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자연, 과학 외

자연의 예술가들 (데이비드 로텐버그 作)

나무^^ 2018. 3. 16. 15:29

데이비드 로텐버그 지음 
궁리 출판.  정혜원, 이혜원 옮김 
   

이 책은 한 지인에게 선물받아 읽게 된 책이다. 그 지인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우여곡절로 소원해졌다. 몇 번 어울리면서 부족한 내가 매사에 완고(頑固)했던 지인의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을 번역한 두 사람은 그 지인의 사랑 가득한 사위이며 딸이다. 그 두 사람은 대학교 클래식 음악 동아리에서 인연을 맺었다고 들었다. 조금씩 재미있게 읽으며 책을 선물한 지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로텐버그는 클라리넷 연구자이자 재즈 음악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고래, 매미, 새들과 함께 즉흥연주를 벌이고 동물들의 노랫소리로 음악을 만들어서 ‘종간 음악가(interspecies musician)’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해 탐구하여 쓴 책으로『새는 왜 노래하는가?』(한국어판 출간), 『1,000마일의 노래』, 『곤충의 음악』등이 있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음악에서 시각예술로 관심을 확장하며 아름다움과 예술, 과학의 상호작용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언젠가  TV 다큐에서 나도 흥미롭게 보았던 정자새의 관한 이야기로 책의 첫부분이 시작된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제가 머물 둥지도 아닌 정자를 짓는 수컷 파란 정자새의 치열한 노력과 경쟁은 정말 대단했다.

그들 나름의 미적감각으로 암컷을 유혹해야만 선택받아 짝짓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윈의 거대한 구상에 따르면 정자새의 예술행위는 성선택의 결과여야 한다. 그러나 야생 상태의 동물이 예술행위를 할 수 있게끔 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자연에 있다면 왜 그런 예가 그렇게 드믄 것일까? 흔히 극단은 나쁜 예를 낳기 마련이라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에는 극단이라고 할만한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이한 것도 생겨날 수 있으며 때로는 불가능할 것만 은 일도 진짜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나쁜 예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별난 종도 이 진화하는 행성에 잠시나마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암시할 뿐 아니라, 예술적 기질은 즐겁고자 하는 열망,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진화의 욕망안에 본디부터 뿌리 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20 세기 생물학은 기호보다는 기능에, 성선택보다는 자연선택에 무게를 두었다...'   

모든 생물이 정자새처럼 성선택을 위한 미적 노력을 그렇게 하지는 않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자연은 왜 아름다운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기원은 무엇일까?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선천적으로 심미안을 갖고 있는 것일까? 자연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인간이 예술을 창조하고 과학을 하는 원천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서 그는 아이리스 머독의 말을 인용한다.

'예술의 무의미함은 시합의 무의미함과는 다른 것이다. 예술의 무의미함은 인생 자체의 무의미함과 같은 것이다. 예술의 형식은

우주의 자족적인 무목적성의 모방인 것이다... 최고의 예술은 절대적으로 무작위하게 존재하는 세상의 세세한 부분들이 통합과

형식을 일구겠다는 의식 속에 함께 섞이는 것이다...'

 

<19세기 미학계의 주요관심사는 자연이 어떻게,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었다... 존 러스킨은 목가적 풍경의 장대함을 정확히 묘사하는데 주력한 방대한 양의 저작을 남겼다. 그는 예술 비평 외에도 길가의 핀 들꽃의 아름다움에 관한 400여분량의 글을『페르세포네』라는 책으로 남기기도 했다. 자연이 우리의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훌륭한 인간의 예술작품 만큼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러스킨의 생각이었다.  

문화적 의미에서 봤을 때 러스킨은 1세대 생태학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러스킨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꽃은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 꽃이 지금껏 계속 살아 전해지는 것은 하늘이 있는 한 그 꽃의 아름다움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어떻게 400여 쪽에 달하는 지면을 꽃봉오리와 이파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만으로 채울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답은 세심한 관찰과 사랑이었다... >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보는 관찰자에 따라서 하나에서 수백, 아니 수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 만물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말처럼... 나역시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수많은 사물, 인간들에 대해서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그 이면의 아름다움까지 사색할 수 있는 혜안이 생겨간다.  

 

2장 <가장 매혹적인 자만이 살아남는다.>에서 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 연구한, 현미경으로나 관찰이 가능한 바다생물인 방사충들은 마치 눈꽃송이들처럼 아름답다. 그는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펜화로 표현하여 두 권에 그림책으로 만들어 예술과 과학의 가교를 놓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로 최초의 자연사 책이으로 널리 알려진 '자연의 예술적 형태'(1904년)가 있다.

