판단력은 실로 명쾌하다.

우리는 진실로 존경하고 추구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보다는, 흔히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  어떤 경지에 달했다는 이상(理想)이나, 모든 유행이 그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그것을 얻기 위해 보낸 성실한 열정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좀 더 가치있는 일에 내 삶의 시간을 할애해야한다는 것을 일깨우며, 삶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깨어있는 의식, 즉 사고력의 중요함을 새삼 확인 시켜주는 글들이다. 그는 극빈한 하루하루의 생활에 만족했고 그것은 곧 정신의 맑음을 유지하는 길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유인이길 원했으며,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한 인간의 아름답고 순결한 정신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한, 그에게 있어 삶이란 그처럼 소중하고 진실한 것이었다. 타성적 삶에 젖어 진정한 자아를 찾기 어려운 생활 속에서 스스로 통제해왔던 '진실의 계기(械器)'가 과연 얼마나 정확하고 현명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제 5 장 "고독' 편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 자신을 인간적 실재로서만, 다시 말하면 여러가지 사고와 감정의 장소로서만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으로부터는 물론 나 자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어떤 이중성을 느끼고 있다..... 나의 일부분이 아닌 것처럼 내 경험에 참여하지 않고 단지 방관자로서 메모를 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부분은 '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제삼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인생의 연극이 끝나면 그 관객은 제 갈길을 가버린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위빠싸나 수행과 통한다고 생각된다.         

그는 서양인이지만 동양의 철학관에 인접해 있으며 무엇보다 그의 사상이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삶을 산 적극적인 자연주의자였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또한 그의 글은 유명한 <시민의 저항>을 비롯하여 '야생사과', '리버'가 번역돼 있다.              

이 책은 내가 품었던 삶의 본질과 가치를 확실하게 증언해 주며, 읽는 내내 정신적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생각하는 주위의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