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네팔'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게 된 건 순전히 한 친구의 권유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7사람이 동행이 되어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기로 계획하면서 약한 내 체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까지 해보자 결심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2009. 10. 26.(월) 아침 9시경 대한항공을 이용해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1990년 민주화 된 이후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이 곳은 끔찍이나 복잡하고 다인종과 다문화가 집결된 먼지투성이 도시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다닐 수 없었던 인도의 '바라바시' 처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곳이었다.
과거에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히피들의 메카였다는 이 곳은 말 그대로 자유가 난무하는 관광도시였다.
그리고 5개의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여 지상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문명을 껴안아 덮고 있는 듯 느껴졌다.
카투만두 분지를 뜻한다는 '네팔'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네와르'족 사람들이 건설한 이 도시는 해발 1400m로
기후는 일년내 온화한 편이란다. 전체인구 2000만명 중 이곳에 150만명이 거주한단다.
고도(古都)가 간직하고 있는 옛문명은 여행자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온갖 등산용품의 박람회장처럼
없는 것이 없고 가격도 저렴하다. 거의 모두 짝퉁이긴 하지만... 나도 이곳에 와서 100$ 정도 주고 침낭을 준비했는데
사용하기에 괜찮았다. Marmot 짝퉁인지 모르겠지만 내맘에 들었다.
▼ 달러를 사용하기 편한 이곳의 화폐 '루피'로 바꾸는 환전소 앞에 일행들. 1달러가 72루피 정도로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노란모자 쓴 분이 이번여행 리더였는데 중도에 팀이 나누어져 일찍 귀국하셨다고 한다.
▼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지만, 산간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 나와 함께 여행을 하자고 한 체구가 크고 건강해보였던 이의 뒷모습. 미국에서부터 준비하고 왔는데 그만 도중하차!
▼ 다른 개발도상국가들 처럼 이곳에도 정성들인 핸드메이드 상품이 즐비했다. 그만큼 인권비가 싸다는 거다.
▼ 한 음식점에서 메뉴를 들추며 먹을만한 음식을 고르고, 정원을 손질하던 네팔 청년의 시선이 카메라에 찰칵!
▼ 마치 네팔인들의 낙천적인 마음을 나타내 듯 알록달록 예쁜 색상의 털실 모자와 덧버선들, 그리고 장식품들.
▼ 이렇게 낡은 자전거를 이용하여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어딜가나 많았다.
▼ 첫날 우리가 묵은 호텔(우리나라 여관보다도 못한) 숙소에서 내려다 본 뒷골목의 밤풍경.
▼ 호텔 로비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선하고 밝아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대하였다.
▼ 과일을 싣고다니며 파는 노점상이 무척 많았다. 바나나, 귤, 사과 등 맛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 야크털로 짠 알록달록한 따스하고 예쁜 수공예품들. 해가 사라지고 나면 조석으로 추운 날씨 탓에 털제품이 많았다.
▼ 부처의 눈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는 '쉬염부나트' (녹색언덕 위에 핀 커다란
연꽃 한 송이라는 뜻) 우리 일행들 그 앞에서 키 순서대로(ㅎㅎ...) 포즈 잡았다.
▼ 사원 뒷편에서 장사하기 위해 먹을 것을 장만하고 있는 부부인 듯 보이는 이 곳 사람들.
▼ 많은 종교와 관습이 현대 문명과 뒤엉켜 어지러웠지만 머잖아 나름대로 또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어갈 것이다.
▼ 26일간 동거동락한 멋쟁이 아줌마 '난초', 완전무장한 폼이 은행으로 직행해야될 거 같아. ㅎㅎ...
얼마나 걸음이 빠르고 행동이 민첩한지 웬만한 남정네도 못 따라갈 정도였다. 추위를 많이 타서 힘들어 했지만,
어딜가나 느리고 약한 나를 끝까지 참고 잘 대해주어 고맙다. 속으론 느려터졌다고 욕을 바가지로 했는지도.ㅎㅎ...
아 참, 이이는 농담을 진담으로 아는 순진한 이라 조심해야 한다!
▼ 사방으로 세상을 쳐다보는 새파란 부처의 눈, 자비롭기보다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 네팔은 어딜 가나 이렇게 색색깔 깃발이 나부낀다. 수많은 기록들이 염원과 함께 바람에 지쳐 빛 바래갈 것이다.
