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 子
# 김학주 譯解의 '老子'(명문당) 요약 #
<해제 (解題)>
1. 노자의 현대적 의의
노자는 도가(道家)의 창시자로 그의 책을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북방과 남방은 기후에 따른 많은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는데 이는 남방의 부드러움이 북방의 억세고 현실적인 기질과는 다름을 보여준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써 가르치고 무도(無道)함에 대하여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고 무기와 갑옷위에 넘어져 죽게 되는 한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북방의 강함인데, 군자는 이와 같이 처신한다' 라고 말한다. 유가사상이 현실적이라면 도가사상은 초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無나 自然은 "道'의 현상이고 이것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상대적 가치관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연의 한 구성요소로서의 인간 본연으로의 회복, 또는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회복을 뜻한다.
현실적이고 형식적인 유교가 막바지에 이르면 초현실적인 도가사상이 끼어들어 그 지나침을 막아준 것이다. 도가사상의 영향으로 예술이나 문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구할 여유를 지님으로 중국의 예술 비평가들이 즐겨 사용한 질박(質樸)이나 고박(古樸)의 표현이 그 일면일 것이다.
개인생활에 있어 올바로 살고 큰 일을 해보려고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될 때 도가사상은 그 현실을 초극(招克)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속에 묻혀 유유히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동양사상의 소극적인 일면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릇된 판단으로 인한 불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노자의 생애
사마천(BC 145- BC 86?) 신한열전에 보이는 노자의 전기에 의하면,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고 자는 백양(伯陽), 시(諡)를 담은 담(聃)이라 하였으며 주나라 수장실의 사(史)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외에도 여러 설(說)이 있다.
일찍이 공자가 주나라로 가서 노자에게 예(禮)를 물으려 하니 노자는 '그대는 교기(驕氣), 다욕(多欲), 태색(態色)과 음지(淫志)를 버리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노자의 생애에는 많은 의문이 있고 그 연대 또한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는 노자나 장자의 사상이 무위(無爲), 무아(無我)를 크게 내세우고 있음으로 결국 무명(無名)으로 통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3. 노자의 내용
현존하는 노자는 왕필본이나 하상공본 모두 크게는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은 사기 열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상편 37장, 하편 44장 모두 81장 이다. 후세로 전해지면서 도가들에 의해 여러번 새로운 내용들이 보태지거나 체재가 바뀌어졌다고 보는 것은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쓴 것이라기보다는 도가의 금언을 주워 모아놓은 듯 보여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노자는 장자와 함께 가장 중요한 도가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4. 노자의 전래와 그 연구
노자란 책은 이미 전국시대부터 상당히 세상에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유가와 묵가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면 세상을 올바로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곧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비하여 도가는 일체의 사람들의 의식적인 작위를 부정하고 물러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던 학파이므로 유가나 묵가처럼 세상에 두드러질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장자를 보면 여러 군데에 노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음으로 장자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노자의 사상을 부연 발전시킨 것이다. 한나라 초기 경제시대에 도학은 성하여 노자의 권위는 높아졌을 것이고 후한의 정치가 어지러워지면서 도학을 좋아하는 경향은 지식인들간에 더욱 심해져 그 학문이 유행하였다.
중국사회는 겉으로는 유교가 그 윤리를 바탕이 되어왔지만 사회생활 깊숙히 도가 사상이 크게 번졌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 생략)
5. 노자의 사상
도가사상 형성의 시대적 배경은 춘추시대로부터 전국시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이 때는 각 지방 제후들의 나라가 서로 다투어 무수히 나라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를 다스려보기 위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유파가 생겼는데 이들을 제자백가라고 칭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상가들이 나와 학문 발전에 기여한 것은 개인의 공리적인 이유와 함께 임금이나 권세가들이 각기 어진 사람을 끌어들여 세력을 기르려 했기 때문이다.
노자를 비롯한 이 시대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주나라 봉건제도의 붕괴와 정치사회상의 혼란 및 이들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노자의 사상은 도(道)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의 학파를 도가(道家), 그의 학문을 도학(道學)이라 한다. 이는 유가에서 말하는, 사람이 올바로 살아나가고 세상을 옳게 다스릴 수 있는 도리와는 다르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우주와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또 우주만물이 존재하고 변화하는 섭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지각으로는 인지할 수도 없고 사람의 지혜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어떤 물건이 혼돈(渾沌)히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의 생성보다도 앞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형체도 없지만 홀로 존재하며 바뀌어지지 않고 모든 것에 두루 행해지면서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모체(母體)라 할만한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라고 이름하였고 억지로 대(大)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라고 설명한다.
이 도처럼 아무런 작위도 가하지 않고 되어지는 것을 '무위(無爲)'라고 하고 그러한 상태를 '자연(自然)'이라 부른다. 이것이 도가의 사상이다. 도의 작용함은 만물의 변화에 있어 중시해야 할 것이 강한 것이 아닌 약한 것이라는 의미다.
노자의 가치관은 원칙적으로 모든 상대적 분별에서 오는 가치 판단을 부정한다. 판단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만물의 변화과정 중에 드러나는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지 사물의 참된 성질이나 가치가 될 수 없다. 모든 사물의 상대적인 것들은 아울러 함께 존재하고 서로 상대방에 힘입어 그 존재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자는 소극적인 편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무(無)'를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 주장하는 것이다.
노자의 윤리관은 사람의 존재도 우주 속 자연의 한 가지 현상으로 파악하여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도의 변화로 볼 때 '자기' 또는 '아집'을 버릴 것을 주장한다. 완전한 무위(無爲)의 상태란 자기나 아집이 없는, 자기의 의식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자기의 욕망도 없고 자기의 마음도 없고 자기의 호오(好惡)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노자의 정치관은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의 마음은 텅 비게 하되 배는 채워주며 그들의 뜻은 약하게 만들되 근골은 강하게 해주고 언제나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 무욕하게 만든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이는 본능에 따라 사념없이 튼튼하고 자연스럽게 살게 해 준다는, 어떤 지각에 의한 작위나 욕구의 추구가 없는 생활을 뜻한다. 이것을 유가의 정치관과 비교해볼 때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의 이상적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6. 노자 사상의 발전
춘추전국시대에 발생한 노자사상은 전국시대에 이르러 장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와 그의 사상을 계승발전 시킴으로써 도가(道家)가 형성되었고 전국시대 말엽에 이르러 유가사상 다음 가는 유력하고 보편적인 학파로 발전했다.
그들은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상태이며 바로 도의 작용의 표현이며 완전하고도 전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힘이란 도의 변화 원리만 어길 수 있을 뿐이지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몸가짐이나 일에 있어 언제나 자연의 방법에 따를 것을 주장한다. 이는 일체의 인위적인 행동을 배격하고 무위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대에 이르러 노자의 영향 아래 도가와는 전혀 다른 도교(道敎)가 발생한다. 도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중국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속신앙이다. 여러 가지 미신적 술수들이 모두 도교의 영역으로 스며들게 된다.
둘째, 신선(神仙)사상과 방사(方士)이다.
제나라 위왕과 선왕, 연나라 소왕, 진시황 등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려 한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임금으로 하여금 신선을 구하도록 함으로 자신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노자도덕경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노자를 교조로 받들어 모신다. 그리하여 도교는 가장 강대한 종교의 하나로 발전하고 성행하였다. 그러나 도가와 도교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들은 다같이 노자를 받들기는 하지만 도교에서는 노자를 신선으로 알기만 했지 그의 심오한 철학을 중히 여기지는 않는다. 따라서 후세까지도 도교는 미신적인 일종의 민간신앙이라 할 수 있고, 도가는 중국사상의 한 유파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을 가르킨다는 구별은 변함없이 지속된다.
7. 노자사상의 영향
* 형이상학(形而上學)의 발전
노자는 우주의 근원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만물의 생성과 자연의 섭리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서 그의 학문을 출발시키고 있다. 중용, 대학, 역경 등에 나타난 헤설을 보면 유학이 도가의 형이상학적 학문방법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후한 말엽 유행한 청담(淸談)은 노자, 장자, 도가화 된 역경을 중시했는데 불교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이후 300년 동안 성행한 이 청담의 학자들은 도가의 한 유파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노자의 학문은 중국 철학 형이사상의 대종(大宗)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정치에의 영향
한나라 초기에 황제나 황후들이 도학을 황노지학(黃老之學)으로 실제 정치에 응용함으로 임금과 귀족, 대신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 중국 정치가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강력한 시책을 통해 통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롭고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여 다스리려는 것이다. 그 결과 전자는 짧은 동안 나라를 다스렸던 이들이고 대부분은 후자를 따랐다.
송나라 왕안석이 신법을 시행하려 했을 때 반대하던 사마광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제가 옛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할 때 여러 가지 안 읽은 책이 거의 없는데, 그 중에서 특히 맹자와 노자의 말을 좋아했습니다...
노자 曰, 천하는 신묘한 기구이니 인위로써 다스릴 수 없다. 인위로 다스리는 자는 그것을 피폐시키고, 고집하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또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변화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올바르게 되며, 내가 하는 일이 없으면 백성들은 스스로 부해지고, 내가 무욕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소박해진다. 또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정치를 하심에 조상들의 옛 법을 모두 바꾸어... 하나도 옛것을 따르거나 올바른 것을 지키는 게 없습니다.' (司馬光與王介甫書)
유학자인 사마광의 정치이론 속에도 노자의 사상이 깊이 스며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두 가지 정반대되는 정치방법의 기본 이론이 모두 노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 민간에의 영향
노자는 일반적인, 상대적인 가치판단을 무의미한 것으로 규정하고 모든 인위적인 행동이나 성취의 가치를 부정함으로 사람들이 뜻을 잃었거나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귀의처가 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는 도교는 중국사회의 심층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사람들은 노자에게서 거칠게 먹고 살면서도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배웠고 인간사회에서 뜻을 못 얻으면 물러나 자연 속에서 깨끗한 삶을 누리거나 도교적인 초인적 세계를 추구하는 여지를 얻을 수 있었다. 불행에 처했을 때 그 불행이 오래 가지 않음을 믿게 했고 약한 처지에 있더라도 실은 그것이 강한 것임을 믿게 하였다. 결국 불리하면 물러섬으로 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철학을 노자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중국 각 지방에는 도사와 도관, 그 외에도 점술, 성상, 풍수 등을 업으로 하는 술사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도교의 한 유파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노자의 사상은 중국인의 성격 형성은 물론 풍속, 습관에도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 문학과 예술에의 영향
모든 분야의 예술도 형식적으로는 유가사상이 그 이론의 바탕을 이루어 왔다. 일찍부터 시(詩)가 발달했던 것도 시를 통해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정치의 자료로 삼고, 시로써 백성들의 성정을 착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주려는 유가의 공용적(功用適)인 사상 때문이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가사로써 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허구성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나 희곡이 뒤늦게 발달하였는데 역시 백성들을 올바로 교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유가의 공용주의는 순수예술의 존재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예술이 생명을 잃어가면 언제나 도가사상이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이러한 생기는 도가의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도가에서는 모든 인위(人爲)를 부정한다. 따라서 예술에 있어서 인위적인 형식이나 공용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술이란 유가의 공용의식이나 단순한 미추(美醜)의 관념을 넘어선 참되고 순수한 자기표현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학이나 미술평론가들이 흔히 '고졸'(古拙)이니 '졸박'(拙朴),또는 '생졸'(生拙) 같은 말을 숭상하고 있는데, 이는 도가의 '자연'과 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예술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기도 하였지만 문학에 있어서의 자연시나 그림에 있어서의 산수화를 발달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속에 어울리는 인간으로서는 유유하고도 한적한 몸가짐이 숭상되었다.
초현실적인 도가의 경향은 많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명리(名利)를 넘어서서 예술창작에만 몰두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초현실적인 경향은 사람들에게 일체의 명리를 버리게까지는 할 수없지만 세상이나 자연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여유를 주었다.
老子 上(편) 道 經 (도경)
章 一 體 道 (체 도) : 도의 본체를 밝힌다는 뜻. 체를 도의 묘용(妙用)을 체득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無名 天地之始 . 有名 萬物之母 . 常無 欲觀其妙 常有 欲觀其?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상무 욕관기묘 상유 욕관기교)
도라고 알 수 있는 도라면 그것은 절대 불변하는 도는 아니다. 명칭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명칭이라면 그것은 절대 불변하는 명칭은 아니다.
명칭이 없는 것은 천지가 시작되던 상태이며, 명칭이 있는 것은 만물의 모체이다. 언제나 무는 도의 묘용을 드러내 보이려 하고 언제나 유는 만물의 차별상을 드러내 보이려 한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 同 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 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두 가지는 다같이 도에서 나왔으나 명칭이 다른 것이다. 이들이 다같이 나올 수 있었던 묘용을 일컬어 현(玄)이라고 한다. 이 현이 다시 현묘하게 작용하는 것이 여러가지 미묘한 현상이 드러나게 되는 문(門)인 것이다.
(해설) 도의 본체란 사람들이 인지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도의 묘한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장은 해석상 가장 말썽이 많은 부분이다. 노자 철학의 바탕이 되는 부분이라 무난한 해석이 되기 위해 힘썼다. 도와 함께 무(無)의 강조에 주의를 바란다.
章 二 養 身 (양 신) : 세상의 상식적인 가치관이 그릇된 것임을 지적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지닌 상대적 가치관을 초월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몸을 보양하는 길이라는 뜻.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之善之爲善 斯不善已 .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형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은 추한 것일 수도 있다.
모두가 선하게 보이는 것을 선한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본시 유와 무는 서로를 낳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도 서로를 이룩케 한 것이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 그런 형태를 만들어 준 것이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서로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며, 음악과 소리도 서로의 조화로써 그렇게 만든 것이며, 앞과 뒤도 서로 위치에 따라 그렇게 보이도록 해 준 것이다.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그래서 성인은 무위하게 일에 처신하며,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만물을 생성시키고 말하지 않으며, 생겨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행동을 하더라도 의지하는 데가 없으며 공로를 이룩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공로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공로가 그에게서 떠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해설) 사람들이 아름답다, 추하다, 좋다, 나쁘다, 크다, 작다, 길다, 짧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절대적 근거가 없는그릇된 평가기준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평가는 모두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상대적인 평가에 얽매이는 것이 불행의 근원이며 따라서 올바르게 살려면 그러한 평가개념을 초월하여 무위(無爲)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런 작위도 설명도 없는 삶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생활방식일 뿐 아니라, 이 세계나 자연을 위해서도 가장 위대한 공로를 끼치는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적 가치관의 초극(超克)은 장자에서 더 구체화되고 강조된다.
