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다른나라)

2.팍딩에서 남체, 탱보체, 로부체, 고락셉,팡보체까지 (에베레스트 트레킹)

나무^^ 2009. 11. 25. 19:07

 

 

 

               ▼ 루클라에서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타는 시간은 30분이 안 되었던 우리가 타고 온 경비행기.

                  창문이 맑지 않아 내려다 보이는 좋은 풍경들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 비행기에서 내려 팍딩(2652m)까지 서너시간 트레킹을 하는데, 앞선 세 사람에 비해 영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평소 배냥을 메고 다니지 않아서였는지 왜 그리 배냥이 짐스럽고 힘든지... 어휴!

 

 

 

 

 

 

              ▼ 산 속의 맑은 공기와 드러나는 새하얀 산봉우리들을 보면서 드디어 로찌에 도착하여 밀크티를 한 잔 마시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많이 힘들었지만... 이 청년은 우리가 도움을 빌린 포터 5명중 대장이다. 

                 대부분 산악지대에 사는 가난한 집안을 도우기 위해 나선 착한 청년들에서 소년들까지 다양했다.

  

 

 

              ▼ 식사를 주문하는 일행 중 나보다 나이 드신 어른들. 근데 참 어른 노릇 제대로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였다. 

 

 

              ▼ 식사를 하고 숙소에 짐을 푼 후 잠시 나와 본 풍경들. 나는 우리 쌀과는 다른, 흩어지는 쌀밥이 싫어 거의 빵이나

                 국수를 주식으로 하였다. 꿀을 찍어 먹을 수 있는 네팔브레드(튀김빵), 야채누들(국수), 피자 등 맛있었다. 

 

 

 

 

              ▼ 마을 사람들이 무슨 놀이인지 하고 있는 것을 잠시 쉬는 포터와 여행객들이 들여다본다.  

 

 

              ▼ 포터 한 사람이 지는 짐의 무게는 보통 20~30kg이였다. 얼마나 힘들까 염려가 될 만큼 큰 짐들을 메고 오르막을

                 오르고 내려간다. 때론 말을 타고 오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경비가 대단히 비싸다. 500$이상이었다.

 

 

 

                이 마을 한 어른이 산을 배경으로 앉아계신 것을 찰칵!  '나마스체' 인사하며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보여드리면

                  대부분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신다.  

 

 

 

  

 

               ▼ 참 많은 길을 묵묵히 걸으며 잠깐 잠깐 쉬는 사이 평화롭고 한적한 광경들을 사진에 담았다.

                  나이든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이 고산증 때문에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속도 때문인 것 같았다.

                 '천천히!' 포터애들이 주의주곤 하던 말처럼, 마치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야 했다.

 

 

 

 

 

              ▼ 집이란 초라하든 호화롭든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안식처이다. 떠돎을 멈추고 돌아갈 수있는,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곳이기에 그곳은 평화 그 자체이고 다정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이렇게 꽃을 많이 심어 자신의 집을 치장하고 오가는 여행객들의 지친 마음을 밝게 위안하는 로찌들이 많았다.

 

 

 

 

              ▼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몸에 좋고 밟는 느낌도 좋지만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므로 먼지가 많이 났다.

 

 

 

 

 

              ▼ 이때까지는 그래도 일행들과 쳐지지 않고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엄지 손가락 쳐든 이 분은 은행 지점장 퇴임후

                 여행을 다니시는 일명 '부시맨'이다. 생김새도 약간 닮았지만 핸드폰, 컴퓨터 등의 현대문명을 단절하고 산단다.

                 근데 역시 직업은 못 속인다더니 어디서나 계산 척척하셔서 여행에 도움을 많이 주셨다.

 

 

              ▼ 야크보다 털이 짧은, 검은 소 같아 보이는 좁삐. 주로 짐을 실어나르는데 힘든 언덕을 잘도 오른다.

 

 

 

             ▼ 예전 우리네 산골마을 어린이들과 똑같이 생긴 아이가 여행객들을 호기심 어린 편안한 눈빛으로 내다보고 있다.

 

 

               ▼ 아마도 종교적 문구인 것 같은데, 뜻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성껏 드로잉한 문자예술의 바위가 많았다.

