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쉬러간다'였지만, 경비행기에서 내려 카투만두에서 야시장을 구경하고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다음 날 일찍 다시 덜컹거리며 온갖 먼지를 다 받아들이며, 문을 연 채 달리는 버스에 7시간 넘게 몸을 맡겨야 했다.
배냥을 안고 앉은 좁은 자리는 차라리 네 활개 벌리고 걸을 수 있는 고단했던 트레킹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물론 더 고급 관광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가격차이가 많이 나서 그랬다고 한다.
▼ 카트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며 본 모습들. 힘들고 지쳐서인지 촛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 투성이다.
▼ 시내에 이렇게 쓰레기들이 쌓여서 방치되어 있다니... 이런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게다.
우리는 옛날에 못 살아도 이렇게 더럽지는 않았었다. 정치 하는 사람들의 인식 부족인지 게으른 국민성인지,
기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익숙해진 타성 때문인지, 아무튼 위생관념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 여행 스트레스 때문에 일행은 변비에 시달렸다. 민선생님이 효과가 있다는 과일을 사기 위해 가격을 물어본다.
앞에 놓인 이 과일 깍아놓으니 우리네 단호박 비슷하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몇 조각씩 먹고 잠들었다.
▼ 얼마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인지, 민선생님이 알아온 이 식당은 네팔인이 하는데 음식맛이 꼭 우리 입맛이었다.
된장찌개, 상추쌈에 삼겹살, 불고기까지 포식하며 영양보충을 하였다. 주인이 한국식당에서 오래 일한 세르파족이었다.
세르파족은 현지 가이드를 일컬으나 원래는 67개의 종족 중에 하나로 새가슴을 하고 있는, 폐활량이 큰 종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등반 원정대의 가이드를 하게 된 것이고, 일반명사가 된 것이다.
▼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둘러본 식당의 정원 모습이다.
▼ 복잡한 카트만두 시내 상가는 밤에도 차, 오도바이, 릭샤, 사람들로 붐볐다.
▼ 국립공원 치트원을 향해 가는 버스는 수시로 손님을 태우고 내려주었지만 휴식시간은 단 두 번 밖에 주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점심을 먹으라는 거였다. 그 짧은 시간에 돌아본 여러 가지 풍경들...
▼ 레스토랑 외에 그 즉시 간단한 주문 요리를 해주는 간이 음식점들이 줄지은 거리였다.
▼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함을 즐기는 네팔 노인. 그 모양을 바라보는 여행 온 화려한 서양 할머니...
▼ 지나가다 잠시 멈춰 섰을 때 버스 속에서 창문 밖으로 본 풍경. 옛날 우리네 농촌과 비슷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 치트원 국립공원에 들어 가기 전 우리가 머문 호텔. 이 곳에서 떠나고 처음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아유! 떼수건 가져올 걸... 투어를 시작해 또 일정에 맞추어 움직여야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 영어로 가이드 하던 네팔 아저씨, 전통 민속 농가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다. 우리 일행 4명과 자매 2명이 함께 다녔다.
▼ 인상이 고운, 예쁜 아가씨가 집앞을 깨끗이 쓸고 있었다. 농사를 짓는 이 동네는 비교적 깨끗하였다.
▼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집 마당에도 이렇게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들을 키웠다. 서울 용산구였는데도...
매일 금방 낳은 따스한 달걀을 내 손에 쥐어주며 어서 먹으라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 아이들이 제기차는 것을 본 난초씨, 어린 시절 제기찼던 실력을 발휘해 아이들을 즐겁게 했다. 못하는 게 없다니까...
▼ 돼지를 우리에 가두지 않고 마당 한 구석에 매놓고 먹이는 모습이 우리네와 달랐다.
▼ 이발소의 한 소년이 같은 또래의 머리를 깎아주는 모습인데, 그 진지한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 국립공원 사파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서있던 입구. 공원내에도 호텔이 있다는데, 가격차이가 크다고 했다.
