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122

티스토리로 옮겨 글쓰기 (큰오빠)

아들의 도움을 받아 낯선 티스토리로 불러그를 옮겨놓고 시간이 마냥 흘러갔다. 낯섬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전에 큰오빠 내외가 오셔서 함께 지내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효도해야 할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대신 큰오빠 내외에게 효도하자 생각했다. 어린 시절, 한때는 경제력 없던 아버지 대신 동생들을 돌보아 주었던 고마운 큰오빠이다. 줄줄이 사탕처럼 고마움을 느꼈던 시간들이 생각나 은혜갚는 마음으로 성심껏 대접하였다. 큰오빠기 내게 단골치과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결혼하기전 나를 치과에 데려가 상한 이를 모두 치료하여 주었던 일이 생각나 제가 치료해드리겠다고 선뜻 답하였다. 캐나다에서는 치과는 보험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분의치를 포함해 치아를 다시 치료하고 임프란트 치아를 심느라 최소 삼개월이 소모되는 동안 ..

안녕! 2022.11.12

한용운 시를 읽고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수많은 글을 읽고 쓰면서 슬프고 아픈 마음을 잘 달래며 살아왔다. 그건 순수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블로그가 없어지고 티스토리로 바뀐다나...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이치이거늘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즐거움으로 족하다. 나는 살아있는 날까지 나를 ..

안녕! 2022.08.10

사색의 향기가 보내주신 백승훈 시(詩)

궁궁이 꽃 ​ ​눈 내리는 날 거리에서​ 구세군 자선 남비 속에​ 백동전 하나 넣고 가는​ 고사리손을 보았습니다​ 눈송이보다 더 하얀 백동전을​ 남비 속에 수줍게 밀어 넣고는​ 총총히 멀어지는 소녀를 보았습니다.​ ​ 자잘한 꽃들이 한데 모여​ 고봉밥 같은 꽃다발을 이루는​ 여름 냇가에 피는 궁궁이꽃처럼​ 비록 보잘것없는 백동전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누군가의 따뜻한 밥이 된다고​ 속삭이듯 내리는 눈송이 하나가​ 소녀의 작은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었습니다. 명자나무 꽃 바람에 쓸리고 찬비에 젖어 거리를 떠도는 낙엽들이 겨울 앞을 서성이는데 볕 바른 화단에 명자꽃 봄보다 더 붉게 피었다 철모르는 꽃이라고 혀를 끌끌 차다가 이내 나를 돌아본다 걷다 보면 누구나 삐끗할 때가 있다 나도 허방을 짚어 삶이 송두리채 ..

안녕! 2022.06.26

오래된 친구를 생각하며

중학교 때 같은반 했던 친구이니 알고 지낸 세월이 수십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무색하게도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남친으로 비롯되었다. 그 사람은 유부남이었고, 그들의 관계를 안 부인과 자식이 그녀를 찾아올 지경에 이르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친구로서 그녀의 입장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내 생각에 그 사람은 정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의든 아니든 그녀에게 사랑을 빙자한 거짓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있었다. 친구는 여리고 착한 성격을 지닌 천생 여자였다. 목소리가 아직도 소녀처럼 곱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영어선생님을 하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청년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고 , 신앙생활도 착실히 하며 살았다. 나는 그녀가 대학시절 ..

안녕! 2022.04.23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21세기 고도의 과학문명 시대에 이웃나라를 무력 침공하다니! 제 정신인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야만적인 살인행위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그는 역사에 살인마로 기록되고 싶어서 그런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키고 양민을 학살하고 있는가! 더 강력한 러시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임을 누가 모르는가! 그리 오래 장기집권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도 멈출 줄 모르는 야욕은 가장 저열하고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러시아 황제들의 흥망성쇠를 공부했을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어리석고 오만한 정치지도자에게 굴종하는 국민들이 이런 사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푸틴! 지옥에나 가라!" "오! 우크라이나여 영원하라!" 수많은 우크라..

안녕! 2022.03.03

새해를 맞으며...