 

 

                                ▼ 이런 길고 긴 쇠줄다리는 출렁출렁 흔들거려 사람이 많을 때는 붙잡아야 마음이 놓였다. 

                                    발 빠른 홍사장이 미리 앞질러 가서 뒤에 오는 나를 찍어 보내준 사진이다.

 

  

 

 

 

▼ 가는 곳마다 시시각각 변한 듯 다르게 보이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산, 눈을 뗄 수 없었다!  

 

 

 

 

 

 

 

 

 

 

 

 

 

 

 

 

▼ 정말 걸음을 빨리 걷는 난초씨다. 나는 도저히 함께 걸을 수 없큼... 완전무장으로 얼굴을 가렸다.ㅎ        

 

 

  

 

 

 

 

 

 

 

 

              ▼ 팍딩(2652m) 에서 머문 숙소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숲과 계곡 물소리...

 

 

 

 

 

 

 

               ▼ 이곳의 산이나 마을 등 낯선 이름들은 적지 않으면 듣고도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 준비해온 음식물들이 무거운 일행은 아침을 라면이나 누릉지탕으로 해결하면서 밑반찬을 줄여갔다.

                  너도 나도 준비해온 음식물들이 꽤 많았다. 우리 살림꾼 난초씨 서비스 그만이다.

 

 

  ▼ 새벽인가? 아니 저녁인 것 같다. 새벽잠 많은 내가 여유있게 사진 찍었을 리 없으니... 땅거미 지는 시간의 고요함...

 

 

 

 

 

 

              ▼ 가이드 너버와 그가 부른 포터들. 맨 앞의 청년은 한 쪽 팔이 없이 짐을 나르고 있는 다른 여행팀 포터였다.  

 

 

 

 

              ▼ 성능 좋은 카메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던 홍사장. 사전준비를 많이 한 덕에 많은 좋은 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 목에 매단 저 놋쇠 종... 딸랑거리는 소리, 듣기도 좋고 길을 비켜줄 수도 있지만 힘겨울 땐 얼마나 무거울까?             

                                                  

 

 

 

 

 

 

 

 

 

 

 

▼ 한 서양인이 초코렡 대신 주고 간 풍선을 불며 노는 아이들... 으례 사탕이나 초코렡 주기를 기대한다.        

                                                                    

 

 

 

              ▼ 산간지방이 모두 그러듯이 해만 나오면 따스하고 쾌적한 날씨지만 응달이나 조석으로는 많이 추운 날씨였다. 

                 로찌마다 햇볕에 담요나 이불, 빨래한 옷가지들을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물이 차서 아예 빨래는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세수만 할 정도였다. 로찌에서는 한 잔의 더운 물도 사먹어야 했다.

 

 

                                     ▼ 엄청나게 긴 폭포여서 잘라서 찍었다.

 

 

 

 

 

 

 

 

 

 

 

▼ 그 곳의 토종닭들은 크기가 작고 옛날 우리네 닭들처럼 보였다. 닭요리는 그리 비싸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일행들은 질리지도 않고 매일 닭요리와 날밭(유일하게 리필이 되는 카레밥)을 고추장에 비며 먹었다.               

                   육식과 매운 것을 즐기지 않는 나는 심심한 국물의 야채 섞인 '레팔누들'을 즐겨 먹었다.  

                                                                                     

 

 

 

 

 

 

 

 

                ▼ 햇볕 가득 받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스려지는 풀들이 참으로 환상적이게 아름다웠다.

 

 

 

▼ 20여장의 합판을 메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소년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어린 그의 삶은 왜 이리 고단해야 하는가...                                                 

 

 

 

 

 

 

 

▼ '남체'(3440m)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도 힘겹게 올라왔다. 오르면 오를수록 자신을 낮추어야하는,   

        겸양을 배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힘든 트레킹에 나서는지도 모른다. 참아야 하는 외로운 삶에 연장이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은 그런 마음을 위안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 빨래터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겁게 빨래를 하는 심신이 건강한 이 곳의 처녀들. 자연미가 넘친다.          

 

 

 

  

 

 

              ▼ 남체 '바자르' 어리둥절할 만큼 많은 물건들이 길바닥에 가득하다. 없는 것이 없을 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여

                 마을 사람들, 여행객, 포터들이 싼 값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포터애들 중에 슬리퍼를 끌고 짐을 나르는 것을 

                 본 마음씨 고운 난초씨, 1,000루피(14$,18,000원 정도)를 주고 그 날로 양말과 운동화를 사 주었다.