章 三 安 民 (안 민) : 무위로써 세상을 편안히 다스리는 방법을 해설함.
不尙賢 使民不爭 .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 是以聖人之治 虛斯心 實斯腹 弱斯志 强斯骨 .
(불상현 사민불쟁 불귀난득지화 사민 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난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和無欲 . 使夫知者 不敢爲也 . 爲無爲 則無不治 .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 불감위야 위무위 즉무불치)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된다.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을 안 하게 된다.
욕심낼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 정치함에 있어서는 그들의 마음은 텅 비게 하되 그들의 배는 채워주며 그들의 뜻은 약하게 하되 그들의 뼈는 강하게 해준다. 언제나 백성들로 하여금 아는 것도 없고 욕망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작위에 의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위를 실천하면 곧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해설) '무위(無爲)'란 자기 개인의 삶을 위하여도 최선의 방법이지만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무위를 위해서는 모든 상대적인 가치 평가나 지혜와 욕망 같은 것을 초월하여야만 한다. 다스리는 사람이나 백성들 모두가 무위한 세상이야말로 가장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 유가에서는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한 덕치주의를 내세운다. 개인의 훌륭한 덕을 자기 집안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나라 온 세상에
펴나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법이 다른 듯 하지만 이 덕치주의도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면 도가나 똑같이 무위이치(無爲而治)에 이르는 수 밖에 없다. 궁극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이상이 하나로 합치되는 것이 재미있다.
章 四 無 源 (무 원) : 도는 만물의 근원이지만 도 그 자체는 근원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도의 본질을 논하며 무원이라 이름 붙임.
道沖 而用之 或不盈 . 淵兮 似萬物之宗 .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 湛兮似常存 . 吾不知誰子 象帝之宗 .
(도충 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잠혜사상존 오불지수자 상제지선)
도(道)는 텅 비어 있지만 거기에 작용을 가해도 절대로 차지 않는다. 심원(深遠)하기가 만물의 조종(祖宗)인 듯 하다. 만물 중에 예리한 것을 꺾고 분규(紛糾)를 해결하며, 그 중 빛나는 것을 조화시키고 그 중의 먼지 같은 것과 화동(和同)한다. 맑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것만 같은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보다도 앞서부터 있었던 것 같다.
(해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빚을 숨기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을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말하고 있는데, 실은 노자의 4장, 56장에서 나온 말이다.
章 五 虛 容 (허 용) : 텅 빈듯한 도의 작용을 논하고 있다. 허(墟)는 무(貿)와 관계 있음.
天地不仁 以萬物爲추狗 . 聖人不仁 以百姓爲추狗 .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 多言數窮 不加守中 .
(천지불이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이 이백성위추구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불굴 다언수궁 불여수중)
하늘과 땅은 인(仁)하지 않으니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버려둔다. 성인도 인(仁)하지 않으니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버려둔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 같다고나 할까. 텅비었으면서도 다하는 일 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더욱 (바람이) 나온다.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중간의 텅 빔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해설) 하늘과 땅은 만물이 되어가는대로 버려둔다. 세상을 올바로 다스리는 성인도 백성들을 간섭없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버려둔다. 이것은 텅 비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도를 올바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무위(無爲)'해야지 어떤 작위(作爲)를 하다가는 결국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章 六 成 象 (성 상) : 만물의 생성에 있어 도의 무궁하고 무한한 작용을 묘사함. 노자는 낮은 것, 물, 텅 빈 것, 골짜기 따위를 높이 평가한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 綿綿若存 用之不動 .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골짜기의 신(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묘(玄妙)한 암컷이라 한다. 현묘한 암컷의 문(門)을 하늘과 땅이 생겨난 근본이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겨우 존속하는 듯하지만 그것의 작용은 그치지 않는다.
(해설) 만물을 생성하여 존속하게 하는 도의 오묘한 작용을 형용한 장(章)이다. 골짜기는 여성에 비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의 작용을 여성에 비유하고 있음은 무엇보다 재미있는 착상인 듯하다. 생산작용을 여성에게 비유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공통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노자는 약한 것, 여자, 낮은 것을 도의 근원으로 내세우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列子>에는 이 장이 <黃帝書>의 말로써 인용되고 있다.
章 七 韜 光 (도 광) : 빛을 싸서 감춘다는 뜻. 빛이란 자아나 작위를 가리킨다고 본다. 성인은 자연을 따를 뿐 자아를 드러내지 않는다.
天長地久 .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 故能長久 . 是以聖人後其身 而身先 外其身 而身存 .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자생 고능장구 시이성인후기신 이신선 외기신 이신존 비이기무사사 고능성기사)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영존(永存)한다. 그 까닭은 그들 스스로 생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도 그 자신을 뒤로 미루지만 자신이 앞서게 되며, 그 자신을 도외시하지만 자신이 생존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아(私我)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 때문에 오히려 그의 사아도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해설) 하늘과 땅, 자연은 자아 의식이 없다. 사람도 그처럼 무아(無我)의 경지에 살아갈 줄 알아야만 자연에 합치되는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무아나 무사(無私)는 바로 무위로 통하는 길인 것이다.
章 八 易 性 (이 성) : 평이한 성품의 뜻. 남과 알력이 없는 평이한 성품을 갖는 게 올바른 길임을 논(論)하며 그것을 물에 비유함.
上善若水 . 水善 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 故機於道 . 居善地 心善淵 與善人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 夫唯不爭 故無尤 .
(상선약수 수선 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
최상의 선이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의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있지만 다투지 아니하며,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위치에 처신한다. 그러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처신은 땅과 같이 훌륭해야 하고, 마음은 심연과 같이 훌륭해야 하며, 남에게 줄 때에는 인애(仁愛)로써 잘 해야 하고, 말은 신의(信義)가 있어 훌륭해야 하며, 정치는 잘 다스려지게 해야 하고, 일은 능력을 잘 발휘해야 하며, 행동은 때에 알맞아 훌륭해야 한다. 오직 다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무 탈도 없게 되는 것이다.
(해설) 사람은 몸가짐이 물처럼 고요하면서도 자기를 낮출 줄 알아야만 한다. 이것은 자기를 잊고 무위함으로써 외물(外物)과 마찰이 없을 것을 주장하는 노자의 사상을 물에 비유한 것이다. 물처럼 지극히 유약(柔弱)한 것이 실제로는 가장 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章 九 運 夷 (운 이) : 평평한 곳으로 옮긴다는 뜻. 평탄하고 평범하게 처신하는 것이 도가 양신술(養身術)의 하나.
持而盈之 不如其已 . 揣而銳之 不可長報 . 金玉滿堂 莫之能守 .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
(지이영지 불여기이 췌이예지 불가장보 금옥만당 막지능수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 천지도)
자기가 유지하는 것이 가득 차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하다. 단련시켜 예리하게 된 것은 오래도록 보존될 수가 없는 것이다. 황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차면 그것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부귀함으로써 교만하다 보면 스스로 그로 인한 허물을 입게 될 것이다. 공을 이룩한 다음에는 자신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에 알맞는 행동이다.
(해설) 정점(頂點)이란 길게 지속될 수 없는 것이며, 두드러지게 빼어나고 보면 결국 외부와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모가 나지 않게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章 十 能 爲 (능 이) : 도를 체득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음.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兒乎. 滌除玄覽 能武疵乎. 愛民治國 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지호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위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
(생지축지 생이부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
혼백(魂魄)을 잘 간수하고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니어, 여기로부터 떠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정기(精氣)를 오로지 하여 유연한 마음을 이룩하여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 깨끗이 마음을 씻어내어 현묘(玄妙)한 관찰력을 지님으로써 잘못이 없도록 하여야만 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되 무지(無知)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늘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며 자연이 변화함에 따라 암놈처럼 수동적이어야만 한다. 분명히 사방의 모든 일에 통달함으로써 무위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물을 생성하게 하며 만물을 생육(生育)케 하여야 한다. 생성시키고도 그것을 차지하지 않으며, 행동을 하더라도 의지하는 데가 없어야 하고, 생장토록 해주면서도 지배하지는 않아야 한다. 이것이 현묘한 덕(德)이라 하는 것이다.
(해설) 학자들에 따라 설이 구구하여 해석하기 힘든 곳이 많다. 사람들이 정신과 마음을 수양하는 요령을 해설한 것으로 보았다.
도를 체득하여 자연과 융화됨으로써 '현묘한 덕'을 이룩한다는 것은 '무위', '무심', '무의지'를 통해서만 이룩될 것 같지만, 사람이란 지적(知的) 동물임을 생각할 때 실은 매우 의지적인 행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章 十一 無 用 (무 용) : 노자철학의 특징인 無(무)의 효용을 해설함.
三十輻共一穀 當其無 有車之用 . 埏植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 鑿戶?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선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지이위이 무지이위용)
서른 개의 수레바퀴 살이 한 개의 바퀴통에 집중되어 있는데, 바퀴통의 중간에 아무 것도 없음으로써 수레는 효용(效用)을 지니게 된다.
진흙을 반죽하여 그릇을 만들었을 때, 그 중간에 아무 것도 없음으로써 그릇은 효용을 지니게 된다.
문과 창을 내어 집을 만들었을 때, 그 중간에 아무 것도 없음으로써 집은 효용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게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해설) 사람들은 형체로서 존재하는 것, 곧 유(有)의 효용은 잘 알면서도 그것이 존재가 없는 무(無)로 인하여 효용이 발휘되고 있음을 소홀히 한다. 노자는 반대로 유의 이로움은 오히려 무의 효용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시에서 언외(言外)의 뜻을 존중하고, 중국화에서 여백(餘白)의 처리를 중시하는 것도 이러한 도가사상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章 十二 檢 欲 (검 욕) : 사람의 욕망을 단속한다는 뜻. 욕망이란 사람의 본성을 그릇치는 원인이 된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聲 . 五味令人口爽 . 馳騁?獵 令人心發狂 . 難得之貨 令人行妨 . 是以聖人爲腹 不爲目. 故去彼 取此 .
(오색령인목맹 오음령인이성 오미령인구상 치빙전렵 영인심발광 난득지화 영인행방 시이성인위복 불위목 고거피 취차)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고, 다섯가지 소리는 사람들의 귀를 먹게 하는 것이며, 다섯가지 맛은 사람들의 입맛을 버리게 하는 것이고,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들의 바른 마음을 발광케 하는 것이다. 얻기 어려운 재물이란 사람들의 바른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본능인 배를 채우기 위한 행동은 하지만 욕망의 눈을 즐겁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욕망은 버리고 본성을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해설) 사람의 욕망이란 한이 없다. 그래서 욕망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사람의 행동을 그르치는 원인이 된다. 아름다운 색깔이나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관념을 초월하여 자기 본성대로만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개념은 후세 중국 예술관에도 큰 영향을 미치어 '졸박(拙撲)'이니 '질박(質朴)이니 하는 순수예술의 개념을 형성케 하였다. <장자> '천지'편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다.
章 十三 廉 恥 (염 치) : 사람이 영예나 치욕에 마음을 빼앗기어 기뻐하고 슬퍼하고 있음을 경계함. '치욕을 꺼리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이다.
寵辱若驚 貴大愚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上 辱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何謂貴大愚若身 ? 吾所以有大愚者 爲吾有身.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상 욕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及吾無身 吾有何愚 ? 故貴以身於天下者 可託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급오무신 오유하환 고귀이신어천하자 가탁천하 애이신위천하 약하기천하)
사람들은 총애와 치욕으로 마음을 경동(驚動)시키고 큰 환난(患難)이 되는 것을 그의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
무엇을 두고 '총애와 치욕으로 마음을 경동시킨다'고 하는가? 사람들은 총애는 좋은 것으로 알고, 치욕은 나쁜 것으로 안다. 그것들을 얻어도 마음을 경동시키고, 그것들을 잃어도 마음을 경동시킨다. 그래서 총애와 치욕으로 마음을 경동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두고 '큰 환난이 되는 것을 그의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큰 환난이 있는 까닭은 우리가 자신이 있음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에게 어찌 환난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천하보다도 자신을 진실로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곧 천하를 맡겨도 좋을 것이며,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곧 천하를 기탁해도 좋을 것이다.
(해설) 사람들은, 아집(我執)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 같은 것을 내세우며 자신을 의식함으로써 불행해진다.
'진실한 자기' 란 그러한 의식을 초월하여 '무위(無爲)'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총애와 치욕을 초월하여 무위함을 뜻하며, 그 '무위'는 자신 뿐만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최선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章 十四 贊 玄 (찬 현) : '현묘한 도를 기린다'는 뜻으로 도가의 도를 해설함.
視之不見 名曰夷 . 聽之不聞 名曰希 . 搏之不得 名曰微 . 此三者 不可致詰 . 故混而爲日. 其上不교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불득 명왈미 차삼자 불가치힐 고혼이위일 기상불교 기하불매 승승불가명)
復歸於無物 .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 是爲惚恍 .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以知古始 . 是爲道紀 .
(복귀어무물 시위무상지상 무물지상 시위홀황 영지불견기수 수지불견기후 집고지도 이어령지유 이지고시 시위도기)
그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형체가 없는 것, 곧 이(夷)라고 부른다. 그것은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이어서 소리도 없는 것, 곧 희(希)라고 부른다. 그것은 만지려해도 만져지지 않는 것이어서, 은미(隱微)한 것, 곧 미(微)라고 부른다. 이 세 가지는 감각으로써 그것을 구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시 이것들은 뒤섞이어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위쪽이라고 해서 분명하지도 않고 아래쪽이라고 해서 어두운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그것은 무물(無物)의 상태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것을 형상이 없는 상태, 무물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을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맞이해도 그 머리가 보이지 않으며, 뒤를 따라가도 그 꽁무니가 보이지 않는다. 옛부터의 도를 지니고서 현재의 존재들을 지배하고, 옛날 만물의 시초를 알게 한다. 이것을 도의 기강(記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설) 도(道)라는 것은 만물의 존재와 변화 및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의 감각으로서는 인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도의 절대성을 말하여 주는 한편 사람의 지각이란 절대적인 것이 못 된다는 결론도 유도한다. 현묘한 도를 바탕으로 하는 도가사상이 사람들의 지각을 초월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은 이때문인 것이다.
