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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 생명의 비밀 (제임스D. 왓슨)

나무^^ 2017. 10. 10. 16:11

 

DNA 생명의비밀

 

지은이  제임스D.왓슨, 앤드루 베리

옮긴이  이 한음  발행처  까치글방  발행인  박종만

       

한 독특한, 친구가 되기 어려운 지인이 선물한 두툼한 책이었는데, 생물학에 문외한인 나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므로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알고자 하는 독자는 DNAi.org를 참고하기 바란다는 안내가 있었다. 

번역한 분의 실력 또한 돋보이는 책이다. 어느 한 군데 어색한 부분이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명확함이 느껴졌다.

생명의 비밀이 화학적이라는 사실을 창조설을 믿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유전자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 중 선두적인 역할을 하는 작가는 1962년 DNA 구조의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는 놀라운 과학자이면서 또한 인문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1999년, 이중나선 발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연구소내의 구상이었다.            

 

<...DNA는 오직 소수의 전문가들만 관심을 가진 낯선 분자에서 모든 이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기술의 중심으로 변신했다. 그런 변화와 더불어 현실적, 사회적, 윤리적 영향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등장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작가의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1인칭 시점으로 쓰고 있다.

 

<이중나선은 아름다운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평범했다. 생명체는 화학의 산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세포의 기본과정들을 밝혀냈고, 네 개의 글자로 된 DNA서열이 유전부호(genetic code)를 통해서 20 개의 글자로 된 단백질 서열로 번역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어서 1970년대에 이 새로운 과학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게 될 성과가 나왔다. DNA 를 조작하고 염기 쌍 서열을 읽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연을 지켜보는 방관자라는 비난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생물의 DNA를 직접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생명의 대본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의 발견은 적어도 인류의 눈에 보이는 수많은 신비한 개념들을 이해하고 고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분자생물학적 유사성은 모든 생물이 공통조상을 통해서 서로 관련이 있고, 유전체 비교를 통해서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드러난다. 단백질 분자들은 별개의 구조영역들이 모여서 이루워 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 구조영역은 긴 아미노산 사슬 중에서 특정한 작용을 하거나 특정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하는 부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진화는 이런 구조영역들을 서로 뒤섞어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 같다. 조합이 무작위로 이루어지므로 새로운 조합들은 대부분 쓸모가 없어 자연선택을 통해서 제거될 운명에 놓여 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유익한 조합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새로운 단백질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의 단백질 구조영역들 중 90%는 초파리와 선충의 단백질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에게만 있는 단백질이라도 실제로는 초파리에서 발견된 단백질들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생물 사이에 이런 근본적인 생화학적 유사성은 이른바 복구실험(rescue experment)을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난다. 복구실험은 한 종에서 특정한 단백질을 제거한 다음, 다른 종에서 상응하는 단백질을 가져와 넣었을 때 사라진 기능이 '복구'되는지 살펴보는 실험이다...>

이러한 예는 당뇨병 환자에게 소의 인슐린 투여, 유전자 변형을 통한 놀라운 실험 등에서 증명된다.

대학때 초파리 실험을 가르쳤던 교수가 생각난다. 그때는 초파리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유사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교수님께서 하라는 대로 실험을 했던 것 같다. 왜 이러한 실험을 해야하는지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많은 과목을 맛보기처럼 모두 다루어야 하는 교육대학의 시간배정상의 문제였다.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또한 단백질학(protemics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을 연구하는 학문)과 전사학(transcriptomics 유전자가 언제 어디에서 발현되는지, 즉 특정한 세포에서 어느 유전자가 활발하게 전사되는 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생겼다. 이는 생명의 신비를 알아가는 데 있어 열쇠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 어떻게 사람들은 신이 몇 일만에 흙으로 빚은 형상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창조했다는 성경 말씀을 믿는단 말인가!

차라리 환인과 웅녀의 단군신화를 믿는 편이 더 한국사람다운 일일게다. 심지어 기독교를 떠난지 오래된 내게 언제가는 돌아올 거라는 말들을 한다. 교회가 무슨 고향인가 돌아가게...

무지와 안일함에서 비롯된 선택일지라도 나는 모든 종교인들을 존중하고 싶다. 그들의 삶이 그 선택으로 편안할 수 있다면...

그러나 남에게 강요하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단연코 반대한다. 어리석음일 뿐이다.