                 나와 한 친구는 너무 피곤하여 새벽같이 떠나는 일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하루 쉬면서 이 마을을 구경했다. 

 

 

 

 

 

 

 

 

 

 

 

 

 

               ▼ 이곳의 아이들이 우리네 민속놀이인 제기차기를 즐겨하는 것을 보자 더 친근함이 느껴졌다.

 

 

 

              ▼ 우리가 묵었던 숙소. 더운물은 돈 주고 사서 써야했고, 수도와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해야했다.

 

 

 

 

 

 

 

 

              ▼ 등산용 스카프, 티셔츠 등에 에베레스트, 로체등 이곳 쿰부지역의 지도가 인쇄된 물건들이 많았다.

 

 

 

 

 

 

 

 

 

 

 

             ▼ 가난한 곳에 살아도 낯선 여행객을 보고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면 그들은 행복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일 것이다.   

 

 

 

 

               ▼ 이 아저씨는 애들처럼 예쁜 티셔츠를 입었기에 재미있어 찰칵 하는 순간, 심상치 않은 얼굴빛이다.

                  허나 두 손 모으고 '나마스데' 인사하면 금방 얼굴빛이 순해지며 하던 일을 한다.  

 

 

             ▼ 대개는 이 아저씨처럼 일부러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은 후, 고맙다며 보여드리면 기뻐하시는 착한 사람들이였다. 

 

 

               ▼ 가운데 김사장님, 패션에 신경 쓰신 듯 폼은 참 좋으셨는데, 그만 고산증을 견디지 못하고 '칼라파투라'(5800m)

                  에서 기념촬영 한후 하산하여, 유대장님과 우크라이나 들렸다가 우리보다 먼저 귀국하셨다고 한다. 

 

 

              ▼ 해가 질 때 드러나던 산과 하늘의 아름다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휴대용 카메라 사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 들녁에는 자잘한 예쁜 꽃들이 지들끼리 옹기종기 무리지어 피어나 지나는 이의 시선을 끌었다. 

 

 

 

 

 

 

 

 

 

              햇볕과 바람, 웅장한 산과 새파란 하늘의 흰구름, 반짝이는 나뭇잎새들, 그리고 묵묵히 걷는사람과 짐 실은 야크,

                 더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완벽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던 시공간들... 힘겹고 고단한 육신과 달리 점점 맑아지던 정신,

                 이 곳에서만이 맛볼 수 있었던 트레킹의 묘미였다. 아침에 떠날 때면 타이레놀 2알을 먹고 떠나곤 했다. 그래서

                 고산증 때문에 몸이 좀 붓기는 했지만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찍으며 쉬염쉬염 간 탓에 

                 계속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걸어야 했다. 마치 고독한 순례자라도 된 듯이... 

 

 

 

 

 

 

 

  

 

 

 

 

 

 

  

 

 

 

 

 

  

 

 

 

 

              ▼ 포터 중 장가 갔다고 성인 대접을 받은 '빅카스'와 카투만두에서 이틀이나 걸리는 먼 곳에서 왔다던 막내 '동깡'

                 젤 작은 몸집으로 젤 무거운 짐을 지길래 잘못됐다고 하자, 웃으며 빅카스가 젤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녔다.

                 동깡의 성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모두들 칭찬을 했는데, 그애의 인상이 행동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나는 일행들보다 그 애들과 더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사히 트레킹을 마칠 수 있도록 번갈아가며, 

                 짐을 내려놓은 그들이 힘들었을텐데도 마중을 나와 뒤늦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잊을 수 없다.  

 

 

 

 

 

 

 

               ▼ 저녁 안개가 산을 덮기 시작하면 마을은 몽환적 분위기에 쌓이고 여행객들은 집에 두고온 가족들을 생각한다. 

 

 

 

 

 

 

 

 

              ▼ 로찌에 도착하면 지치고 추워서 침상이 있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식당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난로불을 

                 피우는 시간은 해 떨어지고 2~3시간 정도에 불과해 초저녁부터 떨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잠이 보약인 나는

                 준비해간 안정제를 먹고 깊은 잠에 떨어져 추운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함께 잔 난초씨는 거의 매일 춥다고 했다.   