章 十五 顯 德 (현 덕) : 밝은 덕, 또는 덕을 밝히는 것. '덕'이란 앞에서 말한 현묘한 도를 체득한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몸가짐.
古之善爲土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若冬涉川 猶若畏西隣 儼若客 渙若水將釋 . 敦若撲 曠若谷 渾若濁 .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예약동섭천 유약외사린 엄약객 환약빙장석 돈약박 광약곡 혼약탁)
濁以精之 徐精 安以動之 徐生 . 保此道者 不欲盈 . 夫惟不盈 能弊復成 .
(탁이정지 서청 안이동지 서생 보차도자 불욕영 부유불영 능폐복성)
옛날 훌륭한 선비 노릇을 한 사람들은 마음과 몸가짐이 미묘(微妙)하고도 유현(幽玄) 통달(通達)하였으며, 심오하여 남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는 것이어서 억지로 그것을 형용하면, 조심스럽기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듯 하고, 우물쭈물하기 사방의 이웃을 모두 두려워하는 듯 하고, 위엄있기 손님노릇을 하는 듯하고, 거침없기 얼음이 확 풀리는 듯하고, 독실하기 나무 등걸 그대로 인 듯하고, 널찍하기 산골짜기 같고, 흐릿하긴 흙탕물 같다.
흐리지만 고요함으로써 서서히 맑아지고, 안정되어 있지만 움직임으로써 서서히 생성(生成)시킨다. 이러한 도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완전히 차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차게 되지 않기 때문에 피폐(疲弊)한 것을 다시 생성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해설) 도를 터득한 사람의 모양을 형용한 대목이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흐릿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맑고, 안정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만물을 생성케 한다는 것이다. 바보 같기도 하고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도를 터득한 이의 효용이란 말 할 수 없이 위대한 것이라는 뜻이다.
章 十六 歸 根 (귀 근) : 근본으로 되돌아간다는 뜻. 만물이나 만사는 모두 그 근원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며, 만물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를 알고 여기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도를 터득한 사람이 된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其復 . 夫物芸芸 名復歸其根 . 歸根曰靜 靜曰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 不知常妄作凶 .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기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귀근왈정 정왈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부지상망작흉)
知常容 容及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 道乃久 沒身不殆 .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마음을 텅 비게 하는 것을 극도로 하고 고요함을 지키는 일을 독실히 하면, 만물이 아울러 생겨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란 번성하고 있지만 제각기 그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근원으로 되돌아감을 고요함(靜)이라 표현한 것인데, 고요함이란 운명(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고, 운명으로 되돌아감이란 일정한 법칙(常)을 두고 말하는 것이며, 일정한 법칙을 안다는 것은 총명함(明)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일정한 법칙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불길할 것이다.
일정한 법칙을 알면 모든 것을 용납하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을 용납하면 공정해질 것이며, 공정해지면 왕자(王者)가 되고, 왕자가 되면 천연(天然)해질 것이며, 천연해지면 곧 도(道)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도를 터득하게 되면 곧 영원해져서 평생을 두고 위태롭지 않게 될 것이다.
章 十七 淳 風 (순 풍) : '순박한 기풍'의 뜻. 정치를 올바르게 하려면 백성들이 순박한 기풍을 지니도록 하여야 함을 해설한 내용이다.
太上 下知有之 . 其次 親之譽之 . 其次 畏之 . 其次 侮之 . 信不足焉 有不信焉 . 悠兮其貴言 . 功成事逐 百姓皆謂我自然 .
(태상 하지유지 기차 친지예지 기차 외지 기차 모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유혜기귀언 공성사축 백성개위아자연)
뛰어난 이가 임금자리에 있으면 백성들은 그가 존재함을 알 따름이다. 그보다 못한 임금이면 백성들은 그를 친근히 여기고 그를 기린다. 그보다 못한 임금이면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 한다. 그보다 못한 임금이면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성신(誠信)이 부족해서 신용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임금은 유연(悠然)히 하고 말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면 공(功)이 이룩되고 일이 잘 이루어져도 백성들은 모두가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해설) 도가에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설명한 대목이다. 도에 통달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면 무위하면서도 온 세상을 자연스럽게 다스려지도록 만든다. 따라서 임금이 큰 업적을 이룩해놓아도 백성들은 그것을 임금의 업적으로 의식치 못하고 자기 자신들에 의하여 자연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임금의 존재를 잊고 안락하게 살아갈 때 진실한 태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章 十八 俗 薄 (속 박) : 세상의 습속(習俗)이 천박(淺薄)해진 상태를 설명함.
大道廢 有仁義 . 智慧出 有大僞 . 六親不和 有孝慈 . 國家昏亂 有忠臣 .
(대도발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위대한 도가 무너지자 인의(仁義)가 생겨났다. 지혜가 생겨나면서 대단한 거짓이 존재하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친화(親和)하지 않게 되자 효도와 자애가 존재하게 되었다. 국가가 혼란하여지자 충신이 존재하게 되었다.
(해설) 노자에 의하면 아무리 훌륭한 덕목이라도 인위(人爲)적인 것이란 모두가 자연스런 사람의 본성에서 어긋나는 좋지 못한 것이 된다. 그래서 <장자>를 보면 인의(仁義)를 숭상하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과 같은 나쁜 짓이라고 극언까지 한다. 이 장에서 '인의'라는 유가의 덕목이 보이는 것은 <노자>의 친필이 아닌 후세에 보태진 것이라고 여겨지게 된다.
章 十九 還 淳 (환 순) : 어떻게 하면 사람이 본래의 순박함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설함.
絶聖棄智 民利百倍 . 絶仁棄義 民復孝慈 . 絶巧棄利 盜賊無有 .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 見素抱樸 少私寡欲 .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차삼자 이위문부족 고령유소촉 견소포박 소사과욕)
성스러움을 끊어버리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들의 이익은 백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仁)을 끊어버리고 의(義)를 버리면 백성들은 효도와 자애로움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기교를 끊어버리고 이익을 버리면 도둑들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것들에 대하여는 글로써 설명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설명을 덧붙여야만 하게 한다. 본시의 바탕(素)을 드러내고 소박한 그대로를 지니며, 사사로움을 줄이고 욕망을 적게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해설) 이것은 앞장의 글을 계승한 도가의 반문화선언이다. 모든 인위를 부정하고 보면 자연히 문화나 문명이라는 것도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그르치는 것이 되리라. 이 글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후세에 보태놓은 글로 보고 있다.
章 二十 異 俗 (이 속) : 속세의 사람들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쓰고 있음을 뜻함. 앞장에 이어 반문화(反文化)의 선언을 계속한 것이다.
絶學無憂 .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 衆人熙熙 如亨太牢 如春登臺.
(절학무우 유지여하 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여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형태뢰 여춘등대)
我獨怯兮 其未兆 如孾兒之未孩 傳傳兮 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若昏 .
(아독겁혜 기미조 여영아지미해 유류혜 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약혼)
俗人察察 我獨閔閔. 澹兮其若海 飉兮若無所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료혜약무소지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학문을 끊어버리면 걱정이 없게 된다. '네'하는 대답과 '어'하는 대답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 선과 악도 그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 남들이 두려워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복잡하여 그 두려움이 다하는 날이 없게 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즐거워하기를 좋은 요릿상을 받은 것과도 같고 봄에 누대(樓臺)에 오른 것 같이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홀로 무위함으로써 기쁨과 슬픔의 조짐을 드러내지 않고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기와 같고, 매인 데가 없어 돌아갈 곳도 없는 자와도 같다. 여러 사람들은 의욕이 남아 돌아가고 있지만, 나만 홀로 의욕을 잃은 것과 같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멍청하기만 하다. 속인들은 사리에 밝지만 나만 홀로 사리에 어두운 것 같다. 속인들은 똘똘하지만 나만 홀로 흐릿하다.
담담하기 바다와 같고 바람이 살랑거리듯 멈추는 곳이 없는 듯하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일하는 목적이 있지만 나만 홀로 어리석고 천한 것 같다. 나만 홀로 사람들과는 달리 먹고 사는 모체(母體)인 자연을 귀중히 여긴다.
(해설) 여기에서는 속인들과 다른 올바른 도를 터득한 사람의 모양을 형용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똑똑한 체하며 큰일을 벌이는 자들은 모두 사람의 본성을 그르치는 잘못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바보인 듯 멍청한 듯, 아무 것도 안 하는 듯하면서도 자연대로 살아가는 것이 도에 맞는 생활태도라는 것이다.
章 二十一 虛 心 (허 심) : 위대한 도는 '텅 빈 마음'에 깃들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인 제명임.
孔德之容 唯道是從. 道之爲物 唯恍唯惚. 惚兮恍兮 其中有像.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공덕지용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황혜홀혜 기중유물 요혜명혜 기중유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終甫 . 吾何以知終甫之然栽 ? 以此 .
(자고급령 기명불법 이열종보 오하이지종보지연재? 이차)
위대한 덕을 지닌 사람의 모습은 오직 도(道)만을 따른다. 도의 성격은 황홀(恍惚)하여 종잡을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그 가운데 물상(物象)이 존재하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그 가운데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심원하고 어두운 그 가운데 정수(精粹)가 존재한다. 그 정수는 매우 참된 것이어서 그 가운데 진실한 증험(證驗)이 드러난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은 사라져 버린 일이 없이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 그러함을 아는가? 바로 이러한 까닭 때문이다.
(해설) 도란 그 존재를 사람의 육감으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의연히 존재하면서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지배하는 근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章 二十二 益 謙 (익 겸) : 겸손한 게 이익이 된다는 뜻. 남과 다투지 않고 남보다 못한 듯이 겸손히 행동하는 덕을 해설함.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弊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不自見 故明. 不自是 故彰. 不自伐 故有功.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감 최이성인포일 위천하식 불자견 고명 불자시 고창 불자벌 고유공)
不自矜 故長 . 夫唯不爭 故天下寞能與之爭 .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
(불자긍 고장 부유불쟁 고천하막능여지쟁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성전이귀지)
굽은 것은 온전히 되고 만다. 구부러진 것은 곧게 되고 만다. 움푹한 곳은 가득 차게 되고 만다. 낡은 것은 새롭게 되고 만다. 적은 것은 더 보태어지고 만다. 많은 것은 미혹되어 잃게 되고 만다. 그래서 성인은 순일(純一)함을 지키어 천하에 규범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드러난다.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옳음이 더욱 밝혀진다. 스스로 업적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공적은 더욱 인정된다.
스스로 뽐내지 않기 때문에 재능이 훌륭하다고 인정된다. 그는 절대로 남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에 그와 다툴 수 있는 상대가 없게 된다. 옛날 사람들이 '굽은 것은 온전히 되고 만다' 고 말한 것 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진실로 온전함으로써 도(道)에 귀착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 무위, 무아 등의 행위는 결국 남과의 관계에 있어 겸손하고 남만 못한 듯이 행동하라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진실로 무위, 무아한 사람은 상대방의 존재조차도 의식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 완전한 단계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억누르고 죽이는 노력일 것이다.
남에게 뽐내고 자랑하며 남과 다투는 것은 자기를 크게 의식하는 것이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章 二十三 虛 無 (허무) : 자기를 텅 비게 하고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하여야만 남과 똑같이 완전히 어울릴 수 있음을 가르침.
希言 自然.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희언 자연 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焉 有不信.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신불족언 유불신)
남에게 들리지 않는 말이야말로 자연스런 것이다. 그러므로 회오리 바람은 하루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도 계속되지 못하는 것이다. 누가 이런 현상을 일어나게 하는가? 그것은 천지이다. 천지조차도 그런 것을 오래 가게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따라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를 터득한 사람을 대하면 똑같이 도를 따르고, 덕이 있는 사람을 대하면 똑같이 덕을 따르며, 실수를 하는 사람을 대하면 똑같이 실수를 한다.
똑같이 도를 따르면 도를 터득한 사람도 그를 만난 것을 즐거워할 것이다. 똑같이 실수를 하면 실수를 한 사람도 그를 만난 것을 즐거워할 것이다. 상대를 따르는 신실함이 부족하면 거기에는 불신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해설) 사람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상대방이 어떻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와 어울릴 때 참된 융화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자연스러우려면 자기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무위, 무아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자연을 어기는 모나는 행동은 회오리 바람이나 소나기처럼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다.
章 二十四 苦 恩 (고 은) :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모나지 않는 자연스럽게 행동할 것을 역설함.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조차도 괴로움을 주는 것이라는 뜻에서 주관적인 제목을 마련한 것인지 모른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於道也 曰餘食贅行. 物有惡之. 故有道者不處也.
(기자불위 과자불행 자견자불명 자시자불창 자벌자무공 자긍자불장 기어도야 왈여식취행 물유오지 고유도자불처야)
발돋음을 하고는 오래 서있지 못한다. 발걸음을 크게 떼어놓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는 사람은 분명히 알려지지 않는다. 스스로 옳다고 하는 사람은 밝게 인정받지 못한다.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적이 인정되지 않는다.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재능이 훌륭하다고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한 짓들은 도(道)의 입장에서 볼 때 먹고 남은 찌꺼기와 같은 쓸데없는 행동이 된다. 만물이 모두 그러한 짓은 싫어할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그렇게 처신하지 않는 것이다.
(해설) 앞장에 이어 여기서도 자기를 내세우며 모나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위의 몸가짐에는 모가 날 수가 없을 것이다.