또 다윈의 '종의 기원'이 40년 동안 팔린 것보다 더 많은 부수가 팔렸다는 베스트셀러 '우주의 수수께끼'(1899년), 그 외에 '생명의 놀라움'(1904년), '창조의 자연사'(1868년) 등이 있다. 그러나 그의 진화론적 우생학에는 무리한 점도 있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뵐세'의 '자연의 애정생활'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인용한 문구이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옛날과는 다른 오늘날 같은 시대에는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저기 저 아름다운 나비를 따라가 보자. 얼마나 위풍당당하게 백리향을 향해 내려앉는가. 허공을 맴도는 이 나비보다 더 하찮은 동물들에서, 우리 인간, 현대적 지식을 가진 우리 인간이 생겨났다. 인간이란 종은 보다 원시적 존재로부터 나왔으니, 저 타오르는 태양 아래 말없이 가만히 누워 있는 백리향보다도 더 불완전한 존재로부터 나왔다. '우리 인간'은 지금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없는 기괴한 존재였다. 그들은 오늘은 파란 파도가 거품이 되어 부서지는 단단한 암벽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부드러운 진흙으로 덮혀있던 해변으로부터 기어 나왔다.

우리이지만 또 우리가 아니기도 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우리를 지난 억겁의 세월동안 연결시켜준 것은 사랑이라는, 번식이라는, 탄생과 생성의 영원한 과정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힘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과 동물의 성행위와 정신 나간 듯 보이는 구애 동작의 열정적인 묘사로 가득 찬 뵐세의 책은 마치 미성년자 시청 불가 등급을 받은 데이비든 애튼버러의 BBC 프로그램 같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 ;정복자 복두꺼비'를 통해... '


'유전, 신진대사, 고등 생물의 세포에 나타나는 역할 분화 등, 한 마디로 우리가 이야기해온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대부분의 것에서 당신도 분명히 생명체의 번식이라는 연속 과정 중에 당신과 다른 생명체들을 이어주는 리드미컬한 연결고리로서 발생한 일들을 겪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전부 일종의 거대한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앙리 베르그송'의 말을 인용하면서 흔히 '뉴에이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더욱 경이롭게 만들어 줄 과학을 염원하며 더 많은 정보를 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톰프슨'의 시학에 관한 의견도 인용한다. '20 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은 자연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는 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마침내 예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필요에서 해방된 까닭이다. 이제 예술은 직접적으로, 시각적으로 사물의 근본에 있는 패턴과 모양을, 그러나까 꼭 추상적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형식이라는 의미로 자연 그 자체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참으로 다양한 창조적인 예술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폴록은 사회주의 진영의 사실주의 화가 '토마스 하트 벤턴'의 꼼꼼한 지도를 받은 화가이다. 벤턴의 미술학도들에게 지침이 것은 1930년대 대서양 반대편에서 진행된 바우하우스의 엄격한 가르침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벤턴은 위장술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할 기회가 있었다.

 '군사적 용도의 위장술은 진화에 대한 과학 이론과 추상예술의 유용성이 다각도로 실험되는 분야이다. 아무런 형식도 없어 보이는 풀록의 그림은 사실 형식 자체에 대한 비밀암호이다. 그리고 이 암호는 헤켈과 톰프슨이 생명체가 지닌 엄청나게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깊이 조사함으로 유추해낸 바로 그 패턴과 모양에 기초하고 있다...'

화가 '폴록'의 전성기에서 말기까지를 그린 영화 '폴록'을 보면 그의 그림이 우연한 미적 발견에 의해 발전해 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스승인 벤턴의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감상자가 그림에서 재빨리 눈을 돌리지 않고 그림이 무엇을 표현했는지 알아내겠다고 결심하고,  알아낸 후에야 비로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감상자의 눈은 필히 즐거움과 놀라움을 경험해야 한다. 예술이라면 시각적으로 너무 뻔해서는 안 된다...'

그림을 조금이라도 그려보니 철저한 구상의 훈련 단계가 성숙된 후에야 비로서 아름다운 추상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그의 그림이 자연의 미학적 측면에 있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창조로 일컬어지지만 그림에 대해 모르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모호하고 추상적일 뿐이다. 사방에서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그림이라니!

화가 '몬드리안'이 폴록을 막강한 예술 후원자'페기 구겐하임에게 지원하라고 조언한 일 등 미술사에 중요한 작가들의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소개된다.