 

 

 

 

 

 

 

 

 

 

 

 

 

 

 

 

 

 

  

  

 

 

 

 

 

 

 

 

 

  

 

 

 

 

 

 

 

 

 

 

 

 

 

 

              ▼ 야크똥을 납작하게 하여 차곡차곡 쌓아 말리는 모습. 연료로 사용한다.

 

 

 

 

 

 

 

 

 

 

 

 

 

 

 

 

 

 

 

 

 

 

 

 

 

 

 

 

 

  

 

 

 

 

 

              ▼ 아침 일찍 떠날 차비를 하며 열심히 짐을 꾸리는 포터들. 남체에서 탱보체까지 5시간 정도, 다시

                 탱보체에서 딩보체(6시간 정도)까지 트레킹했는데, 나는 빠른 세 사람보다 한두시간씩 늦게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일행보다 2시간 전에 떠나라는 홍사장 지시에 컴컴한 새벽 4시에 포터 한 명과 길을 떠나기도 했다.

                 눈길과 비탈길이 위험한 곳에서 만나 함께 가야한다는데, 무슨 잔소리가 필요하겠는가?  에구, 졸리고 힘들어라~  

 

 

 

 

  

 

 

               ▼ '아이쿠! 꽈당!  아니, 빨리 안 일으켜주고 뭘 보고있담!' 쯔쯧... 힘든 내가 그만 나자빠졌다.

 

 

 

 

 

 

 

              ▼ 포터 '구빈다'와 지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또 한 소년. 구빈다는 영리하고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애였다.

                 트레킹 마지막 날은 이 착한 소년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는데, 이름도 기억 못하다니...쯔쯧, 미안해라. 

 

 

 

 

 

 

 

 

 

 

 

 

 

 

 

 

 

 

 

 

 

 

 

 

 

 

 

 

 

 

 

 

 

 

 

 

 

 

 

 

 

 

 

 

 

 

 

 

             ▼ 지치고 지친 몸으로 로찌에 도착했을 때, 마치 그 수고함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보이던, 일몰하는 산의 광채!!! 

 

 

              ▼ 트레킹 중 사고사를 당한 한국인 두 사람, 이들을 기념하는 헌패와 돌탑. 구빈다는 멋모르고 노래부르며 

                 춤까지 추며 나를 웃겼다. 나는 숙연해지는 기분과 함께 내가 참 대단히 힘든 일을 하고있구나 생각되었다.

 

 

 

 

              ▼ 로부체에서 에베레스트(8850m) 최고의 전망대로 푸모리,눕체, 아마다블람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5600m)

                 로 가는 날, 나는 더 이상 무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트레킹에서 빠져 숙소에 남았다. 연세 많은 어른 두 분은 각각

                 550$을 치루고 말을 타고 오르셨다. 하루쯤 쉬었다 갔다면 나도 갈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돌아온 후에 모두 감기

                 몸살을 앓으며 약들을 챙겨먹었다. 두 분은 일행과 더 이상 합류 못하고 하산 하였다. 결국 네 사람이 남았다.

                 이 곳 트레킹은 '무리는 금물'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욕심 안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달러로 팁주기를 기대하는 영리한 구빈다의 도움을 받으며 힘겹게 고랍셉까지 온 나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많이 피곤했는지 고산증으로 얼굴이 조금씩 붓기 시작했다.

 

 

  

 

 

              ▼ '종나'로 가는 '촐라패스' 길은 '철학자의 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사색적이고 아름다웠다. 혼자 네 시간 정도

                  걸으며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듯, 원시시대에 있는 듯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 해발 5000m가 넘는 고지에서 로찌도 춥다고 야단인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이들도 있어 놀라웠다.

                 자고 일어나면 물병의 물이 꽁꽁 얼어있어 마실 수도 없었다. 발밑에 품고 잤던 뜨거운 물이 식은 것을 마셨다. 