章 二十五 象 元 (상 원) : 근본을 본 뜬다는 뜻. 천지만물의 근원이란 도를 말한다. 도야말로 모든 것의 근원이며 위대한 법칙임을 해설함.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廖兮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요혜 독립이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불지기명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고대도 천대 지대 왕역대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인법야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어떤 물건이 혼돈히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의 생성보다도 앞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형체도 없지만 홀로 존재하며 바뀌어지지 않고 모든 것이 두루 행하여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에 모체라 할 만한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道)라고 이름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 부르기로 하였다. 대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멀리 극도에까지 이른다. 멀리 극도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도란 위대한 것이다. 하늘도 위대하고, 땅도 위대하고 왕도 역시 위대하다. 세상에는 이 네 가지 위대한 것이 있는데, 왕(王)도 그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땅을 법도로 삼고, 땅은 하늘을 법도로 삼고, 하늘은 도를 법도로 삼으며, 도는 자연을 법도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해설) 여가서 도와 하늘과 땅과 왕을 네 가지 위대한 것이라 규정지은 것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왕이란 세상을 무위로써 다스리는 올바른 왕으로 보고, 사람과 천지와 도와 자연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章 二十六 重 德 (중 덕) : 무겁고 고요한 덕을 뜻함. 무겁고 고요한 덕을 지닌 사람이어야만 세상을 올바로 다스릴 수 있음을 해설한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而聖人 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이성인 종일행 불리경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경즉실본 조즉실군)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고요한 것은 시끄러운 것의 지배자가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종일 길을 가더라도 식량이나 기구를 실은 수레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비록 굉장한 구경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편안히 처신하여 초연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천하의 임금이 되어가지고도 자신을 천하보다도 가벼히 할 수가 있겠는가? 가벼히 행동하면 근본을 잃게 되고, 시끄러이 행동하면 임금자리를 잃게 된다.
(해설) 임금은 중후(重厚)하고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벼히 의식적인 행동을 말라는 말과도 통할 것이다.
章 二十七 巧 用 (교 용) : 어떤 흔적이나 의식을 드러내지 말고 교묘히 행동하라는 뜻.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도의 묘용(妙用)을 해설함.
善行無徹迹 善言無瑕讁. 善數不用籌策.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終而不可解. 是而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선행무철적 선언무하적 선수불용주책 선폐무관건이불가개 선결무승약이불가해 시이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
길을 잘 가는 사람은 지난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트집잡을 흠이 없다. 셈을 잘 하는 사람은 셈가지를 쓰지 않는다. 문을 잘 닫는 사람은 빗장과 자물쇠가 없더라도 열 수 없게 하고, 잘 묶는 사람은 새끼줄로 묶지 않더라도 풀 수가 없게 한다. 그래서 성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잘 구제하기 때문에 돌보지 않고 버려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언제나 물건을 잘 구원하기 때문에 돌보지 않고 버려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이것을 밝음을 덮어 가리는 것,
곧 습명(襲明)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이란 훌륭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며,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란 훌륭한 사람의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스승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그러한 자원을 아낄 줄 모른다면, 비록 지혜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크게 미혹될 것이다. 이것을 중요한 묘리(妙理), 곧 요묘(要妙)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설) 도를 터득한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가 행동한 흔적도 드러내지 않는다. 도가에서는 훌륭함이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곧 습명을 소중히 여긴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비롯하여 외부의 모든 것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데 행동의 묘리가 있다는 것이다.
章 二十八 反 朴 (반 박) : 소박함으로 되돌아간다는 뜻. 유약함, 겸손함, 소박함의 덕을 설명함.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難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모 모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해)
수컷의 강함을 알고 암컷의 연약함을 지키면 천하의 만물이 귀착되는 골짜기 같은 존재가 된다. 골짜기 같은 존재가 되면 변함없는 덕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 되어 어린 아기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희고 깨끗함을 알고서 더럽혀진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법도가 된다. 천하의 법도가 되면 변함없는 덕은 어긋남이 없어 무궁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영화로움의 위태로움을 알고서 욕된 상태를 지키면 천하의 신망이 몰려드는 골짜기 같은 상태가 된다. 골짜기 같은 상태가 되면 변함없는 덕이 충분하게 되어 소박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소박함이 흩어지면 쓰이는 그릇 같은 사람이 된다. 성인은 그러한 사람들을 등용하여 관청의 우두머리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제작(制作)은 쪼개어 흩어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해설) 거의 같은 내용을 표현만 달리해서 세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다. 곧 사람은 소박한 어린아이 같은 자연스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소박함을 잃고 보면 남에게 쓰임을 당하는 그릇 같은 인간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위대한 제작은 쪼개어 흩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였는데, 쪼개어 흩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박한 채 자연스럽게 그대로 버려두는 것을 말한다.
章 二 十九 無 爲 (무 위) :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일체의 작위(作爲)를 버리고 '무위' 해야 함을 해설함.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己.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或行或隨 或噓或吹 或强或羸 或挫或墮.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불득기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숙자실지 고물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타)
是以聖人 去甚 去奢 去泰 .
(시이성인 거심 거사 거태)
천하를 탈취하여 그것을 인위(人爲)로 다스리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천하란 신묘(神妙)한 그릇과 같은 것이어서 인위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인위로 다스리려는 사람은 천하를 망치고,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은 천하를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이란 혹은 앞서기도 하고 혹은 뒤따르기도 하며, 혹은 입김을 불어 따스하게도 해주고 혹은 입김을 불어 식히기도 하며, 혹은 강한 것이 되었다가도 혹은 약한 것이 되기도 하며, 혹은 받쳐주기도 하다가 혹은 떨어뜨리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심한 짓을 하지 않으며, 사치한 짓을 하지 않으며 교만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해설) 인위적인 행동으로 세상이란 다스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억지로 집착하다보면 일을 더욱 그르치게 될 따름이다. 그래서 성인은 지나치지 않은 몸가짐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章 三十 儉 武 (검 무) : 무력행사를 삼간다는 뜻. 공연히 센 척하다가는 화를 입는다는 내용.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善者 果而己 不敢以取强.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사지소처 형극생언 대군지후 필유흉년 선자 과이기 불패이취강)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己 果而勿强 .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己.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과이부득기 과이물강 물장즉노 시위부도 부도조기)
도로써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은 군사력으로써 천하에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일은 근본으로 되돌아감이 좋은 것이다. 군대가 주둔한 곳엔 가시덤불이 자라게 된다. 큰 전쟁을 치른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해결할 따름이지, 감히 강함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어려움을 해결하되 뽐내지 아니하며, 어려움을 해결하되 자랑하지 아니하며, 어려움을 해결하되 교만하지 아니하며, 어려움을 해결하되 부득이할 때만 싸우며, 어려움을 해결하되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물이란 강장(强長)하여지면 늙게 마련이니, 그것을 부도(不道)함이라 이르는 것이다. 부도함이란 일찍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 <노자>에는 병가(兵家)와 관계있는 말들이 적지않게 보인다. 병가의 대표적인 저서라 할 수있는 <손자(孫子)>에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구절들이 있다. 도가와 병가(兵家)는 서로 용납될 수 없는 학파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국시대의 사상가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접촉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章 三十一 偃 武 (언 무) : 무기를 뉘여놓고 쓰지 않는다는 뜻. 앞장에 이어 여기서도 전쟁이란 해로운 것임을 강조함.
夫住兵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者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己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부가병 불상지기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병자불상지기 비군즉귀우 부득기이용지 첨담위상 승이불미)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이미지자 시락살인 부락살인자 즉불가이득지어천하의 길사상좌 흉사상우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신이상례처지)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살인지중 이애비읍지 전승 이상례처지)
훌륭한 무기는 불길한 연모이어서, 만물 중에는 그것을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그것을 몸 가까이 두지 않는다. 군자들은 평소에 왼쪽을 존중하고, 전쟁을 할 적에는 오른쪽을 존중한다. 무기라는 것은 불길한 연모이니, 군자들이 쓸 연모는 아닌 것이다. 부득이하여 무기를 쓰게 될 경우, 편안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쓰는 게 좋으며, 싸워 이기는 것을 좋은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는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길(吉)한 일에 있어서는 왼쪽을 숭상하고 흉한 일에 있어서는 오른쪽을 숭상한다. 부장군(副將軍)은 왼쪽에 위치하고 대장군(大將軍)이 오른쪽에 위치하는데, 이것은 상례(喪禮)를 따라 위치를 정한 것임을 뜻한다.
전쟁이란 많은 사람을 죽이므로 슬픔으로 울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이겼다 하더라도 상례를 따라 위치를 정하는 것이다.
(해설) 중국사람들은 옛날부터 전쟁을 죄악으로 여겨왔다. 도가는 말할 것도 없고 덕치(德治)를 주장하는 유가에서도 전쟁은 반대한다. 묵가(墨家)는 겸애와 함께 비전론(非戰論)이 그들 사상의 한 가지 특징을 이루고 있다. 병가(兵家)조차도 전쟁은 부득이 할 경우에만 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입장에서 손자는 그의 병법의 사상적인 근거를 노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힘과 힘의 대결을 통한 지배가 아니라 자연스런 에너지의 조정에 의한 승리를 주장하는 손자의 병법을 보아도, 중국의 병법은 서양의 전술과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章 三十二 聖 德 (성 덕) : 올바른 천하의 통치자인 성인에 대하여 설명함.
道常無名 樸 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 以降甘露. 民莫之令 而自均. 始制 有名.
(도상무명 박 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천지상합 이강감로 민막지명 물자균 시제 유명)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 不殆 .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紅海 .
(명역개유 부역장지지 지지 불태 경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도란 언제나 이름도 없고 소박하며, 비록 작게 보이지만 천하에는 감히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임금이 만약 그것을 지킨다면 만물이 스스로 경복(敬服)하게 될 것이다. 하늘, 땅과 서로 화합되어 단 이슬을 내리게 할 것이고, 백성들은 아무도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루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처음에 인위적으로 제어하기 시작하자 이름이 있게 되었다.
이름이 있게 된 이상 또한 멈춰야 할 곳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멈출 곳을 아는 것이 위태롭게 되지 않는 방법이 된다. 도의 천하에 있어서의 위치를 비유로 들면 마치 골짜기 냇물이 강과 합쳐져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다.
(해설) 골짜기 시냇물이 모여들어 강물을 이루고 다시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어 바다는 언제나 변함없듯이, 도는 천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도 언제나 변함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를 지키는 일만이 지배자들이 올바로 세상을 다스리는 길이 된다. 물론 도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어떠한 인위적인 행동도 여기에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냇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무위'하며 자연스럽게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章 三十三 辯 德 (변 덕) : 덕을 논한다는 뜻. 도를 터득한 사람의 덕이란 어떤 것인지 논함.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부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이이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총명한 이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있는 이이고,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은 강한 이이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부자이고, 실행을 힘쓰는 사람은 뜻있는 이이다. 그의 올바른 위치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 갈 것이고, 죽어도 도를 잃지 않는 사람은 장수(長壽)한다.
(해설) 노자는 도를 터득한 성인의 조건으로 지혜, 총명, 힘, 강함, 부(富), 뜻, 오래감, 장수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章 三十四 任 成 (임 성) : 이루어지는대로 맡겨둔다. 즉 도처럼 자연스러울 것을 강조함
大道汎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 而不辭. 功成 不名. 有衣養萬物 而不爲主 . 常無欲 可名於小 .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 이불사 공성 불명 유의양만물 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만물귀언 이불위주 가명위대)
是以聖人 終不自爲大. 故能成其對 .
(시이성인 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
위대한 도는 장마물처럼 왼쪽 오른쪽 어디에나 있다. 만물은 이것에 힘입어 생성되고 있지만 그것을 내세워 얘기하지 않으며, 공(功)을 이룩하고서도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만물을 입혀주고 길러주고 하면서도 그 주인 노릇을 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욕망이 없어 작은 존재라 부르기 일쑤이다. 그러나 만물이 귀복(歸服)하는데는 그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니 위대한 존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끝내 스스로 크다고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위대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설) 도의 효능은 위대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는 법 없이 언제나 무욕(無欲)하다. 사람도 그러한 도의 덕성을 터득함으로써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章 三十五 仁 德 (인 덕) : 도를 따라 살아가면 어디에서나 안락하게 지낼 수 있다. 도의 효능은 무한하면서도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도의 효능을 '인한 덕'이라고 보고 붙인 제목인 듯하다 .
執大象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聞 聽之不足聞. 用之不可旣.
(집대살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매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불가기)
위대한 도를 지키며 천하에서 행동한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해가 미치지 아니하고 안락 태평할 것이다. 음악이나 음식도 지나는 나그네를 멈추게 한다. 도는 입으로 표현하면 담담히 아무 맛도 없으며, 보아도 볼 만한 게 못 되고 들어도 들을 만 한 게 못 된다. 그러나 도의 효용(效用)은 끝이 없는 것이다.
(해설) 도란 사람들의 감각으로 볼 때는 정말로 하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의 효능은 무한하면서도 절대적인 것이여서, 사람은 도를 지켜야만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다.
章 三十六 微 明 (미 명) : 도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연의 원리를 설명함. 도는 미묘하지만 그 효능은 밝다(河上公註) 또는 미묘한 밝은 원리의 뜻을 지녔다라는 것이다.
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柔弱勝剛强. 魚不可脫淵.
(장욕흡지 필고장지 장욕약지 필고강지 장욕폐지 필고여지 장욕탈지 필고여지 시위미명 유약승강강 어불가탈연)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국지이기 불가이시인)
만물을 오므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일시적으로 그것을 벌어지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일시적으로 그것을 강하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패멸시키려면 반드시 일시적으로 그것을 흥성케 하여야 한다. 그것을 뺏으려 한다면 반드시 일시적으로 그것을 내주어야 한다. 이것을 '미묘한 밝은 원리(微明)' 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약(柔弱)한 것이 그래서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기게 되는 것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라의 이기(利器)는 남에게 보여줘서는 안되는 것이다.
(해설) 무엇이든 극점에 다다르면 다시 그 뒤로 기울어지는 것이 자연의 원리임을 해설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비자> 설림상편과 <전국책> 위책에서는 <주서>의 말로서 이 장의 앞 네 구절과 비슷한 말이 인용되어 있고, 끝머리에 '나라의 이기는 남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써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권모술수에 가까운 냄새가 난다. 병가나 법가가 노자의 영향을 받은 반면 노자도 뒤에 반대로 이들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章 三十七 爲 政 (위 정) : 도를 바탕으로 하여 올바른 정치를 할 것을 주장함.
道常無爲 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 以無名之撲. 無名之撲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
(도상무위 이무불위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 이무명지박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란 없는 것이다. 임금들이 만약 이것을 지킬 줄 안다면 만물은 스스로 생성변화(生成變化)케 될 것이다.변화하는 데 있어서 작위를 가하려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이름도 없는 나무 등걸과 같은 도로서 눌러야만 할 것이다. 아무런 이름도 없는 나무 등걸이란 또한 아무런 욕망도 없는 것이다. 욕망이 없음으로써 고요해진다면 온 천하가 스스로 안정되게 될 것이다.
