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140

대화

햇볕 따사로운 오후,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하다. 향기 깊은 차를 마시며 네 분의 대화를 들어보고 싶어 책을 펴 들었다. 90대 피천득 선생님과 80대 김재순 선생님의 대화에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서로가 지닌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저는 깊이있는 신앙생활은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저 신앙이란 홀로 있는 것, 신이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자득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기도는 소원이나 구원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감사의 기도입니다.'라는 우암 김재순님의 말에 금아 피천득님이 답한다. '저역시 좋은 기도란 바로 감사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제 방에 노인이 기도를 드리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 노인은 수프 한 그릇, 방 한 조각을 놓고 기도를..

먼 북소리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이 읽어보라고 빌려주어서 읽게 된 책이다. 예전에 남편이 사주어서 읽었던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를 쓴 작가인지라 흔쾌히 받아 읽었다. 남편은 그 책을 한 동료에게도 선물로 주었었다. 그 때 일들이 생각난다. 삼년(1987~1989)간의 유럽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유유자적하는 분위기로 쓰여져 편안히 읽었다. 글을 시작하며 쓴 작가의 글이다. '어느날 문득, 나는 도무지 긴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딘가 멀리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아주 먼곳에서, 아주 먼 시간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희미하게 들릴락말락.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에 나는 기여코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 것이다...' 여행..

경험 수집가의 여행

앤드루 솔로몬의 책을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 이어 두 권째 읽었다. 7대륙 25년의 기록이라니, 그 방대한 경험의 누적을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자생활 기록과 함께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감사함을 표현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가 보았던 나라들도 여러 나라 있었다. 그러나 수박 겉핣기에 그쳤던 아쉬움을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게 간접경험할 수 있었다. 관광에 그치지 않는 '여행의 진정성'이다. 어린 시절 세상을 겁내던 아이였던 저자는 아버지가 읽어주던 동화책에서 미래의 환상을 품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의 환상을 키워나갔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겪었던 수많은 어리석음은 그러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부수고서야 비로..

황금방울새 (도나 타트 作)

이지적이고 또렷한 작가의 사진에서 풍기는 이미지대로 사물의 묘사력이 말할 수 없이 디테일하고 장황하기까지 하다. 장면 장면이 사진처럼 보일 만큼 자세하다. 마치 한 권의 책분량을 두 권의 책으로 깜쪽같이 늘려놓은 듯한 문장력이다. 내용인즉 한 소년이 엄마와 미술관에 갖다가 폭발사건이 벌어져 엄마를 잃고, 황금방울새가 그려진 명화 한 점을 가지고 나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테오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엄마를 오시라고 했고, 함께 학교 가는 길에 비를 피해 잠시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에 들렸다가 그만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사고가 나기 전 그림을 보면서 잠시 시선을 나누고 마음이 끌렸던 소녀와 할아버지. 사고 현장에서 피흘리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게 되고 소중해보이는 반지..

아내를 닮은 도시 (강병용 作)

아내를 닮은 도시라니! 다정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책표지를 펼쳐 접은 것을 펴니 정감어린 류블라냐 마을지도였다. 아이디어가 맘에 든다. 젊은 작가의 글은 진솔하고 다정하지만 꾸밈없이 담담하여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고 따스하다. 작가의 모습을 대신하는 녹용인형은 사진 한 쪽에서 작가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는 듯 느껴진다. 작년에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에 다녀와서 이 책이 반가웠다. 아름다운 블레드 성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가기전에 보았으면 더 좋았을 걸... 한 번 지나간 시간에 불과한 아쉬움을, 글을 읽으면서 흐믓한 마음으로 되새겼다. 피란을 거닐며 쓴 글에서 '횟집없는 바닷가!'는 나 역시 여행을 하면서 느낀점이었다. 한적함은 물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음식점들이 바다풍경을 자연스럽게 보존하여..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 (앤드루 솔로몬 作)

지은이 앤드루 솔로몬 옮긴이 고기탁 펴낸이 열린책들 나는 오랜 기간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를 만났었다. 여러 어린이들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어린이가 있었다. 오래 된 지금도 그의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던 엄마 또한... L과 함께 했던 일 년, 나는 완전 소진하여 다음 해에 명예퇴직을 신청하였다. 물론 다른 힘든 상황들이 겹치기도 했지만 L의 영향이 컸었다. 나로서는 학부모가 알려주지 않아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L의 담임이 되었다. 늘 엄마가 학교를 서성거려 소문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L을 맡게 되자마자 전담임에게 물었지만 '겪어보면 알아.' 그 한 마디 뿐이었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었던 전담임은 한참 어린 후..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 (앤드루 솔로몬 作)

지은이 앤드루 솔로몬 옮긴이 고기탁 펴낸이 열린책들 나는 오랜 기간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를 만났었다. 여러 어린이들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어린이가 있었다. 오래 된 지금도 그의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던 엄마 또한... L과 함께 했던 일 년, 나는 완전 소진하여 다음 해에 명예퇴직을 신청하였다. 물론 다른 힘든 상황들이 겹치기도 했지만 L의 영향이 컸었다. 나로서는 학부모가 알려주지 않아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L의 담임이 되었다. 늘 엄마가 학교를 서성거려 소문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L을 맡게 되자마자 전담임에게 물었지만 '겪어보면 알아.' 그 한 마디 뿐이었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었던 전담임은 한참 어린 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作)

쇼펜하우어 지음 곽복록 옮김 을유문화사 오래 전에 사놓았던 책을 올해 들어서야 펴놓고 조금씩 오랫동안 읽었다. 속도감 있게 읽힐 내용들이 아닌 사상 철학책이어서 관념적인 내용들이 좀 지루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을 감동깊게 읽었던 기억으로 이 책을 샀으므로 끝까지 읽었다. 쇼펜하우어 (1778년~1860년)는 독일 국적의 프로이센 단치히(지금의 폴란드 그다인스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글을 썼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후에 베른린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교단에서 헤겔과 대립했지만, 이미 저명했던 헤겔의 강의와 시간대를 같이 하다 그에 밀려 교수직을 그만 두고 은둔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옮긴이의 해설에 의하면, 인간 표상들 사이의 연관에는 그 충분한 ..

모든 삶은 기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作)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민음사 책 제목에 공감하여 사서 읽은 책이다. 중남미 나라중 '페루' 리마에서 태어난 작가는 스물여덟살 장성한 딸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진솔하고 유쾌한 작가의 건강한 심성은 딸을 잃은 슬픔을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정화시켜나간다. 그들의 이어지고 이어지며 가지를 뻗는 이야기들은 무척 심각한 상황들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윗트가 있다. 그들 구성원들의 서로 다름을 무한히 포용하는 이해와 애정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군대 갔다와서(몇십년 전에는 군생활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휴가 나온 큰 아들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난데없이 죽음을 맞은 아들로 인해 나의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원철 스님)

알라딘 서점에 들렸다 제목에 눈이 가서 샀는데 지금은 절판된 책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스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착하고 수줍은 소년 같은 맑음이 있었다. 나는 첫인상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됨됨이를 예민하게 느끼곤 하는데 대개는 그 직감이 맞는다. 때론 만날수록 첫인상보다 더 좋아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인상보다 별로인 사람도 있는 것은 그이의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나 역시 첫인상보다는 만날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들 중년 이후의 얼굴은 부모가 아닌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을 하는 건,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마음가짐이 얼굴에 담겨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늙어서 보기 싫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표정'이 담겨짐을 의미한다. '짚신스님'..