 

 

 

 

 

 

 

 

              ▼ 고랍셉에서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려던 여정을 바꾸어 '고요꼬'로 향했다. '아이뎀 피크' 눈산에서

                 하룻밤을 잤다. 새벽에 나와 로찌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잠시 쉬는 일행들. 이 날은 눈길에 또 험한 돌비탈길을

                 5~6시간 오랫동안 걸어야 해서 지칠대로 지치고, 자고나니 얼굴이 호박처럼 부어 올라 웃기지도 않았다.

 

 

 

 

 

 

 

 

 

 

 

 

 

 

 

 

              ▼ 녹색 코발트빛 호수가 아름답게 드러나며 '고요꼬' 호수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알린다.

                 몹시 힘든 가운데도 기막히게 멋진 경치를 볼 때마다 감탄과 함께 눈물이 솟았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곳은 고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늑하여 바람이 그리 불지 않고 관광객이 많은 편이었다. 그 날 로찌에 여자는

                 젊은 서양애 몇명과 동양여자는 난초와 나, 둘 뿐이었다. 억척 아줌마들이 아닐 수 없다.

 

 

 

 

 

 

 

              ▼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일행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 트레킹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함께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수있게 했다. 이 고생을 마다했으면 이런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낄 수 있었겠는가?  

 

 

 

 

              ▼ 태양열과 야크똥 등 자연을 이용하는 친환경지대라 전기도 더운물도 귀하여 일찍 자고 세수도 찬물에 해야했다. 

 

 

              ▼ 로찌에 도착하자마자 두어시간 비몽사몽 쓰러져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가본 호수가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크의 모습이 퍽 낭만적이었다. 찬물에 수건을 적셔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운 오리털 파카를 

                 2개나 입었는데도 온 몸이 시렸다. 

 

 

 

 

 

               ▼ 단체여행 온 서양 관광객들의 포터들이 일정구역에서 식사를 준비해 추운 밖에서 먹고 있었다. 

 

 

              ▼ 마치 설산이라도 타고 내려온 듯 느껴지는 산타수염의 랍비 할아버지. 에이, 얼굴이 퉁퉁 부은 나는 빠질 걸~

 

 

              ▼ 로지에서 알게된 독일 국적의 트레킹 전문가. 근데 이 사람은 얼굴 하나도 붓지 않았잖아? 우리와는 다르네...

                 미리 와 쉬어서 인가? 우리도 하루쯤 머물다 가면 좋겠는데, 15일 일정을 넘기면 안 된다고 다음날 바로 출발이다.

                 리더인 홍사장의 스케쥴에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 일행과 떨어져 오지 않는 나를 마중나온 빅카스, 영 속도를 내지 못하고 힘들어하자 등을 돌려대며 업히란다.

                 날 업고 한 걸음에 고바위를 넘어가서 내려놓는다. 얼마나 고맙던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 민박집에서 춥고 지친 몸을 녹이는데 모두 침묵, 내가 구빈다에게 노래와 춤을 청하자  끼를 발휘한다.

                  그는 네팔민요를 부르며 춤추고, 나는 아리랑을 부르며 함께 춤을 추었다. 한바탕 웃으며 피곤함이 가셨다.

                  이 집은 인심 후하게 난로불을 넉넉히 넣어주어 우리는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화장실은 발빠지게 

                  칸이 넓어서 기겁을 하게 했지만 음식은 정성껏 잘해주었다. 후라쉬 터뜨린 사진이라 밝지만, 전기가 없었다.

                  얌전해보이는 남편과 수줍어하는 임신한 아내, 어린 딸, 그렇게 세식구가 사는 집으로 합판 한 장으로 칸막이 한 

                  손님용 룸이 두 개 있었다. 이 때도 발빠른 홍사장은 사진 찍기 위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다음 날 민선생이 내가  

                  코고는 소리 요란하더라고 놀렸다. 평소에 코골지 않는데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어두운 부엌에서 아궁이 불 앞에 서로 붙어앉은 이 가족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볼 때 불편해 보이는 여러가지가

                  이미 익숙해져있는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다음 날 내려가는데, 남편은 야크를 끌고 장을 보러

                  가는 듯 했다. 혹간 가다 들리는 손님과 처자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사러 가는 것일게다.