2020년 마지막 날 밤을 아들과 한바탕 난리를 쳤다. 밝아오는 2021년 새해 아침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맞은거다. 후회스럽고 아픈 마음을 달래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였다. 함께 산다는 건 이런 저런 일들을 감수하며 참아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사랑하는 아들과의 불협화음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일이 기쁨보다 고통이 많은 것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모두 코로나 감염병과 싸울때 나는 부족한 내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 주력하며 보낸 한 해였다. 문화원에 못가는 대신 주 5회 집앞 산으로 나가 둘레길을 걷고 운동을 했다. 광고 없는 FM 93.1 클래식 음악방송을 들으며 왕복 1시간 이상 걷고 운동기구들을 이용한 스트레칭을 30..

안녕! 2021.12.31

흔한 날

가을 끝자락, 집 앞 그윽하게 물든 삼성산으로 친구들이 소풍을 왔다. 지난 토요일 직장일을 마치고 바쁘게 온 두 친구와 또 한 친구, 나 넷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둘레길을 걸었다. 새빨간 단풍나무, 샛노란 은행나무 등 곱게 물든 숲길 수북히 떨어진 낙엽을 밝으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유아숲 넓은 터 평상에 식탁보를 펼치고 준비해온 김밥과 과일, 맛있는 빵, 제주 쑥떡, 커피 등을 꺼내놓았다. 이 친구들은 문화센터에서 함께 인물화를 그리면서 알게 되어 봄 가을이면 우리집 앞산으로 소풍을 온다. 그동안 있었던 사적인 이야기, 사회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 공감하였다. 나처럼 자그마한 체구의 후덕한 친구는 요즘 시간제 일을 한다고 한다. 몸이 좀 약해보이지만 활동적인 생활이 건강에 더 좋..

안녕! 2021.11.11

사랑, 그리움의 여백

어제 김현옥 작곡가 40주년 기념음악회를 강원대학 백령아트홀에서 관람하였다. 선생님께서 초대해주셔서 먼곳이었지만, 은퇴기념 음악회인 만큼 참석하여 축하해 드리고 싶었다. 몇년 전 강원 KBS 홀에서 열린 음악회에 고속열차를 타고 갔다 오는데, 시간이 잘 맞지 않아 너무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많이 피곤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운전을 해서 가보려고 했더니, 아들이 '밤운전 힘드실텐데 제가 운전해 함께 갈까요?' 한다. 가끔씩 발에 쥐가 나서 이제는 장거리 운전을 하기 싫다고 했던 말을 들었던지라 염려가 되었나보다. 좀 일찍 퇴근해 온 아들과 서둘러 차에 올라 춘천을 향해 갔다. 아들 낳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ㅎ 음악회 시작하기 전 좀 떨어진 곳에 앉아계신 선생님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가 반가운 인사를 ..

안녕! 2021.06.10

참혹한 미얀마 사태를 보며...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시위현장이 연일 보도되며 마음을 아프게 한다. 광주 사태를 겪은 우리나라로서는 남의 일 같지만 않게 느껴지고 나아가 인류 공동체 의식에서 볼 때 방관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찌 불교도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수년 전 종족간의 참혹한 전쟁을 겪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군부와 시민들과의 전쟁이라니 이러고서야 제대로 그 나라가 존립할 수 있겠는가! 군부도 정치세력도 다 국민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마땅하거늘 그들이 어찌 시민들에게 총뿌리를 겨눈단 말인가! 지옥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 광주사태 때 언론통제로 인하여 서울에 사는 우리는 까맣게 그 아수라장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일본에서 온 지인이 크게 우려하는 이야기를 듣고 설마 그럴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안녕! 2021.03.10

나 어릴적에...

이 여름 수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난감하고 불편할까... 한여름에도 아주 차겁지 않은 물로 목욕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나의 일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추운 겨울, 나갔다 들어와 언제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때면 안락감과 함께 어릴 적 월례행사처럼 온 가족이 목욕을 갔던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나는 용산구 해방촌과 후암동 사이에 있는 신흥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술래잡기를 하다 어두워져 내려다보면 저 멀리 마치 별천지인양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시내가 보였다. 언젠가 한여름에 학교에서 돌아온 큰오빠는 마루에 앉아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집을 장만해 다니기 힘들게 하셨을까!' 그런 아버지 덕에 아무리 홍수가 져도 수해를 입은 적이 없었다. 해방직..

안녕! 2020.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