▼ 이 강을 건너면 국립공원 정글이다. 네팔에는 7개의 국립공원과 3개의 야생생물 보호구역, 1개의 수렵보호구역이 있다.
국토의 8%가 자연보호대상이라고 한다. 타라이 평원에 있는 치트원 국립공원은 야생동물의 보고(寶錮)라고 하며,
동서로 80km, 남북으로23km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지만 생각처럼 야생동물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 모기가 많은 지역이여서 모기장이 드리워진 새하얀 시트의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네팔 와서 가장 쾌적한 숙소에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자고 나서인지, 견딜 수없게 고단했던 몸의 피곤함이 좀 가시고 붓기도 나아졌다.
▼ 정글 사파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데, 길가의 한 가게에서 TV를 보는 꼬마 중 한 아이가 렌즈에 잡혔다.
여간 총명해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어린 시절, 처음 TV가 들어왔을 때 친구 집에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 정글에서 주로 타고 다니는 찝차. 이 차를 타고 가 코끼리 투어를 했고, 다음날은 이 차를 타고 공원을 돌아다녔다.
▼ 코끼리를 올라타는 장면. 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두어시간 이상 다닌 것 같다. 노래가 절로 나오는 즐거운 경험!
▼ 뒤에 앉아 내려다 본 코끼리 잔등에 난 듬성듬성한 검은 털, 이렇게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었다.
▼ 코끼리 타고 이 강물을 건널 때 약간 긴장 되었지만, 아마도 가장 깊지 않은 부분을 주인이 알아서 건너게 했을 것이다.
모두 뿔뿔히 흩어져 우리 밖에 없어서 사진에 담을 수도 없었다. 코끼리 엉덩이 밖에...
▼ 정글이라고는 하지만 벌채를 많이 해서 찦차 투어를 하는 길은 차라리 말을 타고 달리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될 만큼 흙길이 다져지고 좋았다.
▼ 체격이 큰 민선생님은 자리가 좁아 몹시 불편했었는지 내리면서 아구구! 소리를 지르신다.
쯔즛... 코끼리 주인 양반 안 됐다는 듯이 쳐다보신다.
▼ 국립공원 근처여서인지 이곳의 가게들은 그래도 깨끗하고 그리 붐비지 않은 한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 기침이 멎지 않는 민선생님이 약을 구입한다. 한국에서 지어온 감기약을 짝궁과 나누어 먹은 탓에...
▼ 가이드가 표를 가지러 간 동안 찝차투어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서있는 일행들. 이 자매는 노르웨이에서 온
이들인데 언니가 청각 장애자였다. 착하고 똑똑한▼ 동생이 언니와 함께 벌써 6개월 넘게 동남아 여행중이란다.
▼ 네 시간이나 달리며 구경했는데, 차가 너무 흔들려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동안 원숭이, 멧돼지, 악어 등을
드문 드문 보았다. 나중에는 고단한 나머지 조는 이도 있었다.
▼ 짬깐 들린 악어 공원, 허술하여 관리부족을 느끼게 했다.
▼ 저녁에는 근처에 네팔 민속공연장을 갔다. 우리 난타공연 처럼 리듬 위주의 공연을 하였는데, 관중석이 요란했다.
▼ 다음 날 새벽 카누를 타고 새탐험을 하기 위해 나섰는데, 물안개 내린 강가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 새들이 날아가는 고요한 새벽강을 카누에 실려 조용히 내려가면서 마음이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 도저히 휴대용 카메라로는 아름다운 새의 비상을 잡을 수 없었다. 홍사장의 카메라가 위력을 발휘하며 멋지게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짓을 렌즈에 담았다. 희귀하게 새의 날개가 아주 예쁜 파랑색이었다. 가이드가 책자를 보며
새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그렇게 몇 종류의 희귀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멀리 보이는 공작새는 끝내 우리를 위해 그 화려한 부채꼬리를 펼쳐보이지 않았다.