(해설) 임금은 무위함으로써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도가의 정치철학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양계초 같은 이는 32장과 이곳에 보이는 '후왕(侯王)이란 말은 춘추시대에는 쓰이지 않던 말이라 하여 이를 근거로 <노자>는 그가 죽은 뒤 전국 말엽에 이루어진 책일 것이라 주장한다.
老 子 下(편) 德 經 (덕경)
章 三十八 論 德 (논 덕) : '덕경'의 서론으로서 덕이란 무엇인가를 논함.
上德下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 而無以爲. 下德爲之 而有以爲. 上仁爲之 而無以爲 . 上義爲之 而有以爲 .
(상덕불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 이무이위 하덕위지 이유이위 상인위지 이무이위 상의위지 이유이위)
上禮爲之 而莫之應 則攘臂而仍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상례위지 이막지응 칙양비이잉지 고실도이후덕 실덕인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실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 不處其薄. 居其實 不居其華 . 故去彼取此.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시이대장부처기후 불허기박 거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상급(上級)의 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덕을 지니게 된다. 하급(下級)의 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덕이 없게 된다. 상급의 덕은 무위(無爲)하고 행위의 목적이 없다. 하급의 덕은 인위적으로 행하며 행위의 목적이 있다. 상급의 인(仁)은 유위(有爲)하면서도 행위의 목적은 없는 것이다. 상급의 의(義)는 유의하면서 행위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상급의 예(禮)는 유의하면서 상대방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 팔을 잡아 끌면서 이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道)를 잃은 뒤에야 덕이 드러나며, 덕을 잃은 뒤에야 인이 드러나고, 인을 잃은 뒤에야 의가 드러나며, 의를 잃은 뒤에야 예(禮)가 드러나는 것이다. 대체로 예라는 것은 충실함과 신의가 박약(薄弱)해진 것으로서 혼란의 시작인 것이다.
남보다 앞서 아는 것은 도의 형식적인 외화(外華)로서 어리석음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대장부는 그 돈후(敦厚)함에 처신하지 그 박약해진 것에 처신하지 않으며, 그 내실(內實)을 따르지 그 형식적인 외화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뒤의 것은 버리고 앞의 것을 취하여만 하는 것이다.
(해설) 덕을 도의 아래에 둔 것은, 덕이란 인간의 행위와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인, 의, 예, 지(智)의 등급을 인위(人爲)의 정도에 따라 매기고 있는 점은 더욱 재미있다. '故失道而後德'으로부터 '亂之道'에 이르는 대목은 <장자>의 '知北遊'편에 인용되고 있는데, 장자는 '故曰...' 하면서 노자의 말이 아니라 옛날의 격언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장은 비교적 뒤늦게 이루어져 <장자>에 보태어진 글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章 三十九 法 本 (법 본) : 근본을 법도로 삼는다는 뜻. '근본'이란 세상 모든 것의 유일한 근본이 되는 도일 것이다. 이 이론을 정치론에도 적용시켜 국가의 근본은 천한 백성이므로 임금은 백성을 중히 여기고 겸손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天下正. 其致之一也. 天無以淸 將恐裂.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욕득일이영 만물득이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기치지일야 천무이청 장공열)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貴 將恐궐.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욕무이영 장공갈 만물무이생 장공멸 후왕무위귀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是以侯王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 非乎 ? 不欲琭琭加玉 落落如石 .
(시이후왕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불욕녹록여옥 낙낙여석)
옛날에 일(一)을 체득하였던 것들을 보자. 하늘은 일을 체득하여 맑아졌고, 땅은 일을 체득하여 안정되었으며, 신은 일을 체득하여 영묘(靈妙)해졌고, 골짜기는 일을 체득하여 가득 차게 되었으며, 만물은 일을 체득하여 생존케 되었고, 임금은 일을 체득하여 천하를 올바로 다스리게 되었다. 그것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일인 것이다. 하늘이 그것에 의해 맑아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찢어져 버렸을 것이다.
땅이 그것에 의하여 안정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신이 그것에 의하여 영묘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기능이 다해 버렸을 것이다. 골짜기가 그것에 의하여 가득 차지 않았다면 아마도 말라 버렸을 것이다. 만물이 그것에 의하여 생존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멸(死滅)되어 버렸을 것이다. 임금이 그것에 의하여 존귀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실각(失脚)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존귀한 것은 비천한 것으로써 그 근본을 삼고, 높은 것은 아래 것으로써 그 기본을 삼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들은 스스로를 고(孤)니 과(寡)니 불곡(不穀)이니 하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비천한 것으로써 근본을 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너무 영예를 추구하면 영예가 돌아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구슬과 같게 보이려 들지 말고, 데굴데굴한 돌맹이같이 보이려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은 판본에 따라 글자의 차이가 퍽 많은 곳이다. '天下正'의 正자는 貞, 政 등으로 되어 있고 '其致之一也'에서 一也가 빠져있는 판본이 많으며, 그 밖에 녹록과 落落이 여러 가지로 쓰여 있는 등 일일이 지적하기 번거로울 정도이다. 그러나 도의 절대적인 공능(功能)을 강조하고 나서, 겸양의 덕을 해설한 대의를 파악하는데에는 모두가 큰 지장이 없다.
章 四十 去 用 (거 용) : 제목의 뜻이 분명치 않다. 세속적인 이용가치의 관념을 버리라는 뜻인 듯하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저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되돌아간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며, 유약(柔弱)하다는 것은 도의 작용인 것이다. 천하의 만물은 유(有)에서 생성되고 있지만, 유는 무(無)에서 생겨난 것이다.
(해설) 도의 기본 성격과 무(無)의 철학을 간단히 설명한 말이다.
章 四十一 同 異 (동 이) : 제명이 분명치 않다. 도는 터득하기 어려운 것이며 세속적인 판단과는 다른 것임을 논하고 있으니, 진정한 도는 세상 사람들의 '같은 것과 다른 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초월하는 것이란 뜻에서 그런 제명을 붙인 듯도 하다.
上土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俗.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대소지 불소 부족이위도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덕약속 )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유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大唯道 善貸且成.
(대백약욕 광덕약부족 건덕약투 질진약유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상급(上級)의 선비는 도에 관해 들으면 부지런히 그것을 실천한다. 중급(中級)의 선비는 도에 관해 들으면 그 존재를 인정하는 듯도 하고 무시하는 듯도 하게 행동한다. 하급(下級)의 선비는 도에 관해 들으면 그것을 크게 비웃는다. 그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도가 될만한 것이 못 될 것이다.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밝은 도는 어두운 듯이 보이고, 도에 나아가는 이는 물러나는 듯이 보이며,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듯이 보이고, 훌륭한 덕은 속된 듯이 보인다.
크게 결백한 이는 욕된 듯이 보이고, 광대한 덕을 지닌 이는 부족함이 있는 듯이 보이며, 튼튼한 덕을 지닌 이는 간사한 자인 듯이 보인다. 바탕이 참된 사람은 더럽혀진 듯이 보이고, 크게 모진 물건에는 모퉁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큰 그릇은 더디게 이룩되고,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큰 형상은 형체가 없는 듯이 보인다.'라고 한 것이다. 도란 은미(隱微)한 것이어서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란 모든 것을 빌려주고 또 생성케 해주는 것이다.
(해설)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판단 기준으로는 진실로 올바른 것이나 진실로 위대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도는 만물을 생성케 하고 존재케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장자>의 앞머리 '소요유(逍謠遊)'나 '제물론(齊物論)' 같은 데 보이는 상식적이고 상대적인 가치판단 기준의 부정은 여기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章 四十二 道 化 (도 화) : 도의 변화 또는 도의 화육(化育)의 뜻. 도의 화육원리를 설명함.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冲氣以爲和.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은이포양 충기이위화 인지소악 유고과불곡 이왕공이위칭 고물혹손지이익 혹익지이손)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 不得其死 . 吾將以爲敎父 .
(인지소교 아역교지 강량자 부득기사 오장이위교부)
도(道)가 일(一)을 낳고, 일은 이(二)를 낳고, 이는 삼(三)을 낳으며, 삼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陰)을 짊어지고 양(陽)을 안고 있는 셈이며, 충기(沖氣)를 통하여 조화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고아가 되는 것(孤)이나 덕이 적은 것(寡)이나 복이 없는 것(不穀)인데, 임금들은 그런 것으로써 자신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만물이란 혹시 거기에서 덜어버리더라도 더해지게 되고, 혹시 거기에 더한다 하더라도 덜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훈하고 있는 말로서 나도 역시 교훈을 해볼까 한다. 강하고 억센 자는 제 목숨에 죽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교훈의 아버지로 삼으려 한다.
(해설) 만물은 도의 변화에 의한 자연법칙에 의하여 생성되고 존재하며 또 변화하는 것이다. 부족한 것은 더하게 해주고 너무 많은 것은 줄어들게 해주는 것이 도의 법칙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은 약하고 부드러운 듯이 살아야지, 강하고 억센 듯이 살아가다가는 결국 꺾어지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章 四十三 徧 用 (편 용) : 두루 쓰인다는 뜻. 도의 효용(效用)을 말하는 것임.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間.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 무유입무문 오시이지무위지유익 불언지교 무위지익 천하희급지)
천하의 지극히 유약(柔弱)한 것이 천하의 지극히 견고한 것을 부리고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에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무위(無爲)가 유익한 것임을 알고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가르침과 무위의 이익은 천하에 이것을 따를 것이 드물 것이다.
(해설) 노자의 유약의 철학은 앞에서도 여러 번 물을 비유로 이용하였다. 물처럼 유약하고 무위한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章 四十四 立 戒 (입 계) : 훈계를 세운다는 뜻. 사람이 살아가면서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욕구에 대한 훈계를 하고 있다.
名與身執類 ? 身與貨執多 ? 得與亡執病 ?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故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 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고지족부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명예와 자신은 어느 것이 더 친밀한 것인가? 자신과 재물은 어느 것이 더 소중한 것인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어느 편이 더 괴로운 것인가?
그러니 심히 아끼면 반드시 크게 손실을 받게 되고, 많이 지니고 있으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아니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게 되며, 오래도록 자신을 보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해설) 세상 사람들은 명예나 재물을 위하여 자신을 망치는 경우조차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상의 물건이란 오히려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의 씨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람이란 일반적인 욕구를 초월하여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적절한 정도에서 멈출 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위'의 생활 철학인 것이다.
章 四十五 洪 德 (홍 덕) : 큰 덕이라는 뜻. 위대한 성인의 덕을 설명함.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冲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대성약결 기용불폐 대영약충 기용불궁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승눌 조승한 정승열 청정위천하정)
위대한 성공은 결함이 있는 듯하지만, 그 효용은 다함이 없는 것이다. 크게 충만한 것은 텅빈 듯하지만 그 효용은 한이 없는 것이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고, 크게 교묘한 것은 졸렬한 듯이 보이며,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듯이 보인다. 몸을 심히 움직이면 추위를 이겨낼 수가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니, 맑고 고요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된다.
(해설) 진실로 위대한 것이 사람들에게는 졸렬한 듯이 보인다는 것은, 앞에서도 이미 여러 번 보였듯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판단 기준이 그릇된 것임을 뜻한다. 그리고 '심히 움직이는 것'이 추위를 이겨낸다'고 한 것은 '고요함'을 주장하는 노자의 철학과 어긋나는 듯이 보이기가 쉽다. 그러나 움직임은 일시적이고 고요함은 영원한 것이므로 '맑고 고요함으로써 천하를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章 四十六 儉 欲 (검 욕) : 사람의 욕망을 제어한다는 뜻.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大於可欲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
(천하유도 각주마이분 천하무도 융마생어교 죄막대어가욕 화막대어불지족 구막대어욕득 고지족지족 상족)
천하에 도(道)가 행하여지면 전장(戰場)에서 달리던 말을 돌려보내어 농사일에 쓰게 된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처음부터 전쟁에 쓰이는 말로서 교외(郊外) 전장에서 출생케 되는 것이다. 죄는 욕망을 따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화(禍)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물건을 획득하려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앎으로써 만족을 하게 되면 언제나 만족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 천하의 올바른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말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혼란과 불행 속에 나서 혼란과 불행 속에 죽어가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욕구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혼란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잘 조절하여 언제나 만족할 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기 욕망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章 四十七 鑒 遠 (감 원) : 가만히 앉아서 먼 일을 비추어 본다는 뜻. 모든 위대한 업적은 '무위' 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不出戶知天下 不窺牖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불출호지천하 불규유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시이성인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문(門)을 나서지 않고서도 천하의 일을 알고,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서도 하늘의 도(道)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멀수록 그가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서도 알게 되며, 보지 않고서도 올바로 식별하게 되고, 작위(作爲)를 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성취시키게 되는 것이다.
(해설) 이 글은 정치는 물론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진리를 해설한 것이며, 성인의 신통력이란 '무위'의 위대한 효용을 설명하다 보니 그렇게 표현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도가 무위하면서도 모든 만물을 생성케 하고 변화케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신통력'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章 四十八 忘 知 (망 지) : 지식을 잊는다는 뜻. 지식은 물론 지각(知覺)까지도 잊어버리고 '무위'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爲學日盛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위학일성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 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학문을 하면 날로 지식이 늘어나지만 도(道)를 닦는 일을 하면 날로 지식이 줄어들 것이다. 지식이 줄고 또 줄어서 무위에 이르게 되는데, 무위하게 되면 하지 않는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천하를 취함에 있어서는 언제나 무사(無事)함으로써 하여야 한다. 그에게 일이 있게(有事) 되면 천하를 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 지식이 해로울수도 있다. 지식은 물론 지각조차 없이 무위하여야만 온 세상까지도 올바로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章 四十九 任 德 (임 덕) : 사람의 덕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 인간이란 선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믿고, 통치자는 모든 것을 그러한 인간의 덕에 맡기며 무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 德信. 聖人在天下 惵惵爲天下 渾其心.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성인재천하 접접위천하 혼기심)
而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
(이백성개주기이목 성인개해지)
성인은 일정한 마음을 갖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마음으로써 자기 마음을 삼는다. 선한 사람을 우리는 선하다고 하지만, 선하지 않은 사람도 우리는 역시 선하다고 하여야 한다. 인간의 덕(德)이란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을 우리는 진실하다고 하지만, 진실되지 않은 사람도 우리는 역시 진실되다고 하여야 한다. 인간의 덕이란 진실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천하를 대함에 있어서 두려운 듯이 천하를 다스리며 그의 마음을 흐리멍덩하게 한다.