▼ 점점 속도를 늦추며 사는 내가 이 할머니 나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또 어떻게 느껴질까?
아마도 세상의 빠른 속도와 상관없이 더 평화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그릇 테두리에 막자를 돌려 소리를 내면 그 여운이 맑고 긴 놋쇠 그릇들.
▼ 최대의 흰두사원이라는 '퍼슈퍼티나트' 사원 화장터. 상류 오른쪽은 왕족 전용이고 하류는 서민용이라고 한다.
화장재는 '버그머띠'강으로 흘려보낸다. 많은 관광객이 구경하면서 생명의 무상함을 느낀다.
▼ 전문 사진작가 못지 않은 열정으로 사진을 찍던, 우리 일행을 리드했던 홍사장. 본업은 건축사무소 운영을 하는 이다.
근데 왠지 '사진을 위한 사진찍기' 처럼 느껴지는 건, 아픈 몸도 불사하던 그의 지나친 열정이 보기 딱할 정도였다.
그는 뚱뚱했던 배가 훌쭉해질 정도로 이 여행에 심혈을 쏟아(준비체력운동까지) 10kg 이나 다이어트를 했다고...
▼ 죽음과는 상관 없는 듯 천진한 아이들. 그 물에서 수영을 하며 삶을 즐긴다.
▼ 사진을 찍으면 모델료를 치루어야 하는 거리의 철학자들. 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당당하고 화려하다.
이들 또한 제 잘 난 맛에 사는 인생 아니던가? 그 이면을 알지 못하니... 인도의 유랑자들과 흡사하다.
▼ 이곳에는 이렇게 남의 시선 아랑곳 없이 대낮에도 퍼질러 자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 '에카더스 루드라'로 불리는 11개의 흰색탑은 시바신앙의 상징인 '링거'를 모신 곳이라고 한다.
▼ 사원 한 쪽 숲에는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 카투만두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옛왕궁과 사원에 둘러싸인 티르바르 광장과 미(美)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파턴'. 네와르족의 고도(古都)라고 한다. 아득한 고대의 느낌이 들었다.
▼ 이곳은 몇백년 되었다는 건물의 고급식당인데 무척 고풍스럽고 음식도 맛있었다. 광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 오른쪽 잘 생긴 청년이 네팔의 왕족 후손이라는 가이드 '너버'인데 그는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기 위해 우리와
함께 출국하기로 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며칠 미루게 되었다. 그의 언행에 반듯함과 다정함이 있었다.
▼ 우리가 고급스러운 식사를 하는 동안 건물 아래 뒷편에서는 거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네팔 청년들.
▼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석구석 무척 정교하고 기교적인 문명의 아름다운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 수백년을 버티며 선조들의 정교한 목공예 기술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사원의 나무 기둥들.
▼ 차창 밖에서 장신구를 파는 네팔 여인. 육감적이지만 후덕한 인상이다.
▼ 왼쪽 속이 하얀 열매를 잘라놓은 것이 코코넛. 나중에 그 맛을 보고 꾸덕꾸덕 말린 것을 즐겨 씹어 먹었다.
달지 않고 고소한 섬유질을 씹는 맛이 군것질용으로 좋았다.
▼ 무거운 짐을 모두 이마위 머리로 지는데 얼마나 아플까 생각되어 포터애들 머리를 한번 만져본다는 게 그만 잊었다.
아마도 딱딱하게 굳은 살이 배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파서 참겠는가...
▼ 네팔 고유악기인 듯 거리마다 연주하는 이들이 많았다. 소리의 느낌은 약한 듯 강한 듯 좀 묘했다.
▼ 차와 오도바이, 릭싸, 사람들, 짐승까지 모두 뒤엉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혼잡한 삶의 모습이다.
▼ 그러잖아도 복잡한 길가에 옷감을 마구 늘어놓고 파는 모습이 이채롭다.
▼ 카투만두를 떠나 국내선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중 비행장까지 짐을 들어다 주기 위해 짐꾼들이 몰려들었다.
* 하룻밤 묵은 번잡한 도시 카투만두를 떠나 30분 정도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로 이동한다.
이제 고산증이 염려되는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으로 떠나기전 다시 돌아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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