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의 끝 >
나무
51. 오늘
아침을 알리는 햇빛, 노래...
포근한 자유를 즐긴다
문득 호들갑스러운 전화벨
노래처럼 미련한 사랑을 하는 사내
웃긴다. 사랑도 정치처럼 하는가
다른 이에게 떠나는 마음
사내 또한 옮겨 다니는 사랑
어둠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그의 자유를 위해
누가 등불이 되려는가
실체 없는 그를 알리는 것들
매혹 당한 눈먼 사랑이
빛이 될 수 있을까.
52. 친구에게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사라진 존재에의 그리움...
맑은 눈은
병원 철창에서 침흘리며 죽어나가고
어린 꼬마 눈은 예쁜 소녀에게 내주고
책임지지 못할 존재를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지는 날들
가벼워질수록 허전하고 시린 가슴
수시로 들여다보는 철없는 사내
슬프고 잔인한 사랑
끝없이 윤회전생하는 속세가 이미 열반의 세계
그것을 의식만 하면 열반에 든다는데...
언제나 해탈을 하고 열반에 들려나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건가.
53. 시어머니 우는 아침
이 눔아!
이어지는 울음에
따라 우는 긴 울음
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
그녀들 울음이었다.
사랑하던 존재들
다 떠나보내고
혼자 눈뜨는 아침
뒤흔드는 시어머니
이 모진 매듭
아시는지 울고 또 운다
눈물이 무슨 소용 있던가
알뜰한 정이 무슨 소용 있던가
인연의 끝 어찌 다시 잇겠는가
불쌍한 목숨들 안타까운 원이 휘감기며
사라지고 또 사라지는 무상한 날들
우지 마셔요. 어머니...
54. 길
가보지 않은 다른 길
머뭇거리며 바라보았습니다
전에는 기웃거릴 수 없었던
높은 담장 옥죄던 족쇄를 풀고
따스한 빛 휘감기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한 걸음 옮겨놓을 때마다
보듬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풀내음
어느새 오던 길을 잊어버려
이제는 돌아가지 않아도 좋은
고단한 몸 씻기는 맑은 샘
무분별의 空이 空이 아닌
낡고 지친 껍질을 뚫고
봄의 환희로 싹트는 새순
그 연둣빛 생명처럼
길은 갈수록 아름답습니다.
한뎃 잠을 자야하는
내 집 지을 땅 한 떼기 못 지녀도
그 길은 평화롭고 따뜻하여 행복합니다.
55. 머리 아픈 날
한쪽 골을 짓누르는 묵직함처럼
어젯밤 동침에서 흘린 눈물처럼
혼자 눈 뜬 아침의 막막함처럼
여리고 고운 그 모습 눈에 박혀서
눈감고 안은 몸뚱이의 허상이
다시금 일깨우는 늘 같은 무상함
인연의 끝을 헤집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고 가는 고단한 나날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새로운 날을 알리고
아픈 이마에 손을 얹는다
따사로운 언어로
빈 가슴에 빛을 비춘다.
56. 어머니
이십여 년을 꿈에서 뵙는
이제는 훨훨 가셔도 될 어머니
혼자 살아도 될 만큼
나이든 딸을 놓지 못해
오늘도 함께 살던 시간을
가지고 또 다시 오십니다.
그때는
그 아픔 보지 못하여
그 사랑 알지 못하여
도와 드릴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분주한 일상에 코를 박고
돌아볼 수 없었던 날들
이제와
참회하며
서러운 눈물 흘립니다.
아무도 모른
일부종사 피 흘린 고통을
혼자되어서야 안 딸일랑
이제 버리시고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나세요.
자유로운 빈터에
빛나는 새순으로 피어나세요.
그것도 싫으시면
당신의 남루한 육신 떠나던 날
맑은 눈 고통스럽게 몸뚱이 버리던 날
사랑하는 일이 슬퍼 우리가 울던 날
이 모든 삶에서 영원히 떠나세요.
이제는 이 딸일랑 잊으시고
윤회 없는 열반에 드세요.
어머니...
57.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일은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일
그건 나누는 삶이다
떠나는 일은
사람들이 다른 일을 찾아가듯이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는 일
그건 모두 더 나누는 삶이다
울며 징징거린 건
사랑한 날 허망함도
사라진 젊은 날 아쉬움도 아니다.
더는 그대와 나눌 수 없는 슬픔 때문이다
그 삶이 아픈 건
점점 옅어지는 기억들이
그 모든 흔적 가릴 수 있는
불꽃으로 다시는 타오르지 못함이다
사랑하는 일은
내 영혼에 흐르는 강물처럼
그대에게 보내는 나의 생명이었다.
58. 어느 날 밤
그와 함께 했던 십칠여년 긴 세월
휘감고 놓지 않는 기억들이 눈물 되는 밤
이제는 잊으려고 잊게하려고
도망치 듯 뒤돌아서는 발길에 묻히는
그대 목소리...
이런 것을
이렇게 다하는 인연인 것을
어찌 알지 못했을까
살갗을 벗겨내듯 쓰라린 시간들
알지 못하고 헤어졌던가
꿈이라 여겼지만 꿈도 아닌
사실도 아닌 그저 아픈 이 마음
지나간 날
아무 것도 아닌
어느 지나가는 시간에
문득 모두가 낯설다 낯설다
이방인처럼 껄끄럽다
살을 부비는 행위의 절대적 외로움
미숙하고 연약한 어설프게 껴안기
낯선 사람들 외로움이 가시지 않는다.
때로는 교활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무참하게도
아주 아름다운 날도...
열린 문으로 드나드는
덜컹거리는 바람소리 듣는다
순수함이 남아서
아직도 사랑이 필요한가
단 한 사람의 존재가 필요한가
그저 지나가는 시간 속에
날아가 버리는 허무한 생명이
고독한 사랑놀이를 꿈꾸는가
넋놓고 죽음을 기다리기 어려워서
그들이 부르면 가야지
잃어버린 날들 뒤돌아보지 않으리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기 위해서
미욱하게 사랑하는 모두를 그대로 두어야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그대보다
가장 적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
더 가까이 있기도 하는
이 지나가는 시간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저 바라보는 나를 볼 뿐이다.
59. 연인에게
이를 수 없는 아늑한 둥지 속에 있는
그대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빗소리를 가르는 창밖 서늘함이 가득한 밤
그대는 멀고멀다 떨어져 있는 거리보다 더...
불타오르는 열정 그 실체를 보게 한 그대
다시는 불사를 수 없는 허무를 실어오고
마치 삶에서 벗어난 듯 저만큼 나앉게 했다
만나면 좋고
못 만나도 괜찮은
슬픔조차 느끼지 않는
이 담담한 초연함에 이르기까지
멀고 먼 길을 온 여행자처럼 쉬고 있다.
60. 숲이 보이는 창가에서
그를 원했다. 지금도 그를 원한다
모양새가 다를 뿐 밀착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부서져갔다
바스락거리며 주홍색 녹처럼 흩어져 떨어졌다
나무가 가득한 창 여름처럼 빗줄기 흘러내린다
거실을 가득 메우는 FM 라디오의 아름다운 선율
반짝거리며 빛나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전혀 새로운 물질의 변환처럼 그들은 변신을 꿈꾼다
의미가 없는 두 사람 사이에 거절
공유하며 각인된 세월이 사랑이다
우리에게 새 연인들은 의미가 없다
바라보며 떨어져있는 시공간의 거리만큼 숨을 쉰다
이 비가 멈추면 계절이 바뀐다. 그들도 바뀐다
변하지 않는 건 계속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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