그리고 백성들은 모두 그의 귀와 눈을 기울이더라도 성인은 누구나 어린 아이 같은 상태(道理)로 보이게 한다.
(해설) 사람은 사람의 본연의 성(性)을 따라야 한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선하고 진실(信)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가하지 말고 사람의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도 올바로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맹자의 성선(性善)의 선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맹자의 선이란 선악의 판단기준을 근거로 하여 악의 상대가 되는 선이지만, 노자의 선이란 그러한 판단기준을 초월한 상대적인 악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선(絶對善)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 보고 사람의 본성에 따라 무위자연해야 된다고 설교할 수 있게 된다. 노자의 선이 맹자와 같은 것이라면 그 선은 무위로서 유지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일게다.
章 五十 貴 生 (귀 생) :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로 삶을 귀중히 하는 것인가를 해설함. 노자는 삶이나 죽음은 자연 변화의 한 가지 현상이므로 이를 초월할 것을 주장한다.
出生 入死 . 生之徒 十有三. 死之徒 十有三 . 人 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 以其生生之厚.
(출생 입사 생지도 십유삼 사지도 십유삼 인지생 동지사지 역십유삼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蓋聞 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 夫何故 ? 以其無死地 .
(개문 선섭생자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 시무소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부하고 이기무사야)
나오는 것이 삶이고 들어가는 것이 죽음이다. 삶의 도리를 온전히 하는 사람은 열 명에 세 명 정도이고, 죽음의 도리를 온전히 하는 사람도 열 명에 세 명 정도이다. 사람이 나서 공연히 움직이어 사지(死地)로 가게 되는자도 열 명에 세 명 정도 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의 삶을 너무 잘 살아가려 들기 때문이다.
듣건데 삶을 잘 유지하는 사람은 육지를 여행해도 외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아니하고, 군대에 들어가서도 무기의 피해를 입지 아니한다 하였다. 외뿔소도 그의 뿔로 들이받을 여지가 없고, 호랑이도 그의 발톱으로 할퀼 여지가 없으며, 무기도 그 날을 들이밀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에게는 사지(死地)가 없기 때문이다.
(해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자연 현상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좀 더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나머지 반대로 자기 삶을 그르치고 만다. 사람이 올바르게 살다가 제대로 죽자면 생사를 초월하여 사지(死地)가 없는 경지에 자신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지가 없는 경지란 '무위'의 자연스러운 경지를 뜻한다.
章 五十一 養 德 (양 덕) : 올바른 덕을 길러야 한다는 뜻. 또는 만물을 길러주는 덕.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 而常自然 .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불존도이귀덕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 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 育之 成之 熟之 養之 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爲玄德 .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 육지 성지 숙지 양지 복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
도(道)는 생성(生成)하고 덕은 길러주어, 만물은 형체(形體)를 지니게 되고, 여러 가지 형세(形勢)가 이룩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물은 도를 소중히 하고 덕을 귀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가 소중하고 덕이 귀중한 것은 어느 누구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고 언제나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생성하고 덕은 길러주며, 생장케 하고, 생육케 하고, 성장케 하고, 성숙케 하고, 보양(保養)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다. 생성케 하되 소유하지는 않으며, 그렇게 해주되 그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생장케 해주되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것을 현묘(玄妙)한 덕이라 말하는 것이다.
(해설) 여기서는 자연의 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해설하고 있다. 자연의 덕은 만물을 길러주면서도 아무런 의식이나 목적을 갖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뿐이다. 사람도 그러한 덕을 갖추어야만 성인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章 五十二 歸 元 (귀 원) : 만물의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뜻. 만물의 근원이란 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기득기모 이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색기태 폐기문 종신부동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强 .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 是謂襲常 .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강 부귀기명 무도신앙 시위습상)
천하의 것에는 처음이 있었는데 그것이 천하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 어머니를 터득함으로써 그 자식들을 이해하고, 그 자식들을 이해함으로써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킬 수 있어야만 평생토록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근원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아야만 평생동안 고생하지 않는다. 욕망의 근원을 열어놓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간다면 평생동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명철하다고 하고 유약함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명철한 빛을 사용하고, 그 명철함으로 되돌아간다면 자신에게 재앙이 끼쳐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습상(襲常)' 곧 상도(常道)를 지키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은 앞에 떼어놓은 것처럼 3 개의 대목으로 나뉘어지는데 얼핏 보기에는 서로 앞 뒤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장에는 착간(錯簡)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첫 대목에서는 '도는 만물의 근원이니 그 도를 잘 지켜야 한다'는 뜻이고, 둘째 대목에서는 '도를 지키자면 자기의 욕망을 없애야 한다'는 뜻을 썼으며, 세째 대목에서는 '자기의 욕망을 없애고 자신이 구원 받자면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고 유약한 몸가짐을 지니면서 자연스런 상도를 지켜야만 한다'를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章 五十三 益 證 (익 증) : 증명을 더 보탠다는 뜻. 인위적으로 정치를 하지 않고 자연의 도를 따르는 것이 훌륭한 정치방법임을 다시 한 번 더 증명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인 제목인 듯하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劒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夸盜. 非道也哉 !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대도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기무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과도 비도야재)
만약 내가 확실한 지혜를 가지고 위대한 도를 따라 행동하려 한다면, 오직 인위적인 시책(施策)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도는 매우 평탄한 것인데도 백성들은 좁은 길을 좋아한다. 조정이 심하게 빠지면 나라라는 밭은 매우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창고는 매우 텅 비게 되는 것이다. 문채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실컷 먹고 마시며, 남아 돌아가는 재물을 지니고 있다면, 이는 뽐내는 도둑이라 불러야 할 자이다. 도에 어긋나는 짓이 아닌가!
(해설) 백성들을 법으로 다스리며 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위정자들이 호화롭게 산다는 것은 '뽐내고 다니는 도둑'이나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과도(?盜)'를 <한비자> '해로(解老)'편에서는 '도우(盜?)'로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도둑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노자의 신랄한 비평에는 변함이 없다.
章 五十四 修 觀 (수 관) : 올바른 덕을 닦아(修) 그 덕을 드러내 보인다(觀)의 뜻.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豊.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제사불철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수지어국 기덕내풍)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何以知天下之然哉 ? 以此 .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하이지천하지연재 이차)
잘 세워놓으면 뽑히지 않으며, 잘 끌어안고 있으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한 이의 자손들은 제사가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한 도를 자신이 닦았다면 그의 덕은 곧 참된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러한 도를 집안에서 닦고 있다면 그 덕은 곧 남음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덕을 고을에서 닦고 있다면 그 덕은 곧 영원해질 것이다. 그러한 도를 나라에서 닦고 있다면 그 덕은 곧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한 도를 천하에서 닦고 있다면 그 덕은 곧 널리 보편화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신의 덕으로써 그 몸을 드러내 보이게 되고, 그 고을의 덕으로써 그 고을을 드러내 보이며, 그 나라의 덕으로써 그 나라를 드러내 보이고, 온 천하의 덕으로써 그 천하를 드러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서 천하가 그렇게 됨을 아는가? 바로 앞에 말한 도리로써 아는 것이다.
(해설) 사람은 물론 한 집안이나 한 나라와 온 세상이 모두 도를 닦아 얻어진 참된 덕에 입각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덕은 그 사람 또는 그 집안이나 그 나라 또는 온 세상까지도 정확히 대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章 五十五 玄 符 (현 부) : 현묘한 도를 터득한 이의 특징이란 뜻. 참된 덕을 지닌 이는 갓난아기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含德之厚 比於赤子 毒蟲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 而握固. 未知牝牡之合 而脧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함덕지후 차어역자 독훼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골약근유 이악고 미지빈보지합 이최작 정지지야 종일호이불애 화지지야)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巳.
(지화왈상 지상왈명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즉노 위지불도 불도조사)
덕(德)을 두터이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기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벌이나 갈충(蝎?) 및 독사 따위가 쏘거나 물지 못하고, 사나운 짐승도 할퀴지 못하며, 사나운 새도 드려치지 못한다. 뼈는 약하고 살갗은 부드럽지만 손아귀는 굳게 쥐어진다. 남녀의 결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면서도 음경은 일어서는데, 정기의 지극함 때문이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음은, 화기(和氣)의 지극함 때문이다.
조화(和)를 알고 있는 것을 일정불변하다(常)고 하며, 일정불변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명철하다(明)고 한다. 삶을 증진시키려 하는 것을 나쁜 징조(祥)라 하며, 마음이 기운(氣)을 부리는 것을 부러지기 쉬운 강한 것(强)이라 한다. 만물은 장성(壯盛)해진 다음에는 늙게 마련인데, 이것을 부도(不道)함이라 말한다. 부도한 것은 일찍이 죽어가게 마련인 것이다.
(해설) 사람은 갓난아기처럼 '무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방향은 다르지만 '아이들과 같아야 한다'고 가르친 예수의 말씀과도 결과적으로 통한다. 가장 참되고 훌륭한 성인이란 알고 보면 어린 아기처럼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일이라도 그 일을 의식적으로 행할 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선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章 五十六 玄 德 (현 덕) : 현묘한 덕의 뜻. 도를 터득한 사람의 훌륭한 덕을 설명함.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지자불언 언자불지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 故爲天下貴 .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고위천하귀)
정말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법이다. 자기 욕망의 근원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그 예리함을 꺾고, 분규를 해결하며, 밝은 빛을 조화시키고, 먼지 같은 것과 화동(和同)하여야 한다. 이것을 현묘히 화동한다는 뜻에서 '현동(玄同)'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이건 친근하다고 가까이해서도 안 되며, 소원(疏遠)하다고 멀리해서도 안된다. 이익이 된다고 추구해서도 안 되며, 손해가 된다고 버려서도 안된다.
어떤 것을 귀중히 여겨도 안되며, 어떤 것을 천하게 여겨도 안된다. 그럼으로써 천하의 귀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해설) 자기의 지혜나 능력은 속으로 감추고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노자의 독특한 처세술이다. 그래야만 모든 이해를 초월하여 참된 덕을 갖춘 진실로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章 五十七 淳 風 (순 풍) : 순박한 풍습. 지도자가 무위함으로써 백성들을 순박하게 이끌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리기 국가자혼 인다기교 기물자기)
法令滋彰 盜賊多有.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撲.
(법령자창 도적다유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
올바른 도리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기책(奇策)으로써 용병을 하여야 하며, 무사(無事)함으로써 천하를 차지하여야 한다. 나는 무엇으로써 그러한 사실을 아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로서이다. 천하에 꺼리어 금(禁)하는 게 많으면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백성들에게 편리한 기구(器具)가 많아지면 국가는 더욱 혼란해진다. 사람들에게 기교가 많아지면 기이한 물건이 더욱 생겨난다.
법령이 밝아질수록 도둑들은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올바르게 되고, 내가 아무 일도 없으면 백성들은 스스로 부유해지고, 내가 무욕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소박해진다'고 하셨다.
(해설) 이것은 노자의 비문화(非文化) 또는 비문명(非文明)의 선언이라고 볼 수있다. 모든 법령이나 기술 같은 인위(人爲)의 효과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바른 도리로써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올바른 도리'란 바로 무위(無爲)를 뜻하는 것이다.
章 五十八 順 化 (순 화) : 자연의 변화를 따른다는 뜻. 여기서도 무위자연을 주장.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倚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화혜 복지소의 복혜 화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
시이성인 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그 나라의 정치가 어수룩하면 그 백성들은 순박해진다. 그 나라의 정치가 빈틈없으면 그 백성들은 불안해진다. 화(禍) 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복 속에 화가 숨기어져 있는 것이다. 누가 그 극치를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상적인 것이 다시 기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다시 요망한 것이 된다. 사람들이 이런 것에 미혹되어 온 역사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성인은 사물에 대하여 대범함으로써 구별을 하지 않는다. 청렴함으로써 남을 해치지 않는다. 곧기는 하되 지나치게 뻗지는 않는다. 빛은 있으되 반짝이지 않는다.
(해설) 비문화선언의 연장이다. 사람들은 상대적인 가치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화복(禍福)과 선악(善惡)을 판단하고, 인위적으로 복과 선을 추구하려 들지만 그러한 상대적인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인생만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동양적인 체념은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리라.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도(道)로 정치를 할 때에는 백성으로 하여금 두 가지 중의 한 가지를 고르지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에 위치한 것을 파악하게 한다. 이 중간의 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章 五十九 守 道 (수 도) : 도를 지키는 것. 도를 지키는 사람의 태도로서 농사를 짓듯이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謂早服.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위조복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무불극 즉막지기극 막지기극 사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
(유국지모 사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
사람들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일은 농사를 짓듯이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오직 농사를 짓듯이 하는 것을 일찍부터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일찍부터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을 두터이 덕을 쌓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두터이 덕을 쌓게 되면 곧 극복하지 못하는 게 없게 된다. 극복하지 못하는 게 없게 되면 그 능력의 한계를 알 수 없게 된다. 그 능력의 한계를 알 수 없게 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게 될 것이다.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모체(母體 : 곧 농사를 짓듯이 하는 것)를 지니고 있다면 영원히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가는 뿌리를 깊이 박고, 굵은 뿌리를 굳게 박은 것이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도인 것이다.
(해설) 농사를 짓는 것은 사람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자연의 도를 따르는 일이다. 작물은 아무리 노력을 가해도 단숨에 수확을 할 수는 없다. 씨에서 싹이 트고 햇볕을 쬐고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여 자연의 변화를 따라 자란 뒤에야 수확을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일을 이렇게 하여야만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章 六十 居 位 (거 위) : 임금자리에 있는 것. 올바른 임금 노릇을 하는 방법을 해설함.