▼ 카누를 엎어놓아 만든 휴식 의자가 마치 바위처럼 자연스러웠다. 멋진 정경의 아침이었다.
▼ 코끼리 사육장. 쇠사슬에 묶인 어미 코끼리, 어미젖을 먹는 아기 코끼리들...
▼ 덩치 큰 코끼리의 눈이 이리 작을 수가... 코끼리도 새끼 코끼리는 귀엽기만 하다.
▼ 있는대로 멋을 낸 학생들이 단체여행이라도 온 듯 강둑에 모두 서서 카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애들 같기도...
▼ 국립공원에 2박3일 머문 우리는 다시 배냥을 챙겨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출발지라는 '포카라'를 향해 떠났다.
가는 도중 차 속에서 본 풍경들...
▼ 차창 밖으로 코코넛을 파는 소년에게 몇 조각 사서 가는 내내 씹어 먹었다. 달지 않고 고소한 섬유질이었다.
▼ 우리가 7시간 넘게 타고 간 버스. 차장에 조수까지 있었는데 계속 문을 열어놓고 달려 마스크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구블구불한 산악 도로 때문인지 교통사고 난 차량을 심심잖게 볼 수 있었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쉬었던 곳의 식당 정원. 뽀족뽀족한 가시나무에 달걀껍질을 장식했다.ㅎㅎ...
▼ 오래된 도시인 듯 이렇게 신을 모신 엄청나게 굵은 나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 반가운 한글에, 짜장면이라니! 미심쩍은 마음으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시켜서 나누어 먹었는데, 맛있었다.
▼ 난초씨 식탁보 사고 싶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예쁜 수공예 침대보를 잘라서 쓰라고 계속 권하던 착한 아저씨,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을 여간 예뻐하시지 않는다. 이 가게에서 우리가 진상을 떨다 나간 꼴이 되어 많이 미안했다.
▼ 호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한 여인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볏짚단을 묶고 있었다.
▼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무슨 동굴을 구경갔는데, 밖에서 일단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경 온 아이들이 많았다.
▼ 미처 화장을 못하고 따라왔는지, 구석진 곳에 한 소녀가 열심히 눈화장을 하고 있다 찰칵! 하니 부끄러워 숨어버렸다.
▼ 인도처럼 어딜 가나 신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는 나라, 갑갑한 운명을 신의 뜻이라 생각하니 마음은 편안하겠으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는 약할 수 밖에 없어 경제적 빈곤함이나 부당함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다.
▼ 동굴안, 렌즈에 잡힌 수증기 입자가 예상치 않았던 고운 무늬를 만들었다.
▼ 티벳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가니 많은 장신구 등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어 별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었지만,
팔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네와 똑같이 생긴 그들이 주권을 빼앗겨 겪는 수난이 남의 일 같지 않고 마음 아팠다.
▼ 기계로 짜는 카페트의 실용화로 이제는 빈 공방이 된 카페트 공장. 그나마 관광객에게 팔기 위해 조금 남아있었다.
여기 올 줄 모른 나는 카투만두에서 작은 카페트를 하나 산 게 후회스러웠다. 한 서양 젊은이가 작은 카페트 하나를
몹시 흐믓한 얼굴로 사들고 가더라는 말을 듣고, 그의 티벳을 가엾이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티벳 학교 어린이들. 밝지 않은 나라의 장래를 짊어져야 할 그들의 미래에 행운이 있기를...
▼ 티벳 사원의 스님들 오늘 모두 야유회 가셨단다. 빈 사원을 돌아보았다.
▼ 우리를 하루 태우고 다녔던 택시기사 아저씨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때만 해도 번화했던 상가거리였다고 한다.
그 때의 풍족함을 말해주 듯 창문틀의 모양이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었다.
▼ 일종의 구멍가게로 전락한 건물의 창문이 고급스럽다.주렁주렁 매달린 비닐봉지는 군것질 과자들.