 

 

 

 

 

 

 

 

 

 

 

 

 

   

 

 

 

 

 

 

 

 

               ▼ 참으로 수많은 형태의 길을 묵묵히 혼자 걸었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 평평한 길, 돌길과 흙길, 눈길까지 

                 그 길들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많은 형태의 낯선 길들을 걸으며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그리고 나서 느끼는 건

                 그 수많은 길을 잘 참아낸 스스로에게 이는 자랑스러움과 삶에 있어 축복이었다. 오늘 아름다운 이 길들처럼...

 

 

 

 

 

 

 

              ▼ 남체로 다시 돌아 온 일행은 한 예쁘고 상냥한 아주머니와 축하연을 열었다. 홍사장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 여인 덕에 일행은 맘껏 즐거움을 나누며 건배를 했다.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호텔 사장의 부인이란다.  

                 에그, 홍사장 좋다 말았네! 그 날 술값 좀 과하게 나갔을 것 같다.ㅎㅎ... 그래서 네팔에서 먹어 본 닭요리 중

                 젤 호화롭게 치장한  닭요리 상에 올랐다. 물론 서비스는 아니고 1000루피짜리였다. 

 

 

              ▼ 우리와 처음 트레킹부터 끝까지 함께 해서 정이 많이 들었던 포터 빅카스(22살), 동깡(16살), 구빈다(18살).

                 착하고 성실했던 그들의 앞날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너희들 도움 정말 고마웠다!!!'

 

 

 

 

 

  

 

             ▼ 일행과 멀어져 혼자 걷던 중 길을 알 수 없어 30여분 헤매다 만난 영국에서 온 한 젊은 커플. 서양애들은 여자들도

                남자들과 거의 같은 크기의 배냥을 지고 걷는다. 정말 기운이 좋다. 그래도 속도는 남자를 따르지 못해 한 참 뒤지고

                포터애 손 잡고 걷는 나를 부러운 듯 쳐다보며 열심히 따라 걷는다. 

 

  

 

               ▼ 무거운 짐을 부리고 돌아가는 나귀들인지 몹시 기운이 없고 지친 모습들이었다.

 

  

 

 

 

 

 

  

 

 

 

 

 

              ▼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일행보다 2시간 일찍 새벽 6시에 떠났지만, 1시간 좀 지나자 발빠른 그들과 만났다.

                 걷는 속도가 느린데다 이렇게 사방팔방 다 보면서 사진까지 찍으며 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언제

                 또 이 길을 지나가겠는가? 충분히 즐겨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아예 그들은 나와 함께 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밀크티와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우리는 헤어져서 또 걷기 시작하는데, 금방 식사를 하고 걸어서인지 여간 부대끼지

                 않는다. 위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다. 계속 더 자주 쉬면서 걸을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 날은 두세시간 늦은, 어두워진 뒤에야 마중 나온 포터애의 도움을 받으며 도착해, 걱정한 일행들에게 미안했다.     

 

 

 

 

 

 

               ▼ 조석으로 추운 산간지방인지라 어린 아이들 코 마를 새가 없다. 볼이 발갛게 트고 콧물을 훌쩍거린다.

                 어른인 우리도 모두 코를 훌쩍거렸다. 홍사장은 밥 먹을 때마다 코를 소리나게 풀어 일행들에게 쿵을 받을 정도였다.

 

 

 

 

 

 

 

 

 

 

 

 

 

 

 

 

 

 

 

 

 

 

 

 

 

 

 

 

 

 

 

 

 

 

 

 

 

 

  

 

 

 

 

 

              ▼ 다시 루쿨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카투만두로 향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일주일간 더 하고싶어했던 홍사장도

                지쳤는지(그는 나보다 세군데나 더 트레킹을 하고 왔으니) 포기하고 네팔 국립공원에 가서 쉬자고 했다.

                작고 뿌연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산악을 그냥 찍어보았다.

 

  

 

 

 

             * 힘에 부치고 고단했던 트레킹 15일을 무사히 끝내고 느끼는 건 일생에 한 번 쯤은 꼭 해보아야 할 여행이라는

               생각이다. 아니,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한 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해보고 싶다. 더 힘들다는 코스를 했으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을 만큼 힘들다가도 쉬면 다시 회복되는 '몸' 이라는 존재가 절실하게 고맙게 느껴졌다.  

               소박하게 존재하는 산악지대 네팔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욕심은 지나치게 넘친다.

               그 곳에서 만난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