治大國 若烹小鮮.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치대국 약팽소선 이도리천하 기귀불신 비기귀불신 기신불상인 비기신불상인 성인역불상인 부량불상상 고덕교귀언)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일과 같다.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도 신묘(神妙)한 힘으로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 귀신에게 신묘한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신묘한 힘을 가지고도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성인도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 귀신이나 성인이 다같이 사람들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덕으로 모두가 귀착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 '작은 생선을 굽듯이 천천히 적절하게 조용히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올바른 도를 지니게 되면 귀신도 사람들을 해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도에 대한 노자의 신념이 엿보인다.
章 六十一 謙 德 (겸 덕) : 겸손한 덕. 큰 나라이건 작은 나라이건 서로 겸손히 상대방을 대함으로 평화롭게 살아가야함을 주장함. 이는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에게까지 적용되는 원리이다.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대국약불류 천하지교 천하지빈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 고대국이하소국 즉취소국 소국이하대국 즉취대국 고혹하이취 혹하이취)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夫兩者名得其所欲 大者宣爲下.
(대국불과욕겸축인 소국불과욕인사인 부량자각득기소욕 대자선위하)
큰 나라라는 것은 강물의 하류로서 천하의 물이 모여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그것은 천하에 있어 암컷과도 같다. 암컷은 언제나 고요함으로써 활동적인 수컷을 이겨내는데, 고요한 태도로써 겸하(謙下)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에 대하여 겸하하면 곧 작은 나라를 굴복시키게 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하여 겸하하면 곧 큰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와같이 이편에서 겸하하면 저편을 굴복시키게 되고, 저편에서 겸하하면 이편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큰 나라의 욕망이란 모든 사람들을 아울러 보양해주려는 것에 불과하고, 작은 나라의 욕망이란 큰 나라에게 굴복하고 들어가 그를 섬기려는 데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두 편에서 각기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큰 편에서 마땅히 겸하하여야만 할 것이다.
(해설) 부드럽고 약한 듯이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처세술이다. 이것은 말을 바꾸면 남만 못한 듯이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장의 본문에는 여러가지로 문맥상의 문제가 있으나 이러한 논리에 들어맞도록 번역했다.
章 六十二 爲 道 (위 도) : 도를 닦는 것. 또는 도를 따르는 것. 이장에는 선인(善人)이나 불선인(不善人)을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도의 위대함을 논함.
道者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如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 故立天子 置三公.
(도자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미언가이시 존행가이여인 인지불선 가기지유 고위천자 직삼공)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故之所以貴此道者何 ? 不曰 以求得 有罪以免邪 ? 故爲天下貴.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 이구득 유죄이면사 고위천하귀)
도란 만물의 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이지만, 선한 사람들에게는 보물이 되고, 선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것에 의하여 보전되고 있다. 도를 아름답게 표현한 말은 값을 쳐서 팔 수가 있고, 도를 터득한 고상한 행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가 있다.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도가 그를 버리겠는가? 그래서 천자(天子)를 마련하고 삼공(三公)을 두도록 한 것이다.
비록 구슬을 받쳐 들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앞세우고 와서 그것을 바친다 하더라도, 앉아서 이 도를 닦는 이만은 못한 것이다. 옛날부터 이 도를 존중해 온 까닭은 무엇인가? 도로써 구하면 얻게 되고, 죄가 있어도 도를 따르면 죄를 면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도는 천하에서 귀중한 것이 되는 것이다.
(해설) 도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원리이다. 선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한자가 존재하고 있는 근거도 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장은 문맥상으로 문제가 많지만 절대적인 자연원리로서의 노자의 도개념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章 六十三 恩 始 (은 시) : 무슨 뜻에서 붙인 제목인지 뚜렷하지 않다. 시초를 잘 생각하라는 뜻의 사시(思始)가 잘못 쓰여진 건지, 또는 시작의 은덕(恩德)은 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붙였는지도 모른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 多小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 다소 보원이덕 도난어기역 위대어기세 천하난사 심작어역 천하대사 필작어세)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시이성인 종불위대 고능성기대 부경낙필과신 다역필다난 시이성인유난지 고종무난의)
무위(無爲)하게 행동하여야 하고, 일 없음(無事)에 종사하여야 하며, 맛없게(無味)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 작은 것도 큰 것이나 같게 여기고, 적은 것도 많은 것이나 같게 여기며, 참된 덕으로 원한에 보답하여야 한다. 어려운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그것이 쉬울 때 처리하도록 하며, 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그것이 작을 때 해결하도록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이란 반드시 쉬운 일로부터 생겨나고, 천하의 큰 일이란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이란 끝내 큰 일은 하지 않게 되고, 큰 일을 완성시킬 수 있게도 되는 것이다. 대체로 가벼이 일을 수락하는 사람은 반드시 신의(信義)가 적은 법이다. 일을 쉽게 여기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쉬운 일도 어려운 일이나 같게 본다. 그렇기 때문에 끝내 어려운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해설)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을 보면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덕으로써 원한에 보답하면 어떻겠습니까? (以德報怨 何如?)'하고 묻는다. 공자는 이에 대하여 '그러면 무엇으로써 덕에 보답하겠는가? 곧음으로써 원한에 보답하고, 덕으로써 덕에 보답하여야 한다.(何以報德? 以德報德)'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자의 초현실적인 사상과 공자의 현실적인 사상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 <노자>는 일을 하는데 까지도 일반 사회의 상대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초월할 것을 주장하면서, 할 일이 생기면 아무런 의식없이 바로 그때그때 처리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면 쉽고 작은 일을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章 六十四 守 微 (수 미) : 미세한 것을 지키라는 뜻. 미세한 일을 잘 지키어 일이 커지기 전에 처리하라는 뜻이 주요 내용임. 그러나 뒷부분은 제목의 뜻과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破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기안역지 기말조역모 기취역파 기미역산 위지어말유 치지어말란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누사 천리지행 시어족하)
爲者敗之 執者失之. 聖人無爲 故無敗. 無執 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而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위자패지 집자실지 성인무위 고무패 무집 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시이성인욕불욕 불귀난득지화)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
(학불학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 이불패위)
일이란 평안한 상태로서 유지하기가 쉽고 문제의 조짐이 드러나기 전에 도모하기가 쉬운 것이다. 문제가 취약(脆弱)할 적에는 그것을 깨쳐 버리기 쉽고, 그것이 미세(微細)할 적에는 흩어 버리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기 전에 처리하고, 혼란해지기 전에 다스려야만 한다.
한아름의 큰 나무도 터럭끝만한 싹으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구층의 높은 누대도 한줌의 흙을 쌓는데서부터 세워진 것이며, 천리길도 한 발자국을 내딛는 데서부터 가게 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행하는 자는 일을 실패하게 되고, 너무 집착하는 자는 그것을 잃게 된다. 성인은 무위하기 때문에 실패가 없는 것이다. 그는 집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실수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백성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거의 성공할 단계에서 실패를 한다. 끝머리 신중히 하기를 시작할 때와 같이 하면 곧 일에 실패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욕구를 갖지 않으려고 하며,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는 것을 학문하는 것으로 삼으며, 여러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그럼으로써 만물의 자연스러운 존속(存續)을 돕고, 감히 인위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해설) 이 장은 문장 자체에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없지만, 넷으로 나뉘어지는 대목 사이의 연결이 순조롭지 못하다. 첫 대목에서는 모든 일이란 문제가 생기기 이전의 근본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해결해야 한다는 앞장의 뜻을 이어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 대목은 완전히 독립된 것이어서 29장의 글이 이곳에 잘못 끼어든 것 같다. 세째 대목은 처음이나 끝이나 모두 신중히 일을 처리하라는 것이어서 첫 대목의 뜻과 어느 정도 통하지만 연결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또 넷째 대목은 또 다시 독립된 내용을 쓰고 있는 듯 하다. 이 장을 놓고 보면 <노자>에는 착간(錯簡)이 많다고 주장하는 여러 학자의 설이 옳다고 여겨진다.
章 六十五 淳 德 (순 덕) : 순박한 덕을 뜻함. 본문에 나오는 현덕(玄德)과 같음. 백성들은 순박한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의 제목.
古之善爲道者 非而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楷式.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고이지치국 국지천 불이지치국 국지복 지차량자 역해식)
常知楷式 是謂玄德. 玄德 深矣遠矣. 與物反矣 乃至於大順 .
(상지해식 시위현덕 현덕 심의원의 여물반의 내지어대순)
옛날에 도를 잘 닦았던 사람은 백성들을 총명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주었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것이 되고,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안다는 것은 또한 위정자(爲政者)의 법도이다.
언제나 이 법도를 알고 있는 것은 현묘한 덕을 지닌 이라 말한다. 현묘한 덕은 심오하고 원대한 것이어서, 사물의 이치에 반대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위대한 도를 따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은 노자가 우민정책(愚民政策)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우민'이란 백성들을 어리석게 취급할 뿐만 아니라 위정자 자신도 어리석음으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에 있어서의 지혜의 활용이나 인위(人爲)의 부정을 뜻하는 것이지 상식적인 뜻에서의 '우민 정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章 六十六 後 己 (후 기) : 자기를 뒤로 미룬다. 곧 자신을 겸손히 하라는 뜻이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是以聖人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시이성인욕상민 필이언하지 욕선민 필이신후지)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시이성인처상이민불중 처전이민불해 시이천하낙추이불염 이기불쟁 고천하막능여지쟁)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계곡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백성들의 윗자리에 있으려 할 적에는 반드시 말을 함에 있어 자신을 낮추었다. 백성들의 앞자리에 있으려 할 적에는 반드시 자신을 그들의 뒤로 미루었다.
그러므로 성인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백성들은 중히 여길 줄을 모르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백성들은 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온 천하가 그를 위로 추대하면서도 싫은 줄을 모른다. 그는 남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에는 그와 다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해설) 겸손하라는 노자의 교훈은 앞에서도 여러 번 보아왔다. 특히 남의 위나 남의 앞에 서려는 사람은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章 六十七 三 寶 (삼 보) : 세 가지 보배. 자애(慈愛) 검약(儉約)과 감히 천하에서 앞서지 않음(不敢爲天下先)을 삼보라 해설함.
天下皆謂我道大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 久矣其細. 夫我有三寶 持而寶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천하개위아도대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 구의기세 부아유삼보 지이보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故能成器長.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고능성기장 금사자차용 사검차광 사후차선 사의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
천하에서는 모두 나의 도는 크기만 했지 못난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이 크기 때문에 못난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만약 똑똑하다면 오래 전에 작은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배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받들어 보배로 삼아왔다. 첫째는 자애로움이요, 둘째는 검약이요, 셋째는 감히 천하에서 앞서지 않음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은혜를 널리 끼칠 수 있고, 감히 천하에서 앞서지 않기 때문에 유능한 인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자애로움을 버리고서 용감하려고만 들거나, 검약함은 버리고서 은혜를 널리 끼치려고만 들거나, 남보다 뒤지려는 태도를 버리고서 남보다 앞서려고만 한다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대체로 자애로움으로써 싸우면 이기게 되고, 자애로움으로써 수비하면 견고하게 된다. 하늘도 그러한 사람을 구해 주실 것이니, 자애로움으로써 자신을 방위하여야만 할 것이다.
(해설) 이 장도 어리석은 듯이 보이는 위대한 도를 이야기한 첫단과 세 가지 보배를 해설한 뒷단은 연결이 분명치 않다. 그리고 세 가지 보배 중의 첫번째 자애로움(慈)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백성을 대하는 기본태도로서 특히 이야기되고 있는 듯하다.
章 六十八 配 天 (배 천) : 하늘의 짝이란 뜻. 남과 다투지 않고 겸손할 것을 역설함.
善爲士者 不武. 善戰者 不怒. 善勝敵者 不爭. 善用人者 爲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
(선위사자 불무 선전자 불노 선승적자 불쟁 선용인자 위하 시위불쟁지덕 시위용인지력 시위배천 고지극)
훌륭한 용사는 센듯이 보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내지 않으며, 적과 싸워 잘 이기는 사람은 다투지 아니하고,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남보다 아랫자리에 처신한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말하는 것이고, 이것을 사람들을 부리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을 하늘의 짝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옛날의 법도가 되었던 것이다.
(해설) 여기서도 겸손의 덕을 해설하고 있다. 정말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남에게 센듯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 장의 대목은 사회생활에도 많은 교시를 주는 말이라 할 것이다.
章 六十九 玄 用 (현 용) : 현묘한 작용의 뜻으로서, 겸손한 덕 또는 다투지 않는 덕의 효용을 표현함.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㭁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 幾喪吾寶. 故抗兵相如 襄者勝矣. (용병유언 오불감위주이위객 불감진촌이퇴척 시위행무행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화막대어경적 경적 기상오보 고항병상여 양자승의)
전쟁을 하는데 교훈이 있다. 자기 편에서 감히 주도권을 잡지 아니하고 손님처럼 행동하며, 자기 편에서 감히 한 치(寸)라도 전진하지 아니하고 한 자(尺) 정도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나아가도 나아감이 없는 듯하고, 떨쳐버려도 휘두르는 팔이 없는 듯하며, 쳐부숴도 적대하지 않는 듯하고, 무기를 들고 싸워도 무기가 없는 듯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화난(禍難)에는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적을 가벼이 여기면 우리 편의 소중한 것을 거의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병력을 동원하여 서로 공격을 할 적에는 사양하는 자가 이기게 되는 것이다.
(해설) 도가와 병가(兵家)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데도 노자는 자주 병법을 인용하여 자기의 학설을 설명하고 있다. 반면 손자(孫子)의 병법(兵法)을 보면 그 기본 사상으로 도가의 사상이 깔려 있음을 발견한다. 춘추전국이란 어지러운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전쟁이 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章 七十 知 難 (지 난) : 세상 사람들로서는 올바른 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 被褐懷玉.
(오언심역지 심역지 천하막능지 막능행 언유종 사유군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지아자희 즉아자귀 시이성인 피갈회옥)
내 이론은 매우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것인데도, 천하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잘 행하지 못한다. 이론에는 종지(宗旨)가 있고 사물에는 중심이 있는 것이다. 나는 무지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또한 나는 존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겉으로는 칡베옷을 입고 있지만 안으로는 구슬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해설) 겉으로는 무지한 듯이 형편없이 보이는 게, 사실은 진실로 아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노자의 이론을 부연한 것이다. 지각(知覺)은 인위(人爲)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무위'를 위하여는 '무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章 七十一 知 病 (지 병) : 병폐를 안다. 또는 아는 체 하는 것은 병이란 뜻.