▼ 내가 즐겨 먹었던 코코넛, 군것질용으로 좋아 사오고 싶었다. 잘게 짤라 말린 걸 몇 봉지(아주 작은 봉지 밖에 없었다.)
사 왔는데, 난초씨 외에 다른 사람들은 즐겨먹지 않았다.
▼ 화려한 공작새 깃털을 가게에서 팔고 있다.
▼ 야채를 팔러 나온 아가씨인지 미모가 돋보여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야채를 씌워놓았던 헝겊을 들추고,
다소곳이 포즈를 취해준다. 아니, 마음도 비단결이네~ 작은 초코렛 한 조각 밖에 줄 게 없어서 미안했다.
▼ 많은 네팔인들이 검정 마스크를 상용했다. 아마도 검정 마스크를 쓰는 나라, 먼지 많은 이 나라 밖에 없을 듯...
▼ 네팔투어 책자 등 알려진 티벳 음식점 '라사'. 책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도시 라사가 기억난다. 음식 맛있었다.
▼ 멀리 보이던 포카라 넥 사이트.
▼ 피라미드 모습의 '마차푸츠레' 산봉우리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이 곳은 안나푸르나 3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출발지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험한 산길을 곡예하듯 오래 올라왔다.
▼ 인상이 환한, 배우처럼 잘 생긴 학생이 산을 뛰어오르다 힘들었는지 멈춰 서며 낯선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
▼ 길... 사람들이 밟고 또 밟으면 자연히 길이 생긴다. 그래서 익숙해지는 것을 '길든다'고 한다.
그 동안 참 많은 종류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길들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낯설고 힘든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무척 고단함을 느끼지만, 그 길마다 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 일본인과 합작해서 세운 듯 일본말 설명이 써있는 불교사원. 사원을 세운 네팔인의 동상이 있었다.
▼ 이곳에서 은둔하며 수도하는 서양인 비구니 스님. 외출했다 돌아오는 스님을 반기는 개.
▼ 호텔 옆에 유치원 건물이 있었다. 발코니에서 어린애들의 노는 모습을 내려다보았었다. 일행 두 사람이 일출을
찍는다며 새벽같이 '사랑곶'에서'짱구나라로' 간 날, 난초씨와 피곤한 나는 휴식을 취하며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 길거리에서 '까라모트'라는 장기식 당구놀이를 즐기는 네팔 청소년들.
▼ 어디 가나 가게에 이렇게 매달린 비닐봉지들이 많아 궁금한 나머지 우리는 종류별로 몇 개 사서 먹어보았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라면땅' 같은 군것질 스넥이었는데, 맛이 자극적이라 먹기 어려웠다.
▼ 형제인지 알 수 없으나 길거리 공연을 하고 돈을 받는 소년과 소녀. 이들은 좀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냥 구걸하지 않고 재주를 보여주고 댓가를 받겠다는 어린애들의 자립심을 대견하다 여겨야 할지... 측은했다.
▼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소녀가 능숙하게 재봉질을 하고 있었다.
▼ 우리네 동대문 시장 옷감가게 처럼 온갖 실크 스카프가 가득 쌓여 진열되어 있다.
▼ 화덕에 굽는 피자라 맛있으리라 생각하고 세 판이나 시켰는데,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피자집이었다.ㅎㅎ...
전망은 좋아 창문 밖으로 시원스레 호수가 보인다.
▼ 호수가를 산책하고 올라와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 장사하는 엄마 곁에서 글씨 공부를 쓰고있는 어린 꼬마가 귀엽다.
▼ 우리가 묵은 호텔 옆, 골목길의 생수와 휴지 파는 가게와 여행객 등을 위한 세탁방이다.
▼ 다시 카투만두로 돌아가기 위해 완행버스(올 때보다 조금 더 돈을 준 버스는 문을 닫고 달리는 게 다를 뿐이었다)를
타고 가는 중 점심시간에 내려 둘러본 풍경들.
