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자연, 과학 외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作)

나무^^ 2005. 10. 3. 20:19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글· 사진    호시노 미치오.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출판

 

 

여행을 즐기는 내게 호기심을 일으킨 머나먼 북극의 나라, 알래스카!

이 책의 제목과 광활한 자연을 담은 사진에 끌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우리 나라를 두루 여행하고, 또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인간의 삶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 힘으로는 가기 어려울 신비한 세상을 이 책을 통해 마음으로나마 즐겁게 여행하였다. 언젠가는 가보기를 희망하면서...

 

이제는 세상을 떠난 매력적인 작가의 마음과 눈길을 따라 마치 그의 곁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사진과 글을 대하면서 상상의 세계를 눈에 보는 듯 펼칠 수 있었다. 편리하고 안락함을 누릴 수있는 문명의 도시를 떠나 신비하고 드넓은 세계에 빠져들어 이십여년을 보낸 작가는 담담한 어조로 그곳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화려할 만큼 아름답고 강인한 흡인력을 느끼게 한다.

 

평생 사냥꾼으로 살아온 데르수가 숲의 신 암바(호랑이)를 쏘아 상처를 입히고 두려움에 떤다. 그 이유는,

<만약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 약속이라는 것이 있다면, 자연 속에서 살아온 인간은 그 약속의 의미를 알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잊어버린, 사냥하는 생물과 사냥 당하는 생물 사이에 존재하는 약속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광활한 설원을 온통 뒤덮는 카리부떼의 이동모습, 자연의 일부로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 인디언들의 진실한 삶 등 외로움에 의연한 생존을 보여주는 내용들은 감동적이다. 짐이 아들 형제에게 사냥한 카리부를 함께 잡는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지만 한 생명을 끝장내고 손으로 직접 살점을 만지면서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 고기를 입안에 넣음으로써 그 카리부의 생명을 자기가 잇게 된다는 것.> 즉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게 하는 삶이다. 

어느 곳에서고 자연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속에 원래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의 자태 또한 지극히 아름답다.  

 

                    

 

                    

   

                     

 

                     

 

                    

 

                    

 

문명 속에 길들여지는 인간은 지나친 이기심으로 추하게 변질되며 자신을 생존케 하는 자연을 훼손시킨다.

토지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는 원주민들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원주민이 살아올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고가 자연의 불확실한 순환주기에 대하여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라는 사유재산과 땅에 그려진 경계선은 그들의 유연한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카리부가 광대한 땅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간 개념을 가진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국립공원이 되어 경계선이 그어진 땅에서 사는 원주민들의 삶은 예전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미국의 동화정책이라고는 해도, 태곳적부터 그들의 삶을 엮어주고 맺어주었던 보이지 않는 끈은 가차없이 잘려 나갔다. 그 보이지 않는 끈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문명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소유영역을 넓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유연성 대신에 욕심을 키워간다.

자연과 문명은 대립적일 수 있다. 문명의 편리함으로 우리는 위험을 담보로 해야하는 낯선 세계를 편안히 안방에 앉아 인식으로 여행할 수있는 기회를 누린다. 그리고 언젠가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르게 할 개발(開發)에 너그럽게 되는 것이다.

<알래스카 내륙지역에 수만 년간 살아온 아사바스칸 인디언. 그들의 문화는 피라미드나 신전 같은 역사적 유산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지만... 태곳적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다> 과연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자연법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새틀라이트 무스' 이야기는 약한자까지도 포용하는 넉넉함을 미소로 느끼게 한다. 따라서 자연은 (일명 神, 또는 道라고 불리는) 어디서나, 무슨일이든지 모두 "때'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플랙 스톱> 할 수 있는 대평원의 열차는 그들의 흩어져 사는 삶의 상황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왜 자연으로 눈길을 돌리는 걸까...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의 생명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다다르게 되는 종착점은 자기 생명, 살아있다는 것의 신비일 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그것은 상상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요를 가져다주고,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게속 가르쳐줄 것이다.>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서 폭과 깊이를 띠게 된다.' 라는 작가의 말에 동감한다.

 

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곳을 잊지 않고 또렷이 기억나게 해준다.

아주 어릴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얼음집의 에스키모인, 일년내내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 궁금했다. 그러나 극지방에도 툰드라지역이 있어 짧지만 얼음이 녹고 초목이 아름다운 봄·가을이 있었다. 석유개발등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그곳에서 생명을 다한 작가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남겼다.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 만든 문화유물은 파괴된다해도 그 흩어진 작은 조각을 통해 복원시킬 수있지만 자연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보았던 것은 사진이 아니라 자연인의 삶이였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그래서 그의 삶은 돋보인다.   

 

 

                    

 

 

                    

 

  * 2005. 12. 28. 동아일보에 실린 오로라 사진. 정말 멋지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기막힐까!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작가의 아름다운 영혼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영하 60도까지 내려간다는 이곳을 달리다 추위로 얼어죽어도 좋을 것 같다.

  칠흑같은 밤하늘 말할 수없이 아름다울 오로라가 보고싶다.  

  25일 미국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밤하늘을 수놓은 오로라. 태양표면을 폭발하면서 우주공간으로 날아온 전기입자가 지구자기장이 있는 극지방 부근의 고도 100-500킬로미터 상공에서 대기 중 산소분자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방전 현상.이 사진은 30초 노출로 찍은 것이라고 한다.

   (페어뱅크스 AP연합뉴스) 

 

PS : 이 책을 18년이 지나 다시 한 번 읽었다. 세상을 오래 살다보면 희망이 기적처럼 이루어지기도 한다. 드디어 뜻하지 않았던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2023. 6.17.~23) 캐나다 오빠에게 갔다가 벤쿠버에서 떠나게 될 여행이다. 물론 자유여행이 아니여서 생각 만큼 자세히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상했던 그 땅을 밟아본다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