 

3장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수컷과 암컷, 그들의 예술세계>에서는 '뒤샹'에 작품 '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도 예전에 책에서 그의 작품 사진을 대하고 절대로 잊혀지지 않았다. 작가의 조롱하는 듯 기발한 아이디어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예술작품  자체보다 의미를 토론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행위를 더 중시하는 풍조의 시초가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적 경험에 뒤따르는 대화는 이제 그 경험 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다. 마침내 에술이 철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실용적인 문제를 철학으로 바꾸었던 고대 사상가들을 떠오르게 한다. 보다 깊이 고찰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지 훌륭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기? 이런 질문은 단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예술에 어떻게 반응하고 예술을 어떻게 애호할 것인가?

단토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 단토는 예술 평론가이다.


저자는 '존 케이지'의 작품 '4분 33초'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침묵의 4분 33초가 과연 음악작품일 수 있을까 반문하게 하지만 뒤샹의 '샘'처럼, 그의 다른 작품을 모두 제쳐놓고 그 작품만 기억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프럼은 단토의 최근저서 『아름다움의 남용』으로부터 철학적 의미에서 예술사의 종말은 예술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는 해방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 해방은 아름다움을 자신의 적당한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예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프롬'의 말을 예로 들면서 깃털의 진화방식은 성선택에서 독특한 의사소통 기질이 자신이 아닌 다른 개체의 뇌 안에 있음을 지적

한다. 그것은 암컷이 선택하는 결정이며 그 기능적 표적은 기쁨이라는 것이다. '기쁨'! ㅎ

기쁨을 느끼게 하는 대신 불쾌함을 느끼게 하면 성추행이 되는거다.

저자는 '세상은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사랑받는다.' 고 말한다. 물론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기 때문에 의식이 진화할수록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이 생긴다.


'클레'의『조형적 사고』『무한한 자연사』책을 들어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예술의 목표를 들려준다.

'클레는 형식의 의미를 포착하고자 하는 갈망을 자연의 혼잡함에 대한 진정한 감상과 연계시켰다. 나는 클레가 헤켈과 톰프슨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하지만, 뵐세의 거친 기이성 역시 높이 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계의 정력적인 혼잡함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클레의 연구서는 필독서이다...' 저자는 예술에 관한 많은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고 인용하여 미학적 지식을 넓혀준다.

 

E.O.윌슨은 최고의 예술이 생물학적 근본에 가장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우리가 유래한 곳과 다시금 즐겁게 맞닿게 해주는 동물 세계에서 유일한 자기 성찰이라는 우리의 감각을 가능하게끔 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가치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얼마만큼 충실한지, 그러니까 우리의 본질과 우리가 자연에서 종으로 점하고 있는 위치를 밝혀 보이는 능력으로 측정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연, 과학,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수많은 과학자와 예술가, 자연생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예술은 철학과는 다르다. 예술은 매우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한숨 짓고 눈물 흘리며 미소 띠게 만들어야 한다...우리가 그것을 사랑하거나 혹은 혐오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술이 그 어떤 강한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며 다른 어떤 방식에 앞서 우리를 먼저 미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그러므로 예술은 수백만 년에 걸쳐 아름다움을 찬양해온 생명체의 한 측면과 그 진화에 대한 연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는 다윈이 '성선택'이라고 부른 것을 미적 선택, 혹은 어쩌면 '예술적 선택'이나 아름다움의 선택'이라고 부르고 싶다...'  

 

'생명은 그것이 살아있고 버터내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는 저자가 소개하는 나바호족의 노래가사이다.

 

 내 앞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뒤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위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내 밑의 아름다움, 나는 그곳을 거니네

 아름다움의 자취를 쫒아, 나는 그곳을 거니네

 아름다움과 함께 영원히, 온통 나는 둘러 싸이네.

 

 내가  나이가 들어도, 나는 그곳을 거니네

 여전히 움직이면서,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나는 여전히 아름다움의 자취 위를 맴돌리니

 그리고 다시 살리라, 나는 그곳을 거니네

 나의 노랫말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향하네.   

 

제법 두툼한 이 책은 예술의 아름다움에 관한 많은 지식을 알려주고 확장시켜주는 좋은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뵐세의 『자연의 애정생활』과 웬들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 또 이 책에 소개된 화가 클레의 『조형적 사고』,『무한한 자연사』, 몬드리안의 『자연적 현실과 인공적 현실: 3인 대화 형식의 에세이』를 사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