▼ 아이를 돌보며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장난꾸러기 녀석이 옷을 버렸는지 홀딱 벗겼는데, 물건 파는라고 정신 없자
동그란 배를 내놓고 낯선 여행객을 바라보며 서있는데 귀엽다.
▼ 네팔티를 예쁘게 장식해 놓은 토산품 차를 파는 가게와 기념품 가게들.
▼ 카투만두에 오면 '네팔짱'이라는 한국여자가 하는 빌라겸 레스토랑이 있어 그곳에서 많은 정보들을 얻는다.
그녀는 여행을 다니다 네팔이 맘에 들어 눌러앉았다고 하는데, 아직 싱글로 네팔 지배인을 고용하고 있었다.
주방장도 네팔인이라는데, 음식맛이 우리 입맛에 꼭 맞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 그녀의 노력이 느껴졌다.
▼ 물어물어 찾아온 'DDC', 바로 한국 음식점 '빌라 에베레스트' 근처였다. 치즈 등 우유식품 제조공장으로 값을
싸게 살 수있는 마켙이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스크림도 팔았는데, 그 맛이 일품이였다. 그래서 학생들이 많았다.
▼ 길거리에는 이런 노점상 매점이 많았다. 우리나라 서울도 옛날에는 그랬듯이...
▼ 이렇게 크고 깨끗한 고급호텔은 값이 비싼 만큼 뜨거운 물도 잘 나오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 DDC를 나와 빌라 에베레스트에 들러, 앙리 사장에게 유학온다는 너버를 위해 여러가지 정보를 물어보았다.
오늘 일행 두사람은 '짱구나라'로 관광을 새벽같이 떠나고 난초씨와 나는 카트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다양한 시장은 종일 구경을 하고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 네팔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이 청년에 이어, 또 다른 두 사람이 포터 '구빈다'가 부르던 네팔민요를 연주해
관심을 보이니, 자신들이 연주한 네팔 민요 CD를 사달라고 해서 팔아주었다. 그랬더니 노상찻집에서 밀크티를
대접하며 인간적 따스함을 베풀었다. 그들은 기념촬영도 하면서 아주 즐거워했다.
▼ 한 의류매장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는 사이, 인테리어 소품인 옛날 축음기가 눈에 들어왔다.
▼ 떠나기 전 날, 고맙게도 민선생님께서 네팔 전통요리를 하는 고급음식점 '보정그리허'에서 저녁을 사셨다.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간단한 민속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하여 이 여행의 마지막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이 음식점은 150 년 된 옛날 궁전 자리여서 건물 천장 등 고풍스럽고 예술적이었다.
▼ 메뉴판의 디자인이 멋있었다.
▼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만큼 여러 가지 불편함도 많았던 도시였지만,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느긋하게 다시 거리를
돌아보았다. 점심을 대접한다는 가이드 너버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사진 찍었다.
▼ 점심초대를 받아 간 너버네 집에서 네팔 전통요리 나밭을 대접 받고 그의 아버지와 형님을 기념촬영했다.
인상 좋고 조용했던 그들이사진기 앞에 서자 긴장한 듯 표정이 어색했다. 왕족의 후손이라더니 인물이 좋았다.
귀한 자식을 타국에 보내는 가족의 심정이 염려로 가득할 것 같았다. 감기 기운이 있던 너버는 함께 오겠다던
일정을 취소하고 며칠 뒤에 오겠다고 했다. 우리들의 너무 많은 염려가 그를 불안하게 한 것 같았다.
▼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공항. 어느 정도 몸의 고단함이 가신 뒤였다. 잊지 못할 긴 여행이었다.
* 인천공항에 새벽 0시 30분경 도착하여 심야할증요금을 치루며 집에 돌아왔다.
살면서 한번쯤은 꼭 해 볼만한 트레킹의 귀한 경험을 하고 무사히 돌아와 기쁘다.
함께 다니면서 많은 정보와 도움을 준 일행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늘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삶을 즐기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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