 

이 책을 읽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이어 아프리카 여행을 한 달간 하고 와서 내 손등에 생긴 백반증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예상했던대로 지나치게 강한 자외선에 오랫동안 노출된 피부가 면역력, 즉 멜라닌 색소 형성의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긴팔 티셔츠는 입고 다녔지만 챙이 큰 모자도 쓰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뙤약볕을 장시간 나다니면서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세표에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자외선은 이중 나선에서 서로 나란히 놓여있는 티민 염기끼리 반응을 일으켜서 DNA 분자를 헝클어놓는다.  DNA 복제가 일어날 때 이 엉킨 부위에 엉뚱한 염기가 들어가곤 한다. 즉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 돌연변이가 어쩌다가 세포 성장 양상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나타난다면 암이 생길 수 있다. 피부세포가 만드는 색소인 멜라닌은 자외선 손상을 막아준다... 색소결핍증을 지닌 사람은 아프리카인들에게서 이 따금 나타나는데 (아마 새로운 돌연변이를 통해서일 것이다)...>

피부암으로 진행되지 않고 약간의 백반증으로 그친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피부가 좋은 것을 과신했던 나의 불찰이었다.

         

근육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마치 술 취한 이처럼 비틀거리는 증세에 이어 사망에 이르게 되는 헌팅턴 병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심리학 박사였던 밀턴 웩슬러는 자신의 유전자에도 가족력이 있음을 알게되자 유전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발병률이 높은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호수 연안의 가난한 마을에 머물며 탐사연구를 한다. 

헌팅턴 병에 걸린 아이를 안고있는 그녀의 흑백사진은 너무도 비장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육체의 덧없음이여! 

초파리를 통한 실험에서 나아가 이제 DNA 서열 분석만으로도 혈통 추적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행운은 용감한 자를 좋아하는 법이다... 헌팅턴 병 유전자가 인간 유전체의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으므로, 강력한 유전자 클로닝 기술을 이용해서 그 유전자 자체를 분리하는 일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작가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의 짚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듯한 끈질긴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청량음료 용기에 자그맣게 인쇄되어 있다는 '페닐알라닌 함유'라는 경고문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페닐알라닌은 단백질의 기본원료 중에 하나인데 '페닐케톤뇨증'이라는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은 이 아미노산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34년 노르웨이 한 가정의 4살, 7살 형제에게서 질병의 증상을 발견하게 되고 추적 끝에 22가계에서 34명을 찾아냄으로 이 유전병을 발견한다. 인공감미료가 든 청량음료 및 식품을 절대로 먹이지 않으면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1966년부터 신생아들에게 이 검사를 실시하게 됨으로 수많은 정신지체아를 구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임신 중 진단을 통해 수많은 장애아의 빈도를 낮출 수 있다. 임신을 하고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40 세 이전(출산을 마친 뒤에)에 난소를 제거하는 것도 난소암과 유방암 위험을 둘 다 줄인다. 유전 분석은 여성에게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을 가를 결정을 내릴 힘을 줄 수 있다...> 양성반응 진단을 받은 사람이라면 20∼40%의 확률을 물리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도 있겠다. 유명한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암 예방 수술처럼...

 

유전장애를 교정하는 방법으로 유전자 변경을 들 수 있는데, 이 유전자 요법은 환자의 체세포 내에 있는 유전자를 바꾸는 체세포 유전자 요법과 환자의 정자나 난자에 있는 유전자를 고쳐 해로운 돌연변이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 생식세포 요법이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모두 아직은 충분한 기술발전에 이르지 못함으로 더욱 연구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의학에는 항상 부작용이 생기고 유전 의학도 의도치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음을 작가는 시사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자기 자신을 분자 수준에서 더 잘 알게 될수록 내가 질병으로 치루어야 할 댓가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의 비밀은 1953년까지 비밀로 남아 있었다. 이중나선이 발견되고 뒤이어 유전자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야 우리는 과거에 신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능력이 언젠가는 우리 손에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의 근거를 마련했다. 지금 우리는 생명이 그저 화학반응들이 폭넓게 조화를 이루어 배열된 것임을 안다. 그 조화의 비밀도 화학적으로 우리 DNA에 새겨져 있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명령 집합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모두 신에게로 돌리는 단순한 사람들과는 달리 복잡한 인간의 신비함을 추적하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다.

인간 유전자 조작의 위험을 말하는 대중은 다른 이를 희생시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진화가 새겨놓은 본성을 인식한, 인간성의 한 면만을 본 결과이다. 작가는 자연선택 자체가 인간이 사회적인 종이며 자신의 행복과 함께 타인을 사랑하는 욕망도 있음을 시사한다.  우생학 강화가 저지른 참담한 역사를 기억하기에 유전자 개량에 경계하는 심리에 대해서도 말한다. 따라서 유전적 강화는 질병을 예방하는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책은 몰랐던 인간의 생물학적 지식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들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생식세포 유전자요법의 필요성에 대한 작가의 견해들을 인문학적 차원에서도 설득력 있게 피력하고 있다. 유전자요법이 낳을 과학적 부작용보다 더 심한, 종교의 정신적 부작용은 맹신에 의해 자행되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테러들이다. 종교적 위선의 탈을 쓴 무지한 소행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식인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이 책을 선물한 지인에게 감사한다.  

참고로 작가가 예로 든 책 중에 '멋진 신세계'(헉슬리 作)와 '사회생물학'(에드워드 윌슨)을 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