知不知上 不知知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지불지상 불지지병 부유병병 시이불병 성인불병 이기병병 시이불병)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체 하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 하는 것은 병폐이다. 그러나 병폐를 병폐로서 인정한다면 그 때문에 병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성인에게 병폐가 없는 것은 병폐를 병폐로서 인정하기 때문이며, 그때문에 병폐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의 끝머리 '그러나 병폐를 병폐로서 인정한다면 그 때문에 병폐가 되지 않을 것이다.(夫唯病病 是以不病)'란 말과 '성인에게 병폐가 없는 것은 병폐를 병폐로서 인정하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병폐가 되지 않는 것이다(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라는 말은 중복되고 있다.
'당사본(唐寫本)'에는 앞 '夫唯病病 是以不病'이란 여덟 글자가 없는데 그 편이 옳을 듯하다. 그러나 일반에 유행되는 <노자>에는 모두 이와 같이 되어 있어 그대로 따랐다.
章 七十二 愛 己 (애 기) : 자신을 사랑하는 것. 어떻게 하는 것이 진실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인지 설명함.
民不畏威 大威至矣. 無狹其所居 無厭其所生. 夫唯不厭 是以不厭. 是以聖人 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 故去彼則此.
(민불외위 대위지의 무협기소거 무염기소생 부유불염 시이불염 시이성인 자지불자견 자애불자귀 고거피취차)
백성들이 권위(權威)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큰 천벌이 닥칠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좁다고 여기지 아니하고, 그의 생활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그처럼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남도 그를 싫어하는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스스로를 잘 알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귀중한 것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만함은 버리고 겸손함을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은 앞뒤 문맥이 순조로이 통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이란 자기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알며 타인에 대해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일관된 노자의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章 七十三 任 爲 (임 의) : 되어지는대로 맡긴다는 노자의 무위자연적 주장의 일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다투지 않고 소극적인 듯한 자연의 도가 무엇보다 위대한 성취를 이룩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 此兩者 或利或害 . 天之所惡 執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용어감즉살 용어불감즉활 차량자 혹이혹해 천지소악 숙지기고 시이성인유난지)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而不失.
(천지도 불쟁이선승 불언이선응 불소이자구 천연이선모 천강회회 ?이불실)
용감하면 죽음을 부르게 되고, 용감하지 않으면 살게 된다. 이 두 가지가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로운 것이다. 하늘이 그 한 가지를 미워하는데 누가 그 까닭을 아는가? 그래서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행동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으면서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만사에 잘 호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느슨한 듯하면서도 일을 잘 도모한다. 하늘의 망은 광대하여 성긴 듯하면서도 아무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해설) 용감히 남과 다투는 행위는 하늘의 도에 어긋난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느슨한 듯하면서도 빈틈없이 모든 일을 이루고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사람의 행동도 용감하지 않고 다투지 않는 자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章 七十四 制 惑 (제 혹) : 미혹한 태도를 제어(制御)한다는 뜻. 이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빈틈없는 법령과 엄한 형벌을 사용하기만 하면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잘 다스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 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 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斲.
(민불외사 내하이사구지 약사민상외사 이위기자 오득집이살지 숙감 상유사살자살 부대사살자살 시위대대장착)
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其手矣 .
(부대대장착자 희유불상기수의)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써 그들을 두려워하게 할 수가 있겠는가? 만약 백성들로 하여금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하게만 한다면, 그래도 기이한 행위를 하는 자가 있을 때 내가 그자를 잡아서 죽인다면 누가 감히 또 그런 짓을 하겠는가? 언제나 죽음을 다스리는 분이 따로 있어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다스리는 분을 대신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을 '위대한 목공을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대한 목공을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사람으로서 그의 손을 다치지 않을 사람은 드물것이다.
(해설) 이 장의 요점은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임금이 포학한 정치를 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궁지에 몰리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생활이 안정되고 잘 살아야 그만큼 자기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이다. 위정자가 인위적인 강압정치를 해나가면 뒤에는 백성들이 나라의 형별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반대로 크게 다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위'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을 형벌 문제를 놓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章 七十五 貪 損 (탐 손) : 탐하는 것은 손해가 된다는 뜻. 여기서는 위정자들에 대해 말함. 정치를 하는 자는 나라를 너무 부(富)하고 잘 살게 하려다가는 오히려 정치를 그릇치게 된다는 것이다.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生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민지기 이기상식세지다 시이기 민지난치 이기상지유위 시이난치 민지경사 이기상생생지후 시이경사 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거두는 세금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굶주리게 되는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기가 어렵게 되는 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인위적인 다스림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스리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생활을 풍족하게 하려고 들기 때문에, 그래서 죽음을 가볍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오직 삶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삶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보다 현명한 것이다.
(해설) 여기서는 무위의 다스림을 강조하고 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강력한 정책을 펴는 것은 오히려 나라를 망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잘 살려는 의식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을 귀중히 여기는 것보다 현명한 일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章 七十六 戒 强 (계 강) : 강함을 경계한다는 뜻. 노자는 언제나 부드럽고 약하게 처신할 것을 권하며, 강하고 굳은 것을 경계하고 있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 死之徒 柔弱者 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만물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고견강자 사지도 유약자 생지도 시이공강즉불승 목강즉병)
强大處下 柔弱處上.
(강대처하 유약처상)
사람이 살아있을 적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고 나서는 굳고 강해진다. 만물이나 초목들도 살아있을 적에는 부드럽고 여리지만, 죽고 나서는 말라서 뻣뻣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인 것이다. 그래서 군대가 강하면 승리하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여지는 것이다.
강대한 것이 아래쪽에 위치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쪽에 위치하는 것이다.
(해설) '兵强則不勝'이란 구절은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兵强則滅로 되어 있어 '不勝'은 '滅'로 씀이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둘 다 뜻은 통하지만 군대가 강하면 멸망한다는 편이 뜻이 더 확실할 것 같다. 군대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도 강한 편이 쉬 멸망한다. 힘을 뽐내며 남을 잘 때리는 자가 더 많이 얻어맞게 마련이며, 힘이 강하여 외국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나라들이 결국은 멸망 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이나 일본이 그 좋은 예이다. 노자의 약함을 존중하는 철학은 인간생활에 언제나 소중한 교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본 뜻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약하고 비겁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히 강한 힘을 외부에 발휘하지 말고 약하고 힘없는 듯이 처신하라는 뜻이다.
章 七十七 天 道 (천 도) : 만물의 변화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상대적인 분별들, 높고 낮은 것, 많고 적은 것, 또는 좋고 나쁜 것 같은 것이 하늘의 도에 따르면 절대적인 것이 못됨을 해설한 것임. 또 그러한 하늘의 도에 맞는 사람의 행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 以奉有餘.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 유여자손지 불족자보지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즉부연 손부족 이봉유여)
孰能有餘以奉天下 ? 唯有道者. 是以聖人 爲而不侍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시이성인 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
하늘의 도는 마치 활줄을 당긴 활과도 같은 것이다. 높은 것은 억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올린다. 남음이 있는 것은 덜어주고, 부족한 것은 보태어준다.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은 덜어주고, 부족한 것은 보충해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다. 부족한 것을 더 덜어냄으로써 남음이 있는 편을 받들어 준다.
누가 남음이 있음으로써 천하를 받들 수가 있겠는가? 오직 도가 있는 사람만이 그러할 따름이다. 그래서 성인은 일을 하되 한 일에 의지하지는 않으며, 공을 이루되 그 공로를 누리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현명함을 드러내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해설) 세상에서는 남보다 뛰어나거나 두드러질 필요가 없다. 하늘의 도에 의하면, 뛰어나거나 두드러진 것은 억눌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사회에서는 남보다 앞서거나 남보다 뛰어난 자리가 거센 바람을 타게 된다. 처세술을 위해서도 우리는 노자의 철학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章 七十八 任 信 (임 신) : 되어가는대로 맡긴다는 뜻. 약한 것의 비유로서 물을 들고 있다. 물은 언제나 외부의 조건을 따라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움푹한데 고이지만 천하의 무엇보다 강하다. 물처럼 약한 듯이 되어가는대로 맡기라는 것이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其無而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천하막유약유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기무이역지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불지 막능행)
是以聖人云 受國之坵 是謂社稷主 受國之不祥 是謂天下王. 正言若反.
(시이성인운 애국지구 시위사직주 애국지불상 시위천하왕 정언약반)
천하의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그것보다 억센 것이 없으니, 아무것으로도 이에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천하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 도리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의 때묻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사직(社稷)의 주인이라 말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천하의 왕자라고 말한다'고 한 것이다. 올바른 말은 진리의 반대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은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하고 말한 앞 대목과 뒤 대목의 뜻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앞 대목에서는 부드럽고 약한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물을 들어 인생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물은 극히 부드럽고 약하며 언제나 낮은 곳으로만 흐르고 있지만 그 작은 방울들은 굳은 바위를 뚫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은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낮고 약한 듯이 처세하여야만 큰 일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 대목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된다는 것은 나라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좋지 못한 일을 맡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란 무엇보다도 사람으로서 인위적인 행동을 많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스리는 지위에 오르려 들지 말고 낮은 지위에 처신토록 하라는 말이니, 앞 대목과 연관이 없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章 七十九 任 契 (임 계) : 계를 책임 맡는다는 뜻.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에게 곡식이나 물건을 빌려주고, 그 증거로 계를 맡고 있기는 하되 세금을 거두어들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을 쓰고 있다 위정자들의 지나친 과세를 경계한 글이다.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화대원 필유여원 안가이위선 시이성인집좌계 이불책어인 유덕사계 무덕사철 천도무친 상여선인)
큰 원한은 부드럽게 달래주어도 반드시 얼마간 원한이 남게 된다. 어찌 그것을 훌륭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성인은 물건을 빌려준 계약문서는 갖고 있되, 사람들에게 반환을 책하지는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은 빌려주는 계약문서나 맡고 있고, 덕이 없는 사람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맡는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한 사람 없이 언제나 선한 사람 편을 든다.
(해설) '계(契)' 는 옛날에 물건을 빌려줄 때 증거로서 상호간에 나누어 갔던 계부(契符)이다. 계부는 대쪽이나 비단 같은 데 계약을 표시하는 글을 쓰고 계약하는 두 사람이 둘로 쪼개어 갖고. 증거로 삼던 일종의 계약문서이다. '徹(철)'은 주나라 시대 부세 방법의 일종으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노자의 무위사상으로 볼 때 계약과 상관없이 빌려주는 것으로 봄이 옳겠다. 다만 갚아야하는 사람의 도리로 계약증서를 지닐 뿐이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한 사람 없이 선한 사람 편을 든다'는 말은 천명을 내세워 덕치를 주장하던 유가사상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처럼 도가와 유가사상은 통하는 점이 많아 중국역사의 표리(表裏)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章 八十 獨 立 (독립) : 노자의 이상향을 표현한 것으로 올바로 독립된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 而不用. 使民重死 而不遠徒 . 雖有舟輿 無所乘之 .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소국과민 사유습백지기 이불용 사민중사 이불원도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사인복결승이용지)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어야 한다. 비록 갖가지 연모가 있다 하더라도 쓰지 않아야 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여기게 하고, 멀리 이사 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다 하더라도 탈 일이 없어야 한다.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벌여놓고 쓸 곳이 없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기억을 돕는 방법으로 사용하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여야 한다.
그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그들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들의 주거에 편안히 살며, 그들의 풍속을 즐기도록 하여야 한다.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백성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해설) 什伯之器 - 한 사람의 십배 백배의 재능이 있는 사람. 혹은 십배 백배로 편리한 기구로 보아도 된다. 重死 - 죽음을 중히 여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삶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結繩 - 새끼줄에 매듭을 짓는 것. <역경>계사에 '상고시대에는 결승을 하고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성인이 나와 그것을 계부(契符)로 바꾸었다' 라고 하였다.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아 기억을 돕던 원시적인 방법으로, 여기서는 원시적인 소박한 생활을 대변하는 말이다.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을 보면유가에서의 이상향이 다음과 같다.
'위대한 도가 행하여지면 천하가 공공의 것이 된다. 현명한 사람과 능력있는 사람을 가려쓰고, 신용을 강구하고 화목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의 어버이만을 친하게 여기거나 그들의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재물이 땅에 떨어져 버려져 있다해도 거들떠보지 않고, 반드시 자기에게 재물을 저장해 두려고 하지 않는다. 노력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을 싫어하며, 반드시 자기를 위하여만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謨議(모의)가 닫혀져서 일어나지 않으며, 도둑이나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생겨나지 않는다. 밖에 문이 있어도 닫지 않으며, 이것을 일컬어 대동(大同)이라 한다.'
유가의 이상향은 결국 노자의 이상향과 비슷한 성격의 사회이다. 다만 그 이상향에 이르는 방법으로써 유가에서는 능력있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고 신의와 사랑 같은 덕행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하여, 노자는 사람의 능력이나 인위적인 덕행을 부정한 것이 서로 다를 뿐이다.
章 八 十一 顯 質 (현질) : 소박한 사람의 본바탕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 즉 무위로써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노자의 기본사상을 설명한 것이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和.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불변 변자불선 지자불전 전자불화 성인불적 기이위인 기유유 기이여인 기유다 천지도 이이불해)
聖人之道 爲而不爭 .
(성인지도 위이불쟁)
신용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말은 신용이 없다. 훌륭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훌륭하지 않다. 정말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은 재물을 축적하지 않는다. 모두 그것을 남을 위하여 쓰지만 자기는 더욱 많이 갖게 된다. 모두 그것을 남에게 주지만 자기는 더욱 많이 갖게 된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만 해주지 해치지는 않고, 성인의 도는 일을 하되 다투지는 않는다.
(해설) 아름답거나 번드르르한 말은 진실성이 없다. 그처럼 보통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하는 모든 것은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재물을 좋아하고 재물을 모으려 하지만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자기'를 잊고 '자기를 위하려는' 태도를 버려야만 진실로 자기를 위하는 게 된다.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자기를 위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언제나 남에게 양보하고 남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는 노자의 기본사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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